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의 겉과 속 2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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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많은 책을 내는 분이다. 또한 가장 많은 책을 읽는 분이기도 하다. 무수히 많은 참고문헌의 인용들로 이루어진 그의 책들은 읽는 이에게 감탄을 넘어 공포심까지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인용만 하면 누가 책을 못쓰냐고 할지 몰라도, 그 많은 인용들을 일관된 틀에 끼워맞춰 자신의 논리를 펴는 건 그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라 할만한다. 셀 수 없을 정도의 참고문헌이 나오는 이번 책 역시 그의 성실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훌륭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현대 자본의 영악함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스타벅스]를 보자 (월간 인물과 사상에 나온 얘기지만). 스타벅스에 가면 우선 수많은 커피 리스트에 주눅이 든다. 종업원들은 커피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아, 커피에 대한 무식은 순전 내 책임 같다. 테이블에 앉아 서빙을 기다리는 대신, 줄을 서서 커피를 사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것도 내 몫이다. 요즘의 스타벅스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지, 자리에 앉는 것도 커다란 행운으로 느껴진다. 이렇게 거대자본의 이익에 일조를 하면서도 격조높은 커피를 마셨다는 착각을 하고, '우리 동네에 스타벅스 있다!'는 자랑이나 늘어놓는 건 약간은 한심한 일이 아닐까. 스타벅스가 물이 좋고, 그집 커피가 내가 마셨던 어느 커피보다 맛있다는 걸 인정한다 해도 말이다.

여기에 그치는 건 아니다. [일부 식당에서는 놀랍게도 식당 안에 빈 테이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장한 문지기가 입구에서 로프로 선을 그어 사람들을 기다리게 한다. 운 좋게 식당에 들어간 사람들은 자신이 특별한 장소에 들어올 수 있었다는 것에 기뻐하고...(140쪽)]

그러고보니 요즘 잘나가는 곳은 대부분 대기의자를 두어, 손님들을 한없이 기다리게 한다. 몇년 전만 해도 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서는 일을 끔찍히 싫어했지만, 이젠 사람 많고 유명한 곳만 찾아다닌다. 그런 데라고 특별히 맛있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지만, 유명한 곳에 갔다는 게 뿌듯할 뿐이다. 그러고보면 최근 몇년 사이 나도 자본의 포로가 되어버린 모양이다.

자본의 잔인성은 정말 못말리는 수준까지 나아간다.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라디오 방송은 청취율을 높이기 위해 금문교에서 떨어져 자살하는 천번째 사람의 가족에게 한 상자의 과일주스를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207쪽)]

이런 상황에서 자본의 도덕성을 비난하는 것조차 공허해 보인다. 치밀하고도 영악한 자본에 비해 소비자는 너무도 약한 존재니까. 강준만의 말이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의식이 마케팅의 공략대상이 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154쪽)] 그 역시 상황이 이렇다는 얘기만 할 뿐, 특별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런 것도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쇼핑을 할 때엔 내가 쇼핑의 주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번쯤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141쪽)] 아, 무서운 자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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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홍글씨 작가정신 소설향 1
이윤기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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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후배가..인사차 찾아왔다. 우리 부부는 늘상 하던대로 그 부부를 접대했다....그런데 그 후배가 살며시 나를 밖으로 불러내는 게 아닌가. '형님, 그러시면...여자들 버릇 나빠집니다. 형님이 왜 행주를 드십니까? 형님이 부엌 출입하시다뇨?...이러시면 저, 집사람 데리고 형님 댁에 못옵니다'
믿어지시는지? 남자가 행주를 들면 ...여자들 버릇이 나빠진다니. 뒤에 알게 된 일이지만, 후배는 뷔페 식당에 가서도...부인에게 음식 가져오게 하는 친구였다]

이윤기님의 산문집 <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의 한 대목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아, 이렇게 멋진 분이셨구나!' 하고 말이다. <태백산맥>을 쓴 조정래님이 서울대병원 역사상 아내의 간병을 도맡아 한 최초의 남편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비슷한 감동을 느꼈었다. 이런 위대한 분들도 집안에서의 남녀평등을 실현하는데, 가부장에 절어 사는 다른 남자들은 뭐가 그리 잘난 걸까?

책 뒤표지에 써있는, '나는 내 딸에게는 지아비의 종이 되라고 하지 않겠다'는 말처럼, 이윤기님은 <진홍글씨>에서 작중 화자의 입을 빌어 남녀평등을 역설한다. 우리 사회의 여성 차별적인 현실을 알기에 그의 말들에 대체로 공감했고, 남녀평등에 관해 거듭된 문제제기를 해대는 남성 작가에게 경외감마저 느끼게 된다. 이데올로기를 설파하는 책들은 흔히 지루하기 마련이지만, 이 책은 소설적 재미도 그런대로 갖추고 있고, 무엇보다도 막판 반전이 영화 [식스센스] 저리가라할 수준이다. 내가 읽었던 이윤기의 첫소설이자 그가 명소설가라는 걸 깨닫게 해준 작품 <숨은그림 찾기>에서도 막판 반전이 돋보이는 걸 보면, 이윤기님의 소설이 추구하는 지향은 뒤통수 치기가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은 원래 98년에 나왔던 것으로, 올해 재판을 내면서 다시금 조명을 받고 있다. 한물간 책들을 다시금 포장해 파는 것에 대해 시큰둥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던들 내가 이 소중한 책을 읽을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100페이지 남짓한 책이 7천원이나 되는 게 조금 비싸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거기에 대해 이렇게 말하련다. 책을 읽고난 감동으로 말한다면 '책값이 지금의 한 열배쯤 되어도 나는 사서 읽겠는데, 지금의 책값으로 그를 즐기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참고로 따옴표로 표기된 부분은 다른 책에서 이윤기님이 고 이문구의 책을 칭찬하기 위해 썼던 구절을 베껴온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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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떨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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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통의 책을 몇권 읽고 나니 그가 어떤 성격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물론 소설의 주인공과 작가의 성격이 비슷하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노통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 자신의 실제 모습이라는 확신이 선다. 내가 파악한 노통의 특징은 매우 발랄하다는 것. 책날개의 외모를 보면, 금방이라도 장난을 칠 것만 같다. 60년대였다면 히피가 되었을, 발랄하고 저항정신에 충만한 여자가 숨막히는 관료주의 사회에 편입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려움과 떨림>은 노통이 일본에서 회사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을 다룬 소설이다. 실제로 겪은 것인지 가상인지는 알 수 없지만, 노통으로서는 숨막히는 일본 회사의 분위기가 견딜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아래 사람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일을 시키고, 윗사람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동양사회를 합리성과 개인주의를 숭상하는 서양인의 시각에서는 이해할 길이 없을 것이다. 노통에 의하면, 회사 뿐 아니라 일본이라는 나라가 감옥이다. 일본 여성들에 대한 노통의 말이다.

[배가 고프다고? 먹는둥 마는둥 해...날씬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야. 너는 아름다워야 할 의무가 있어....너는 결혼할 의무가 있어...너는 아이를 낳을 의무가 있는데...너의 의무는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거야 (75-77쪽)]

일본 남성들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않지만, 최소한 '질식할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다'는 게 노통의 주장인데, 그는 '일본회사에서 일하지 않는 것 자체가 하나의 목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노통이 예찬하는 서양의 문화가 꼭 그렇게 좋기만 한 것일까?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에도 서양의 문물이 밀려들어와 회사는 더이상 평생 직장이 아니게 되었고,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말들이 유행하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이 전혀 없진 않겠지만, 이런 변화가 난 무섭다. 미국에서 일하는 내 친구는 거의 석달마다 한번씩 있는 감원에 자신이 포함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저래 가지고 제대로 일할 수 있겠나?' 합리성이란 말은 분명 좋은 것이고 나름대로의 장점이 분명 있겠지만, 자신의 신분이 확실히 보장되어야 더욱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측면도 있지 않을까 싶다.

동서양의 정신이 어떻든간에, 이 소설은 참 재미있다. 최근 노통의 소설에 약간 식상해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녀다운 발랄함이 물씬 느껴져,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기에 기꺼이 별 다섯개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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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백인들
마이클 무어 지음, 김현후 옮김 / 나무와숲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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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재미있다고 명성이 자자한 이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 영화는 때를 놓치면 비디오로 봐야 하지만, 책은 원할 때는 언제고-3년 안에는-볼 수 있다는 게 커다란 장점이다. 떠들썩한 명성대로 난 이 책을 매우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는데, 그건 이 책이 잘나가는 위선자들에 대한 냉소와 조롱을 유감없이 퍼붓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자인 마이클 무어가 원체 장난꾸러기여서 그런 것도 있다. 부시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무어가 한 질문을 보라. '조지, 자네 정말 성인 수준으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가?(68쪽)'

최근 나온 <웃음은 최고의 전략이다>라는 책 제목처럼, 자기 주장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매우 소중한 자산이다. 그래서 난 시종 진지하게-다른 말로는 지루하게-팔레스타인의 참상을 고발한 촘스키의 <숙명의 트라이앵글>보다 마이클 무어가 이 책에서 발랄하게 묘사한 몇줄의 내용들이 미국인들에게 중동문제에 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줬다고 생각한다.

무어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큰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널 엿먹이겠다고 하면서 엿먹이는 놈과 안그런 척하면서 엿먹이는 놈 사이에서 누구를 택하겠느냐는 말이다(301쪽)] 그래서 그는 랠프 네이더를 지지하는데, 그러면서도 그는 선거 직전 부시의 당선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면서 플로리다에서 고어에게 표를 던질 것을 호소한다. 노무현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놓고 갈등해야 했던 우리나라와 매우 흡사한 상황인데, 한국에서 노무현이 당선된 데 비해 미국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부시가 대통령이 된다. 그 이후 벌어진 일들로 보건대, 무어가 옳았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아주 작은 차이밖에 없지만, 그 작은 차이는 한반도의 운명에 아주 커다란 차이를 가져왔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이 되었다면 우리 현실도 지금과 크게 달라졌을까? 검찰의 독립성이 강화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참여정부 하에서 이라크 파병이 이루어지고, 노동자들의 분신이 잇따른 걸 보면 누가 되었던지 우리의 삶에는 그다지 큰 변화는 없었을 것 같다.

언론들은 노무현 당선의 의미를 '변화에의 의지가 표출된 것'이라고 한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우리가 진정으로 변화를 바라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변화라는 것은 대통령 하나 뽑아놓고 나자빠진다고 오는 것은 아니다. 변화에의 욕구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끈질기게 싸워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평소 프로축구를 외면해 오다가 A매치만 열렸다 하면 전국민이 축구팬이 되는 우리나라 축구처럼, 우리 정치도 선거 때만 반짝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노동자를 대표한다는 당이 겨우 5% 남짓한 득표밖에 하지 못하고, 천만 노동자 운운하면서도 노조에 가입한 사람이 100만에 불과한 나라에서, 홍세화님이 늘 주장하는 것처럼 노동자가 자신의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가진 나라에서, 변화는 오지 않는다. 변화는 저절로 오는 게 아니며, 노력해서 쟁취해야 하는 것이니까.

끝으로 이 책에서 공감했던 말들을 두개만 적어본다.
[갑자기 여성에게 투표권이 생겼으면 집권자인 우리들을 쫓아내야 마땅할 텐데, 웬걸, 우리를 위해 표를 던지는 것 아닌가(195쪽)]
여성의 지위가 세계 최하위인 우리나라에서 더 새겨들어야 할 말이 아닐까.

[(남자들은) 손을 콧구멍, 항문....으로부터 멀리하자. 버스나 기차에서 ...다리를 모으고 앉자(203쪽)]
동서를 막론하고, 남자에게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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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 - 전2권 세트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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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난 황석영님의 책을 그다지 많이 읽지 않았다.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은데다, 그때 그분은 감옥에 가 있었던 탓이다. 출소 후 펴낸 <오래된 정원>과 <손님>은 읽었지만, 그전 작품들은 아직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한 터였다.

<심청>을 읽었다. 황석영님의 작품이라면 일단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고 긴장했는데, 이번 책은 좀 달랐다. 일단, 너무 야했다. 조금 읽다가 '이게 황석영 책 맞나?'는 생각에 책 앞부분을 다시 펴보기도 했다. '번지점프 중에 하다'는 에로 영화의 제목처럼, 이게 황석영의 <심청>이 아니라 에로물 <심창>인 줄 알고. 이 심청은, 우리가 아는 심청이 아니었다. 우리가 어려서 들은, 심청이 인당수에 빠져 용왕의 아내가 된다는 이야기보단 황석영님이 쓴 심청이 훨씬 실제에 가깝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효의 상징으로 추앙받는 심청을 거리의 여자로 만들어 놓는 것에 대해 저항감이 앞섰다. 첩으로 팔려간 심청이 자신의 운명에 순응해 기꺼이 보약 역할을 하는 장면부터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 납치되어 창녀 생활을 할 때는 짜증이 났다. 우리가 아름답게 간직해온 여인이 만신창이가 되는 느낌이랄까. 심청의 활약이 시작되는 하권에선 그래도 마음이 흐뭇해졌고, 왕자의 부인이 되어 뭔가 대단한 일을 하나보다 하는 기대도 가졌지만, 남편이 죽고난 뒤 심청은 다시금 룸살롱 마담으로 돌아가고, 보육원을 제외하곤 이렇다할 업적을 남기지 못한 채 고향에서 생을 마감한다. 책에서 강조되던 심청의 총명함과 뚝심이 발휘될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았던 거다. 책을 읽고나서 조금은 허무했던 건 그런 까닭이다. 실제 심청의 삶이 이랬다고 쳐도, 진실보다는 전설을 더 믿고 싶은 게 내 마음인데.

화류계 여인의 삶. 납치해서 팔아놓고는 몸값을 빚으로 떠넘기고, 일을 아무리 해도 빚이 점점 늘어가는 삶. 이러저러한 경로로 익히 들어서 알고 있던 포주들의 착취를 이 책에서 확인할 때마다 분노가 앞서고, 예나 지금이나 여성들의 삶이 고달프긴 마찬가지라는 생각도 든다. 마음이 짠해서 그렇지 소설적 재미는 매우 탁월해, 주인공이 심청만 아니었다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읽었을 거다.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점들을 써본다.

1) 노인이 심청의 기를 흡수하는 대목을 읽고 난 후부터, 대추가 먹기 싫어졌다.
2) 심청의 첫남편 이동유는 천주교에 빠져 심청을 찾을 생각을 포기한다. 종교는 그리도 쉽게 아내를 버리게 만드는가?
3) 그 꿈많고 치밀한 심청이 난수이에서 뭘 하겠다는 계획도 없이 돌아온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심청은 얼떨결에 류쿠로 떠나는데, 작가가 강조했던 총명함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4) 심청과 결혼했던 왕자, 그는 전 아내가 아픈데 심청과 결혼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아무리 왕자라지만, 너무하지 않는가?

앞으로 심청 하면 황석영이 그려낸 심청을 먼저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전설이 깨진 걸 아쉬워하는 게, 내가 아직 철이 덜든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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