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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므 파탈 - 치명적 유혹, 매혹당한 영혼들
이명옥 지음 / 다빈치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쁜 여자가 있다. 어떻게 한번 해보고 싶은데, 그녀는 관심도 없다. 이럴 때 남자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선화공주를 꼬시고자 한 무왕처럼 터무니없는 루머를 퍼뜨릴 수도 있겠고, 죽자고 따라다니는 스토킹을 감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쉬운 것은 그녀를 마녀로 모는 거다. '저 포도는 시어서 못먹을 꺼야'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한 여우처럼, 이쁜 여자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있어 멋모르고 사귀면 파멸할 것이라는 팜므파탈의 신화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게 오랜 세월 동안 남성들이 취해온 방법이었다. 얼굴이 반반한 여자에게 '쟤가 그렇게 헤프대!'라고 하는 말을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저자는 팜므 파탈의 신화를 세기말 페미니즘이 대두한 데 따른 불안감으로 보지만, 페미니즘 이전에도 팜므 파탈은 언제나 존재했다. 팜므 파탈의 신화는 소설, 시, 연극 등 각종 예술 장르를 통해 확대재생산됐는데, 그림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책에는 팜므 파탈의 제물이 된 29명의 여인들이 등장하는데, 미술작품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그에 얽힌 얘기들이 너무도 재미있어,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아쉽기까지 했다. 그림에 대한 친절한 해설까지 곁들여져, 읽고 난 뒤 머리가 꽉 찬 느낌마저 주는, 한마디로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다.
요즘이라고 해서 팜므 파탈의 신화가 끝난 건 아니다. 샤론 스톤이 나오는 '원초적 본능'이 선풍적 인기를 끈 것처럼, 팜므 파탈은 여전히 가장 잘 다루어지는 매력적인 소재다. 미인이 워낙 드물었던 예전과 달리, 성형수술의 발달로 미인의 숫자가 크게 늘어난 지금은 그만둘 만도 한데, 아직까지 그러는 이유가 뭘까? 비록 내 여자가 아닐지라도, 난 미녀들을 보면서 삶의 즐거움을 느낀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이 삭막한 세상에서 미녀들마저 없었다면 어떻게 삶의 고달픔을 견뎠을까? 미녀는 사회를 밝게 빛나게 해주는 존재, 팜므 파탈이니 뭐니 하면서 미녀들을 괴롭히는 짓은 제발 좀 그만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