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치 : 음탕한 계집
엘리자베스 워첼 지음, 양지영.손재석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브링 잇 온]이란 영화에서, 치어리더인 주인공은 동생에게 화를 내는 과정에서 동생이 하고있던 비디오게임의 전원을 꺼버린다. 그때 동생이 한 말은 'Bitch!'고, 우리말 번역은 '나쁜년'이다. 그런 제목이 아니더라도, 미모의 여성이 웃으면서 가운데 손가락을 쳐들고 있는, 매우 도발적인 사진이 담긴 표지를 본다면 대충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여성주의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항간에 유행하는 페미니즘 류의 책과는 또 다른, 매우 신랄하고 통쾌한 내용인데, 여성주의에 대한 책은 그래도 꽤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책은 처음인 것 같다. 저자는 남성화된 미국 사회를 비판하면서도 '페미니즘은 (부엌일만 하는 여성이 겪는) 우울증을 정치화시킴으로써 우울증의 침묵을 더욱 조용하게 잠재우는 일에 일조해 왔다'는 식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마저 서슴치 않는다. 2만2천원의 책값만 아니라면-알라딘에서 사면 10% 할인됩니다!-여러 권 사서 내 주위에 암약하는 마초들에게 돌리고 싶을 정도다.

오랜 기간 동안, 여성은 언제나 침묵을 강요당해 왔다. 여성은 언제나 상대의 요구에 거절 혹은 수용만을 강요당해왔을 뿐, 자신의 욕망을 먼저 말하는 것은 금기시된다. 비근한 예로, 남녀가 데이트를 할 때 하자고 하는 쪽은 언제나 남자다. 여자가 먼저 말을 꺼낸다면 '걸레'라는 별로 고상하지 않는 호칭이 붙게 마련이다. 저자는 삼손의 애인인 데릴라, OJ 심슨에 의해 죽었다고 추측되는 니콜 브라운 등의 예를 통해 이런 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하는데, 근거자료가 워낙 방대한지라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졸려서가 아니라, 100% 동감해서.

한가지 옥의 티를 잡자면, 저자는 힐러리에 대해, 그리고 그녀를 페미니스트로 보는 사회 일각의 시선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비난을 퍼부어 댄다. 저자는 힐러리의 능력이 대단함을 말해주는 지인들의 말을 옮긴 뒤, 이렇게 말한다. '힐러리 자신이 이 모든 것-대법원 판사가 된다든지, 선출직에 당선이 된다든가...-을 아내의 역할을 위해 포기했기 때문에....빌 클린턴을 보살펴 조는 것이 그녀의 직업이다' 그녀의 예언은 빗나갔고, 책이 나온지 2년 후 힐러리는 당당히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성급한 견해일 수도 있지만 힐러리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지도 모른다는 예측을 하는 사람도 있다. 저자는 심지어 힐러리를 이렇게 묘사하기도 한다. '애를 몇이나 낳은 것같은 펑퍼짐한 엉덩이에, 튼실한 근육질의 다리하며, 오늘 아이 하나 낳고 내일 당장 옥수수 포대를 나를 수 있을 것만 같은 건장한 어깨...' 글쎄다. 내가 보기엔 그렇게까지는 아니지 않을까 싶은데, 저자가 혹시 힐러리에게 사적인 감정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이런 옥의 티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램은 변함이 없다. 미국보다 훨씬 더 마초화된 한국 사회이니까.

한마디 더. 지금 알았는데, 책 표지에 나온 도발적인 미녀는 저자인 엘리자베스 워첼이란다. 이런 미인이라면 힐러리를 그렇게 비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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