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제목이 선입견을 조장하는 경우가 있다. <내 남자의 유통기한>이 바로 그런 영화다. 제목 때문인지 사람들은 이 영화가 사랑의 유통기한이 18-30개월 정도밖에 안된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내 견해로는 그것보단 부부간에 존재하는 가치관의 차이가 너무도 클 때, 부부의 존립이 가능하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먼저 여자. 디자이너인 여자는 장차 자신의 디자인 제국을 세우겠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그래서 그녀는 하루 종일 일하고, 여유만 생기면 집을 넓히지 못해 안달이다. 반면 남자는 잉어 감별사로, 물고기와도 대화를 나눌 정도로 그 일을 즐기지만 큰 돈벌이를 하는 건 아니다. 남자는 좁디좁은 공간에서도 불편 없이 살 수 있으며,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견딜 수 있다. 아이가 생기자 여자는 남자로 하여금 일을 그만두게 하고, 육아 및 자신의 뒷바라지를 맡긴다. 남자는 그 모든 걸 감수하지만, 여자는 계속 불만이다. 돈 때문에 고초를 겪을 때마다, 그리고 좁아터진 집구석을 볼 때마다 소리를 지른다.

“이게 사람 사는 거야?”

여자는 점차 성공을 하고, 큰 집과 일하는 사람을 거느릴 정도가 되었지만, 여자의 꿈은 애당초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자. 아파트 평수를 늘려나가는 게 꿈인 사람과 큰 집을 싫어하는 사람이 부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부부생활이란 다른 사람들이 서로에게 맞추려고 노력하는 과정이지만, 이렇듯 가치관이 틀린 부부가 어찌 잘 살 수 있겠는가. 다른 게 다 다르더라도 목표가 같다고 해보자. 예를 들어 ‘타워 팰리스 입주’가 목표라면, 그 목표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동안에는 서로간의 갈등도 사그라들지 않을까. 영화에서 결국 쫄딱 망하고 만 여자는 남자의 ‘이대로가 좋다’는 가치관에 동화되는 듯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이렇게 외침으로써 그게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갑자기 디자인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나를 미치게 하는 남자>는 남녀간에 가치관 못지않게 취향도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나름의 취미를 가진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는데, 그가 보스톤 레드삭스의 광팬이었다. 심지어 여자가 파울타구에 맞고 병원에 실려가도 남자는 그대로 앉아 야구를 관람할 정도. 여자는 남자에게 맞추려 야구장에 매번 따라가고, 거기서 노트북을 펴놓고 일하면서까지 남자와 함께 하려 한다. 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척하는 것과 다른 법, 그 차이는 결정적인 곳에서 드러나기 마련이다. 일년에 열아홉차례밖에 벌어지지 않으며, 그나마도 홈에서는 아홉경기밖에 없는 양키스와의 라이벌전에서 남자는 야구경기를 포기하고 여자 쪽 행사를 따라가는 결단을 내린다. 아무리 즐거운 척해도 남자의 관심은 오직 야구, 그걸 드러내지 않으려던 남자는 자기가 유일하게 안본 그 경기가 7-0으로 뒤지다 8-7로 역전한 최고의 명승부라는 걸 알자마자 화를 냄으로써 로맨틱한 분위기에 젖어 있던 여자를 실망시킨다.


여자의 소중함을 뒤늦게 깨달은 남자는 평생티켓을 팔며 그녀를 잡아보려 하고, 여자 역시 그 티켓이 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는지라 경기장에 난입하는 소동을 벌이면서까지 티켓을 못팔도록 한다. 둘은 깊은 키스를 나누며 모든 난관을 극복한 듯하지만,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갈등은 여전히 잠복하고 있다. 남자는 여전히 야구에 미쳐 살아갈진대, 야구를 안좋아하는 여자가 언제까지 남자에게 맞춰줄 수 있단 말인가. 그 반대의 경우, 즉 남자가 평생티켓을 포기했을 경우에도 그건 마찬가지다. 그 행위가 일시적으로 여자를 감동시킬 수는 있을지언정, 야구밖에 몰랐던 남자의 인생은 뭐가 되는가.


야구는 그래도 같이 볼 수라도 있지만, 혼자 해야 하는 독서는 보다 나쁜 취미다. 일년에 300권 정도를 읽는다는 남자가 집에서 아내와 한마디도 안한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여자도 독서를 좋아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그 부부의 사랑도 그리 오래 가지 못할 듯하다. 이건 취향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지, 결코 유통기한의 문제는 아니다. 과거 낚시과부나 골프과부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기준으로 따지면 죄다 이혼감이 아닐까. 그러니 이성을 택할 때 가치관이나 취향을 충분히 고려해서 서로 맞출 수 있는지를 따져봐야 하고, 어느 정도의 연애기간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내 남자의 유통기한>에 나오는 남녀는 만난지 하루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불행의 씨앗은 그때 뿌려졌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기인 2006-07-14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웃 제가 항상 명심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 그래서 저는 항상 애인이랑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해요 ^^ ㅎㅎ 연애란 공유라고 생각해서요.

프레이야 2006-07-14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가치관과 취향, 상당히 중요한 조건이죠. 상대에게 맞춰주던지 내 것을 어느정도 포기할 수 없다면 부부간에 갈등은 뻔하죠. 하지만 이게 처음부터 완벽하게 맞는 사람은 없을 걸요. 살면서 어느정도 맞춰가는 부분이 많아요. 그래서 부부란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는 특별한 관계인 것 같아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무척 더운 날이에요^^

Mephistopheles 2006-07-14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치관과 취향을 맞춘다는 것...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겠죠..^^
둘중 어느 한사람이 가치관이나 취향이 백지상태라면 모를까...

로쟈 2006-07-14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이 '불행의 씨앗'을 뿌리실 일은 없겠습니다.^^

마늘빵 2006-07-14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보셨군요. ^^ 참 좋죠.

비로그인 2006-07-14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정말 보고싶어요ㅠ.ㅠ

산사춘 2006-07-14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치관의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전제부터가 문제인듯 싶습니다.

건우와 연우 2006-07-14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이를 그냥 인정하면 안돼나요...
꼭 맞는 사람이 아니어도 그냥 덜그럭거리며 가끔씩 일치하는걸 찾아가며..
그게 안된다면 세상엔 슬픈 <사이>가 너무 많아요...

가을산 2006-07-14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능한 같은 사람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서로 맞추어가는 과정이 또 사는 재미 아닐까요? ^^ 음... 희망 사항일까요?

비로그인 2006-07-14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모든 걸 너무 잘 아시기 때문에 결혼하시지 못하는 게 아닐까...요 ^^
(정곡을 찌름)

해리포터7 2006-07-14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아저씬 삼성라이온즈 광팬입니다. 그래서 4월부터 저희집 TV는 야구만 합니다..이렇게 10년을 넘게 살아왔지만 제가 야구룰을 잘 아느냐 아닙니다..몇년전에 그래도 같이 봐줘야 겠다 싶어 같이 앉아서 보다가 자막에 땅콩 뜬콩이 보이길래 자기야 저개 뭔소리래? 했다가 집에서 쫒겨 나는줄 알았습니다. 땅볼과 뜬공을 모르다니.니가 진정 나랑 산거 맞냐구?흑흑..하지만 저두 할말은 있다구요..재미없는걸 어쩌란말입니까? 그러는 남푠님은 애드가 앨런포우가 월매나 슬픈시를 남겼는지 아시냐고욧!쳇!이상 취미가 쪼끔다른 해리퍼터네 집풍경이었습니다.

모1 2006-07-15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님 보면...같은 취미가 있으셨으면 하긴 합니다...주말에 서로 핀트가 안 맞는 모습을 보면요..

마태우스 2006-07-16 0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1님/너무 같은 취미면 그것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해리포터님/땅콩과 뜬콩...호호. 정말 멋지십니다. 갠적으론요 해리포터님의 취향을 전 더 좋아해요. 전 앨런 포우가 슬픈 시를 남겼단 사실을 지금사 알았습니다.
고양이님/어맛 고양이님 하시는 일 잘되시길 빌겠습니다(무슨 뜻인지 아시죠?^^)
가을산님/맞아요 그런 게 사는 재미죠...
건우님/전 차이를 인정하죠. 제가 말한 건 그게 아닌데...ㅠㅠ
산사춘님/억울해요 제가 그런 전제를 했다니....................
주드님/여자분들이 많이 오셨더군요 극장에.
아프님/딱 아프님 취향이더군요^^
로쟈님/님의 댓글을 볼 때마다 황송하단 생각이 들어요. 그게다 내공 때문인 듯...^^감사합니다!
메피님/제가 쓴 맞춘다는 표현은 '견딘다'가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오해의 여지가 있었네요
배혜경님/그니까 제 말은 극복할 수 없는 차이를 말하는 거랍니다. 글구 습도가 넘 높아서 짜증나요!! 지하철 역까지 걷는 것만으로 몸이 흠뻑 젖어버리고...잉..
기인님/자상하시군요 멋진 애인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