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노래의 날개
이윤기 지음 / 민음사 / 2003년 10월
평점 :
'대작'이라 함은 톨스토이같은 거장이 쓴 '내용이 방대하고 규모가 큰 작품'을 흔히 일컫지만, 내게 있어서 대작은 500페이지가 넘어가는, 그래서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책을 말한다. 요즘 '대작'을 읽고 있다. <비치>라는 책인데, 무려 600페이지에 달하는 '대작'이다. 300페이지로 된 책 한권을 읽는데 평균 사흘이 걸리니 600페이지면 적어도 일주일 내에는 읽어야 하건만, 이상하게도 열흘 정도가 소모되곤 한다. 그러다보니 지난달 책을 몇권 못읽어, 읽던 책을 잠시 접어두고 '이번달도 기본은 해야지'라는 생각에서 크기가 작은데다 얇기까지 한-나중에 보니 272페이지로, 결코 얇은 게 아니다-이윤기님의 소설, <노래의 날개>를 집어들었다. 게다가 <나비넥타이>나 <숨은 그림 찾기>를 읽으면서 이윤기님이 소설을 얼마나 재미있게 잘 쓰는지 알게 되었기에, 잽싸게 읽을생각을 했다. 하지만.
스님이 나오는 첫 단편부터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갈수록 내용이 형이상학적이라- 난 잘 이해가 안가면 무조건 형이상학적이라고 부른다-보통 책보다 훨씬 더 시간을 투자하고서야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다. 물론 책을 읽으면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재미에 푹 빠졌고, 그 이야기들이 픽션이 아닌, 당신이 몸소 체험한 듯한 이야기처럼 느껴져 더 깊은 울림을 내게 전해줬지만, 어찌되었건 내가 원래 목표로 삼았던 '기본만 읽자'는 끝내 달성하지 못했다.
번역이 종합예술이라는 걸 알게해준 최고의 번역가이자 화려한 수상 경력에 빛나는 소설가, 그리고 신화 연구자, 그래서 어떤 문인으로부터 '이윤기는 고래다'라는 찬사를 들었던 님의 지칠 줄 모르는 정열을 보면서 나 스스로를 비하하곤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윤기님과 나 사이에 공통점이 한가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이 픽션이 아닌 실제라고 가장하면, 이윤기님은 술을 아주 좋아한다. 이윤기님은 밀주나 한산소곡주, 나는 소주라는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위대한 문인과 뭔가를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난 기쁘다. 혹시라도 술이 님의 문학에 자양분이 되었다면, 지인들 사이에서 '술의 상징' 쯤이 되어버린 나도 문학에의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해본다. 물론 농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