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집 - 상
존 그리샴 지음, 신현철 옮김 / 북앳북스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존 그리샴의 <하얀집>은 내 기대를 한참 어긋난다. 숨막히는 법정스릴러를 상상하며 책을 집었건만, 이 책은 엉뚱하게도 일곱살 소년의 눈으로 본 세상을 그린 거다.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약간의 암투도 있지만, 스릴러와는 영 거리가 멀다. 소설을 구성하는 그리샴의 능력이 워낙 뛰어난지라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서 '존 그리샴은 이 작품을 통해 존 스타인백과 헤밍웨이로 이어지는 문학적 전통을 계승했다는 찬사를 받게 되었다'고 말한 그리샴 단골 해설가 신현철의 견해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는 왜 그리샴이 쓰는 모든 소설마다 '이게 최고다!'라는 말을 하는 걸까?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들을 간단히 정리해본다.

1) 외국인이 쓴 책에 한국이 나오면 반갑기 그지없다. 심지어 우쭐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아니다. <하얀집>의 배경은 1950년대고, 주인공의 삼촌은 한국전에 참전 중이다. 그 바람에 걸핏하면 한국전 얘기가 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난 좀 곤혹스러운 느낌을 받았다. 그 전쟁이 우리 민족간에 벌어진, 우리가 익히 듣던대로 '동족상잔의 전쟁'이었다는 것도 그렇고, 그당시 미국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니까. 그래도...이라크에 파병하는 것은 반대다!

2) 스타라는 이름을 가진 친척이 주인공을 방문한다. 화려한 도회지에서 살던 그녀는 농촌에서 목화를 따는 주인공의 가족을 노골적으로 경멸한다. '한번이라도 자동차를 타본 적은 있니?' '텔레비젼은 본 적이 있니?' 이런 식의 질문을 던지면서. '이곳에는 아무도 대학에 간 사람이 없지?'라는 식의 질문이 어린이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는 안중에도 없다. 난 그녀의 경솔함에 혀를 차지만, 돌이켜보면 나 역시 농촌에 살고 개발이 안됐다는 이유로 그 사람들을 동정의 눈으로 바라본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물질이 삶의 전부는 아니고, 어찌보면 그들이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3) 그렇다 하더라도 농사는 '낙후성'과 같은 말이다. 그들의 노동은 너무 고되고, 그 대가는 턱없이 적어 보인다. 그리샴 역시 극중 인물의 말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들만 농사를 짓고 있죠' 주인공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사를 지을 마음은 애시당초 없다. 결국 그들은 공장이 있는 북부로 떠나는데, 이런 의문이 들긴 한다. '그럼 농사는 누가 짓지? 난 싫지만, 누군가 짓긴 지어야 하는 건 아닌가?'

4) 책에 나오는 보안관은 맨날 낮잠만 자고, 남의 집에서 음식만 축내는 무능하고 염치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우리가 공권력에 대해 갖고 있는 그런 정서를 그리샴도 가지고 있다니, 잘사나 못사나 경찰을 달가워하지 않는 건 다 똑같은가보다.

결론: 이 책의 배경은 그리샴의 고향인 아칸소의 농촌이다. 그리샴은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 당시 풍경을 그렸다는데, 난 가본 적이 없어서 별 감흥이 없었다. 클린턴이 어떤 곳에서 주지사를 했는지 궁금한 분, 혹은 아이들이 세상에 눈을 뜨는 과정에 관심이 있으신 분, <크리스마스 건너뛰기>를 재미있게 읽었던 분들이라면 한번 읽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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