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라고 해서 모기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가을 모기는 유난히 더 얄밉다. 첫째 이유로 더위가 이미 물러갔는데 버티고 있는 뻔뻔함이 싫고, 둘째로 모기가 많을 때와 달리 한 두 마리만 눈에 띄니 더 얄밉고, 셋째로 잡으려고 해도 잘 안 잡히는 그 영악함이 가증스럽다. 내 옆에옆에 방에 가면 나보다 살이 더 찐 멋진 선생님 한분이 계시건만, 왜 이 방에 들어와서 날 괴롭히는 걸까?


가을 모기들은 희한하게도 에프킬러 같은 살충제에 잘 안 죽는다. ‘강하고 빠른 살충력’이라고 쓰여 있는 ‘홈키파’를 뿌려 놓으면 나는 숨이 막힐지언정 모기들은 유유히 비행을 하고, 심지어 모기를 향해 직격탄을 쏴도 홈키파에 그려진 것처럼 괴로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는 듯하다.


결국 손으로 잡아야 하건만, 날아가는 중간중간 비행궤적을 어떻게나 자주 바꿔 대는지 밤새도록 손뼉만 치다 허탕을 치는 경우가 하루이틀이 아니다. 언제 물렸는지 가려워 죽겠기에 허벅지 부분을 열나게 긁던 어젯밤(난 밤엔 반바지 차림이다), 유람하듯 날고 있는 모기를 보자 갑자기 분통이 터졌다. “너와는 같은 천장을 쓸 수 없다”고 외치며 녀석을 쫓아다녔다. 키보드, 모니터, 책과 책상에 연방 헛손질을 한 지 십여분, 녀석이 지친 기색을 보이며 벽에 붙는 걸 난 놓치지 않았다. 숫자가 많은 여름 모기를 잡을 때의 만족도가 10점 만점에 7 정도라면, 가을 모기가 내 손바닥에 의해 죽을 때의 쾌감은 거의 10에 육박한다. 모기의 시체를 탁탁 털어낸 뒤 기분이 좋아진 나는 냉장고에 넣어둔 빵을 먹으며 나를 위로했고, 그로부터 30분도 안되어 졸기 시작한다. 그래도 상관없다. 날 괴롭히던 모기가 이젠 없으니까.


아침에 일어나 사우나를 가는 동안, 발꿈치 뒤가 계속 가려운 걸 느낀다. 죽은 모기가 부활했을 리는 없는 노릇, 한 마리인 줄 알았던 모기는 사실 두 마리였나보다. 사우나 후 내 자리에 앉아서 눈을 부릅뜬 채 날 문 모기를 찾아보지만, 녀석은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에 숨어 오늘밤의 만찬을 기다리고 있으리라. 하지만 그래봤자 소용없다. 오늘 난 5시 회의에 들어갔다가 학교 모임에 참가한 뒤 집에 갈 것이고, 수요일부터는 서울서 연수교육이 있어 사흘간 이곳에 없다. 내가 돌아오는 건 이번 일요일쯤이나 되야 할 듯, 모기 이녀석 너 이제 좀 굶어 봐라. 모기를 굶긴다는 생각만으로도 8 이상의 만족도를 가져온다는 걸 지금사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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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9-19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히 잠이 막 들락말락하는 그 시점에 귓가에서 `왱!' 하고 울며 가는 모기들이 있습니다. 대체 어떻게 내가 막 잠들려고 하는지를 알았는지가 궁금할 지경이에요.

프레이야 2006-09-19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째 모기와 님의 동지애가 느껴지는 아이러니칼한 글입니다.^^ 제목에서 오는 뉘앙스일까요? 애완모기 굶기기 작전, 성공하시기 바래요 ㅎㅎ

비자림 2006-09-19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한 마리 압사시켰습니다. 벽에 피 두어 방울 흔적이 남더군요. ㅎㅎ
종 쳐서 들어가야겠네용 좋은 하루 되세요~~~~

클리오 2006-09-19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 모기가 굶으면서 과연 괴로워하긴 할까요? ^^

날개 2006-09-19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같은 방 쓰는 처지에 너무하시는거 아녜요?^^

가을산 2006-09-19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모기가 제일 싫어요. 제가 곤충/절지류하고 바늘을 싫어하는데,
모기는 그 두 가지를 다 가졌어요.
제가 아파트가 아닌 주택에 산다면 가장 걱정될 것이 바로 모기에요.
모기 소리가 나면 전 잠 못자요. 잡을 때까지. 아니면 다른 방 가서 자거나.

마노아 2006-09-19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긍정적인 결말, 훌륭하십니다. ^^

moonnight 2006-09-19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의준비는 맘편하게 잘 마치셨나요? 와중에 이렇게 피곤한 일이 있으셨군요. ^^;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은 집에서 편히주무시길 바래요. ^^

달콤한책 2006-09-19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 놔두고 사무실에서 자는 것도 서러운데 모기까지...계속 학교에서 주무시니 몸 상할까 걱정입니다그려.

라이더 2006-09-19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 공감합니다. 완전 똑같은 경험을. 한마리가 아니었던 거에요.

Mephistopheles 2006-09-19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하긴 독하죠 가을모기...그래도 액체 모기향 근처에 하나 피워 놓으면
접근을 안하던데...^^

또또유스또 2006-09-19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바닥을 물리면 가장 가렵고 그 다음이 발뒷꿈치인줄 아뢰오..
그 녀석(아니 그암컷) 독한 빨대를 가졌군요.. 뒷꿈치를 물다니....
그나저나 오늘밤 만찬을 기대하고 잇을 그 모기가 가엾네요..ㅎㅎㅎ 메모라도 써 놓고 가심이...

건우와 연우 2006-09-19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기를 아사시킬 계획이시로군요...같은 피를 나눈 사이에 이리 참혹한 계획을...
건승을 빌께요..^^

sooninara 2006-09-19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다른방의 어머님께 가지 않을가요?

하루(春) 2006-09-19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기. 아파트에 살기 시작한 이후 모기한테 시달린 적 없는데요. 그 노무 모기, 밤에 자려고 딱 누우면 그 때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귓가에서 엥엥거리잖아요. 그거 진짜 고문인데, 대단하십니다. 경배(맞는 표현인가?) 아무튼, 존경스러워요.

춤추는인생. 2006-09-19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보고 깜짝 놀랐쟎아요 ㅎㅎ 밤에 깜깜한 거실나갈때에도 제방에 모기들어올까봐. 방 불을끄고 드나든답니다... 정말 모기미워요.!

진/우맘 2006-09-20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모...ㅎㅎ 전요, 넷째, 여름 모기와는 달리 '나 더위 물러가고 한물 갔어, 나 잡아 봐라~'는 듯 천천히, 유유히 나는....그러면서도 약아빠져서 절대 잡히지 않는 점이 젤 얄미워요. (지금 곁에도 한 마리...ㅡ,,ㅡ;)

마태우스 2006-09-21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흐음 그집에도 한마리...전방금 한마리 잡았다우...^^
춤추는인생님/모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군요 모기같은 사람이 되면 안되겠네...^^
하루님/오 아파트는 글쿤요 여긴 5층인데요 모기한텐 별로 힘들지 않나봐요...
수니님/음, 저 글은 연구실에서 잘 때 쓴 거랍니다. 제방에 먹을 게 뭐 있다고 와서 죽치는지 모르겠어요
건우님/음하하핫 제가 짐승 굶는거 못보지만 모기는 예외!
유스또님/메모 쓰는 거 잊어버렸네요^^ 어쩌나...
메피님/집엔 전자모기향 있어요 그거 신통하더이다...^^ 학교에도 하나 갖다놓든지해야지...
라이더님/한마리가 죽으면 바톤터치를하나봐요... 떼로 안덤비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달콤한책님/님의 걱정하는마음이 고맙네요. 쵸코파이라도 한상자 보내주시어요^^
달밤님/집에서도 편히 못자는 거 같아요...ㅠㅠ 그놈의 인터넷 때문에 꼭 딴짓하다 12시 넘겨요...
마노아님/어머 제가그랬던가요? 호호, 전 원래 그런 놈이어요
가을산님/흐음,님같은 카리스마가 모기를 무서워한단 말이죠 님 협박할 땐 모기 몇마리 잡아가야겠군요^^
날개님/날개 있는 종족이라고 두둔하시는군요 흥!
클리오님/설마즐거워하겠어요^^
비자림님/하루 한마리!@ 홧팅.
배혜경님/전 한번도 모기와 동지였던 적이 없구요 앞으로도 그렇습니다. 모든 게 다 오해입니다^^
주드님/미녀님을 괴롭히다니 그런나쁜.......부들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