파문 - 2000년 전후 한국문학 논쟁의 풍경
이명원 지음 / 새움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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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속의 한국문학'. 언제나 문학에 대한 애정을 표현해 온 강준만 교수가 낸 책의 제목이다. 이 말처럼, 한국문학은 지금 위기에 빠져있다. 신춘문예에 목을 매는 문학청년이 수만명에 달하고, 베스트셀러가 숱하게 양산되는 마당에 무슨 헛소리냐고 할지 몰라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면 우리 문학이 위기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문학이 비루한 현실의 전복을 위한 불온한 것이 되지 못한 채 개인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작금의 상황은 분명 절망적이다. 위기의 원인이 실타래처럼 얽혀있긴 해도, 우리 문학의 위기는 곧 비평의 위기다. 책 말미에 붙어있는 해설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요즘의 비평은 그야말로 '주례사 비평'으로 전락했다. 작품의 가치를 공정하게 평가하기보다는 문학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혹은 공적. 사적인 인연에 얽매여 엉터리 비평을 쏟아낸다. 비평가라기보다는 카피라이터로 전락한 듯한 오늘의 비평가들은 우리 문학을 무덤 속으로 이끌고 있는 장본인인 셈이다.

그런 비평계에 한줄기 희망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젊은 비평가 이명원은 최근작 <파문>을 통해 우리 문학의 추한 현실을 낱낱이 고발한다. 그는 말한다. '실천성이 거세된 이론의 향연은 푹신한 소파와 서늘한 대학연구실에서는 어울릴지 몰라도, 그것을 비평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비평이란...문학 현장에서 고뇌 속에 꽃핀 육성의 언어, 즉 언어적 투쟁과 실천이다 (187쪽)]

그동안, 타락해버린 문학권력을 비판하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자들이 늘 그렇듯, 그들은 그런 비판들을 발전적으로 승화시키는 대신,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다음과 같은 음해를 시도함으로써 권력을 지키려고 애쓴다. 권력자 남진우의 말이다.

[...기존 문학장에서 자신이 부당하게 배제당하고 있으며 심지어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363쪽)]

또다른 권력자 류보선도 문학권력 비판자들을 다음과 같이 폄하한다. [문학의 존재의미와 문학의 자존 차제를 발본색원적으로 부정하는 비판적 글쓰기의 그 거친 환원주의...(365쪽)]

그들은 문학권력 비판을 문학장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한풀이로 매도한다. 권력을 비판함으로써 자신들의 권력욕을 충족시킨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권력을 둘 이상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힘의 쏠림으로 정의한다면, 사람 사는 곳에는 어김없이 권력이 있다. 권력 자체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문제는 그 권력을 이용해서 어떤 일을 하느냐는 거다. 지금의 문학권력 비판은 문학권력을 가진 자들이 우리 문학을 요즘 유행하는 말로 '두번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며, 권력 자체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 그걸 뻔히 알고 있을 권력자들이 터무니없는 궤변으로 그 비판을 잠재우려 하는 현실은 슬프기 짝이 없다.

푸코나 바르뜨 같은 철학자나 '아포리즘' 같은 용어가 이따금씩 등장하는지라 이 책을 읽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내공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내공이 없다고 읽지 못하는 건 아니다. 문학에 문외한인 내가 이 책을 읽는 데 열네시간이 걸린 것처럼, 부족한 내공을 시간으로 보충할 수 있는 법이니까. 다 읽고 나면 한국 문학의 어두운 현실에 절망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멋진 비평가가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품게 된다. 한마디 더. 책 말미에 나온 조선일보 김광일 기자의 권모술수는 그가 기자인지, 아니면 모사꾼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베르베르의 책을 표절해 칼럼을 썼고, 나중에 탄로가 나자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했던 김광일 기자, 당신도 이제 바르게 살아야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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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4-14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저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주의 마이 리뷰에 감히(?)도 뽑혔다는 걸 마태우스 님으로부터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첨엔 뭘 축하해 주시는 건가 당혹스러웠습니다. ^^*
마태우스 님을 첨으로 뵙게(?)되었던 건 <파문>...이 리뷰 때문이었습니다. 책에 대한 논리적 분석과 속시원한 외침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알라딘 서재 주인장들의 해박한 통찰력과 가차 없는 통렬한 비판으로 탄생되는 리뷰들을 꼼꼼히 읽어본다는 건, 분명 큰 행운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리뷰를 통해 도움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은근한 압력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야클 2005-07-20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내일 받는데 기대가 커요. 예전에 강준만 VS. 남진우의 문학권력 논쟁을 도서관 가서 복사까지 해가며 보던 기억이 새롭네요. 님 리뷰보고 어제 질렀답니다. 아, 물론 Thanks to도 눌렀구요.
 
오버하는 사회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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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하여금 세상을 바르게 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강준만 교수가 <오버하는 사회>를 냈다. 기쁜 마음으로 책을 샀지만, 그의 다른 책들과 달리 이번 책은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다. 그는 책 전반부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 '열린우리당'을 비판한다. '어리석다' '시대착오적인 망상' '판단이 근시안적' '나라를 휘청거리게 할 만큼 위험천만한 것'등의 수사를 동원하면서. 그가 이렇듯 흥분하는 게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지만,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탈당파들이 민주당 내에서 개혁을 하길 바랐지만, 당내개혁이 불가능하면 나가서 새살림을 차리는 수밖에 없지 않는가. 당시 당권을 쥐었던 소위 '구주류'들의 면면을 보면 어떤 종류의 개혁도 가능하지 않아 보이지 않던가?

그는 열린우리당이 성공할 수 없는 열가지 이유를 나열한다. 사람이란 진짜 이유가 4-5가지 되면 동어반복을 통해 10가지 쯤으로 확대재생산하는 속성이 있는데, 강교수도 거기서 자유롭지 않아, 그가 든 10개의 이유란 것도 사실은 하나다. 호남의 민의를 배신했다는 것. 그렇다면 호남 유권자들은 정치개혁을 바라지 않는다는 얘길까. 그는 일관되게 주장한다. 민주당 구주류가 아무리 타락을 했을지언정 한나라당에 몸담았던 사람들보다는 낫다고. 그건 보기 나름 아닐까? 난 경선으로 뽑힌 자기 당 후보를 흔든 행위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후안무치한 짓거리로 생각하기에, 그런 식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김대중의 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그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 크지만, 자민련과의 연합도 일부 작용했다고 본다. DJP 연합 동안 JP가 한 게 '몽니' 말고 뭐가 있는가? 마찬가지로 난 민주당 구주류와의 동거로는 정치개혁과 지역주의 청산의 대망이 이루어지기 힘들다고 본다.

'참으로 놀라운 일은 많은 사람들이 민주당 분당과 재신임 정국을 연계시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12쪽)' 이런 강교수의 주장이 나로선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재신임을 받겠다고 선언한 건 측근비리 때문이지, 분당은 아니잖는가. 그가 내가 모르는 어떤 것을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것을 분당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당을 지었다 부쉈다 하는 일은 우리 정치사에서 흔하디 흔한 일인데, 그렇게까지 오버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강교수는 심지어 이런 말도 한다. '이미 극단으로 치달은 코드정치부터 바꿔야 한다 (24쪽)' 코드정치. 보수언론들이 노무현 죽이기의 용도로 숱하게 써먹은 말인데, 그도 거기에 세뇌된 것일까. 노조에 대한 대응이나, 이라크 파병 과정을 보면 노무현의 주위엔 온통 친미사대주의자들이 인의 장막을 쳐놓은 것 같은데, 웬 코드정치란 말인가. 아무리 현명한 사람도 한가지 이슈에만 매몰되면 판단이 흐려지는 법, 때론 분노의 글쓰기도 필요한 법이지만 옳은 판단은 냉정함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분당에 관해서 그와 나는 생각이 다르며, 누구 생각이 옳은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내 정신적 스승인 강교수의 책에 이런 서평을 하는 게 미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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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치 : 음탕한 계집
엘리자베스 워첼 지음, 양지영.손재석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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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링 잇 온]이란 영화에서, 치어리더인 주인공은 동생에게 화를 내는 과정에서 동생이 하고있던 비디오게임의 전원을 꺼버린다. 그때 동생이 한 말은 'Bitch!'고, 우리말 번역은 '나쁜년'이다. 그런 제목이 아니더라도, 미모의 여성이 웃으면서 가운데 손가락을 쳐들고 있는, 매우 도발적인 사진이 담긴 표지를 본다면 대충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여성주의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항간에 유행하는 페미니즘 류의 책과는 또 다른, 매우 신랄하고 통쾌한 내용인데, 여성주의에 대한 책은 그래도 꽤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책은 처음인 것 같다. 저자는 남성화된 미국 사회를 비판하면서도 '페미니즘은 (부엌일만 하는 여성이 겪는) 우울증을 정치화시킴으로써 우울증의 침묵을 더욱 조용하게 잠재우는 일에 일조해 왔다'는 식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마저 서슴치 않는다. 2만2천원의 책값만 아니라면-알라딘에서 사면 10% 할인됩니다!-여러 권 사서 내 주위에 암약하는 마초들에게 돌리고 싶을 정도다.

오랜 기간 동안, 여성은 언제나 침묵을 강요당해 왔다. 여성은 언제나 상대의 요구에 거절 혹은 수용만을 강요당해왔을 뿐, 자신의 욕망을 먼저 말하는 것은 금기시된다. 비근한 예로, 남녀가 데이트를 할 때 하자고 하는 쪽은 언제나 남자다. 여자가 먼저 말을 꺼낸다면 '걸레'라는 별로 고상하지 않는 호칭이 붙게 마련이다. 저자는 삼손의 애인인 데릴라, OJ 심슨에 의해 죽었다고 추측되는 니콜 브라운 등의 예를 통해 이런 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하는데, 근거자료가 워낙 방대한지라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졸려서가 아니라, 100% 동감해서.

한가지 옥의 티를 잡자면, 저자는 힐러리에 대해, 그리고 그녀를 페미니스트로 보는 사회 일각의 시선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비난을 퍼부어 댄다. 저자는 힐러리의 능력이 대단함을 말해주는 지인들의 말을 옮긴 뒤, 이렇게 말한다. '힐러리 자신이 이 모든 것-대법원 판사가 된다든지, 선출직에 당선이 된다든가...-을 아내의 역할을 위해 포기했기 때문에....빌 클린턴을 보살펴 조는 것이 그녀의 직업이다' 그녀의 예언은 빗나갔고, 책이 나온지 2년 후 힐러리는 당당히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성급한 견해일 수도 있지만 힐러리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지도 모른다는 예측을 하는 사람도 있다. 저자는 심지어 힐러리를 이렇게 묘사하기도 한다. '애를 몇이나 낳은 것같은 펑퍼짐한 엉덩이에, 튼실한 근육질의 다리하며, 오늘 아이 하나 낳고 내일 당장 옥수수 포대를 나를 수 있을 것만 같은 건장한 어깨...' 글쎄다. 내가 보기엔 그렇게까지는 아니지 않을까 싶은데, 저자가 혹시 힐러리에게 사적인 감정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이런 옥의 티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램은 변함이 없다. 미국보다 훨씬 더 마초화된 한국 사회이니까.

한마디 더. 지금 알았는데, 책 표지에 나온 도발적인 미녀는 저자인 엘리자베스 워첼이란다. 이런 미인이라면 힐러리를 그렇게 비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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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집 - 상
존 그리샴 지음, 신현철 옮김 / 북앳북스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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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그리샴의 <하얀집>은 내 기대를 한참 어긋난다. 숨막히는 법정스릴러를 상상하며 책을 집었건만, 이 책은 엉뚱하게도 일곱살 소년의 눈으로 본 세상을 그린 거다.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약간의 암투도 있지만, 스릴러와는 영 거리가 멀다. 소설을 구성하는 그리샴의 능력이 워낙 뛰어난지라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서 '존 그리샴은 이 작품을 통해 존 스타인백과 헤밍웨이로 이어지는 문학적 전통을 계승했다는 찬사를 받게 되었다'고 말한 그리샴 단골 해설가 신현철의 견해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는 왜 그리샴이 쓰는 모든 소설마다 '이게 최고다!'라는 말을 하는 걸까?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들을 간단히 정리해본다.

1) 외국인이 쓴 책에 한국이 나오면 반갑기 그지없다. 심지어 우쭐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아니다. <하얀집>의 배경은 1950년대고, 주인공의 삼촌은 한국전에 참전 중이다. 그 바람에 걸핏하면 한국전 얘기가 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난 좀 곤혹스러운 느낌을 받았다. 그 전쟁이 우리 민족간에 벌어진, 우리가 익히 듣던대로 '동족상잔의 전쟁'이었다는 것도 그렇고, 그당시 미국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니까. 그래도...이라크에 파병하는 것은 반대다!

2) 스타라는 이름을 가진 친척이 주인공을 방문한다. 화려한 도회지에서 살던 그녀는 농촌에서 목화를 따는 주인공의 가족을 노골적으로 경멸한다. '한번이라도 자동차를 타본 적은 있니?' '텔레비젼은 본 적이 있니?' 이런 식의 질문을 던지면서. '이곳에는 아무도 대학에 간 사람이 없지?'라는 식의 질문이 어린이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는 안중에도 없다. 난 그녀의 경솔함에 혀를 차지만, 돌이켜보면 나 역시 농촌에 살고 개발이 안됐다는 이유로 그 사람들을 동정의 눈으로 바라본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물질이 삶의 전부는 아니고, 어찌보면 그들이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3) 그렇다 하더라도 농사는 '낙후성'과 같은 말이다. 그들의 노동은 너무 고되고, 그 대가는 턱없이 적어 보인다. 그리샴 역시 극중 인물의 말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들만 농사를 짓고 있죠' 주인공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사를 지을 마음은 애시당초 없다. 결국 그들은 공장이 있는 북부로 떠나는데, 이런 의문이 들긴 한다. '그럼 농사는 누가 짓지? 난 싫지만, 누군가 짓긴 지어야 하는 건 아닌가?'

4) 책에 나오는 보안관은 맨날 낮잠만 자고, 남의 집에서 음식만 축내는 무능하고 염치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우리가 공권력에 대해 갖고 있는 그런 정서를 그리샴도 가지고 있다니, 잘사나 못사나 경찰을 달가워하지 않는 건 다 똑같은가보다.

결론: 이 책의 배경은 그리샴의 고향인 아칸소의 농촌이다. 그리샴은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 당시 풍경을 그렸다는데, 난 가본 적이 없어서 별 감흥이 없었다. 클린턴이 어떤 곳에서 주지사를 했는지 궁금한 분, 혹은 아이들이 세상에 눈을 뜨는 과정에 관심이 있으신 분, <크리스마스 건너뛰기>를 재미있게 읽었던 분들이라면 한번 읽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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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날개
이윤기 지음 / 민음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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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이라 함은 톨스토이같은 거장이 쓴 '내용이 방대하고 규모가 큰 작품'을 흔히 일컫지만, 내게 있어서 대작은 500페이지가 넘어가는, 그래서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책을 말한다. 요즘 '대작'을 읽고 있다. <비치>라는 책인데, 무려 600페이지에 달하는 '대작'이다. 300페이지로 된 책 한권을 읽는데 평균 사흘이 걸리니 600페이지면 적어도 일주일 내에는 읽어야 하건만, 이상하게도 열흘 정도가 소모되곤 한다. 그러다보니 지난달 책을 몇권 못읽어, 읽던 책을 잠시 접어두고 '이번달도 기본은 해야지'라는 생각에서 크기가 작은데다 얇기까지 한-나중에 보니 272페이지로, 결코 얇은 게 아니다-이윤기님의 소설, <노래의 날개>를 집어들었다. 게다가 <나비넥타이>나 <숨은 그림 찾기>를 읽으면서 이윤기님이 소설을 얼마나 재미있게 잘 쓰는지 알게 되었기에, 잽싸게 읽을생각을 했다. 하지만.

스님이 나오는 첫 단편부터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갈수록 내용이 형이상학적이라- 난 잘 이해가 안가면 무조건 형이상학적이라고 부른다-보통 책보다 훨씬 더 시간을 투자하고서야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다. 물론 책을 읽으면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재미에 푹 빠졌고, 그 이야기들이 픽션이 아닌, 당신이 몸소 체험한 듯한 이야기처럼 느껴져 더 깊은 울림을 내게 전해줬지만, 어찌되었건 내가 원래 목표로 삼았던 '기본만 읽자'는 끝내 달성하지 못했다.

번역이 종합예술이라는 걸 알게해준 최고의 번역가이자 화려한 수상 경력에 빛나는 소설가, 그리고 신화 연구자, 그래서 어떤 문인으로부터 '이윤기는 고래다'라는 찬사를 들었던 님의 지칠 줄 모르는 정열을 보면서 나 스스로를 비하하곤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윤기님과 나 사이에 공통점이 한가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이 픽션이 아닌 실제라고 가장하면, 이윤기님은 술을 아주 좋아한다. 이윤기님은 밀주나 한산소곡주, 나는 소주라는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위대한 문인과 뭔가를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난 기쁘다. 혹시라도 술이 님의 문학에 자양분이 되었다면, 지인들 사이에서 '술의 상징' 쯤이 되어버린 나도 문학에의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해본다. 물론 농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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