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든 언니들, 형들과 수다를 떠는 도중 남자 한분이 자신이 들은 성폭행 경험담을 얘기했다. 신부(천주교)가 신자를 성폭행하고, 그 뒤에도 계속 “남편과 이혼하고 (신부직을 포기할테니) 나랑 결혼하자.”고 했다는 것. 그녀는 그 사실을 남편에게 알릴지 말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아내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걸 이해해 줄 남편이 과연 얼마나 될까? 여자는 결국 신부를 고발했지만 이혼을 당했고, 신부는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는 선에서 일이 마무리되었단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성폭행 중 많은 수가 이런 식으로 마무리되니, 그리 새로울 것도 없다. 내가 경이롭게 생각했던 건 다른 언니들의 반응.
언니1: 여자가 먼저 꼬리쳤겠지!
언니2: 맞아. 여자가 좀 이상한 사람 아냐?
언니3: 신부 스토커 같은데? 내가 살던 동네에도 멋지게 생긴 신부가 있었는데, 그 신부를 이성으로 좋아한 여자가 얼마나 많았다고.
문제를 제기한 남자는 계속 “그게 아니라니까”라고 말했지만 대세를 뒤집지는 못했고, 나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그들의 말을 듣기만 할 뿐이었다.
성폭력의 가해자가 “그런 일이 없다.”고 발뺌을 하거나 “여자가 먼저 꼬셨다”고 피해자 탓을 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성추행의 가해자였던 육군장성 역시 피해를 당한 여성을 사이코로 몰았었다. 가해자의 그런 태도는 물론 인간 자체가 뻔뻔한 데서 기인하지만,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사회 분위기도 큰 작용을 한다. 성폭행이 외부로 알려졌을 때, 많은 네티즌들이 피해자를 비난하는 댓글을 달곤 한다. “새벽 세시까지 집에 안갔다는 건 잡아먹어 달라는 얘기다.” 주로 남성인 그들이 끈끈한 연대의식을 보여주는 것과 달리, 피해자에게 힘이 되어 줘야 할 여성들마저 피해자 탓하기에 동참하는 현실, 여성들이 성폭행 사실을 알리는 걸 꺼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들 아는 얘기를 여기서 중얼거리는 이유는? 안타까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