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하는 사회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나로 하여금 세상을 바르게 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강준만 교수가 <오버하는 사회>를 냈다. 기쁜 마음으로 책을 샀지만, 그의 다른 책들과 달리 이번 책은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다. 그는 책 전반부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 '열린우리당'을 비판한다. '어리석다' '시대착오적인 망상' '판단이 근시안적' '나라를 휘청거리게 할 만큼 위험천만한 것'등의 수사를 동원하면서. 그가 이렇듯 흥분하는 게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지만,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탈당파들이 민주당 내에서 개혁을 하길 바랐지만, 당내개혁이 불가능하면 나가서 새살림을 차리는 수밖에 없지 않는가. 당시 당권을 쥐었던 소위 '구주류'들의 면면을 보면 어떤 종류의 개혁도 가능하지 않아 보이지 않던가?

그는 열린우리당이 성공할 수 없는 열가지 이유를 나열한다. 사람이란 진짜 이유가 4-5가지 되면 동어반복을 통해 10가지 쯤으로 확대재생산하는 속성이 있는데, 강교수도 거기서 자유롭지 않아, 그가 든 10개의 이유란 것도 사실은 하나다. 호남의 민의를 배신했다는 것. 그렇다면 호남 유권자들은 정치개혁을 바라지 않는다는 얘길까. 그는 일관되게 주장한다. 민주당 구주류가 아무리 타락을 했을지언정 한나라당에 몸담았던 사람들보다는 낫다고. 그건 보기 나름 아닐까? 난 경선으로 뽑힌 자기 당 후보를 흔든 행위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후안무치한 짓거리로 생각하기에, 그런 식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김대중의 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그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 크지만, 자민련과의 연합도 일부 작용했다고 본다. DJP 연합 동안 JP가 한 게 '몽니' 말고 뭐가 있는가? 마찬가지로 난 민주당 구주류와의 동거로는 정치개혁과 지역주의 청산의 대망이 이루어지기 힘들다고 본다.

'참으로 놀라운 일은 많은 사람들이 민주당 분당과 재신임 정국을 연계시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12쪽)' 이런 강교수의 주장이 나로선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재신임을 받겠다고 선언한 건 측근비리 때문이지, 분당은 아니잖는가. 그가 내가 모르는 어떤 것을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것을 분당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당을 지었다 부쉈다 하는 일은 우리 정치사에서 흔하디 흔한 일인데, 그렇게까지 오버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강교수는 심지어 이런 말도 한다. '이미 극단으로 치달은 코드정치부터 바꿔야 한다 (24쪽)' 코드정치. 보수언론들이 노무현 죽이기의 용도로 숱하게 써먹은 말인데, 그도 거기에 세뇌된 것일까. 노조에 대한 대응이나, 이라크 파병 과정을 보면 노무현의 주위엔 온통 친미사대주의자들이 인의 장막을 쳐놓은 것 같은데, 웬 코드정치란 말인가. 아무리 현명한 사람도 한가지 이슈에만 매몰되면 판단이 흐려지는 법, 때론 분노의 글쓰기도 필요한 법이지만 옳은 판단은 냉정함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분당에 관해서 그와 나는 생각이 다르며, 누구 생각이 옳은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내 정신적 스승인 강교수의 책에 이런 서평을 하는 게 미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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