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번째: 5월 11일(목)

누구와: 후배와

마신 양: 소주 두병--> 맥주 두병


3년 쯤 전, “형이 안놀아줘서”란 핑계를 대며 결혼한 후배는 작년 이맘때의 술자리에서 “이혼했다.”는 슬픈 소식을 내게 전해 줬다. 그 둘 사이에는 태어난 지 돌이 채 안되는 아이가 있었고, 후배는, 내게 말은 안했지만, 위자료를 다달이 지급하느라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물론 그건 애를 떠맡은 여자 쪽도 마찬가지겠지). 원인이 어디에 있던지 즐겁게 살아야 할 젊은 부부가 갈라서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고, “이혼의 증가는 불행한 결혼이 줄어드는 것”이라는 주장을 폈던 나 역시 그 후배를 보면서 안타까워했다. 그 후배가 어떤 생활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혼자 밥을 차려먹어야 하는 삶에 만족했을 것 같지는 않다.


작년 말, 후배로부터 “이전 아내가 다시 합치기를 바란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지난번 만남에서 그는 “다시 예전 집으로 돌아갔다.”는 기쁜 소식을 내게 알려왔다. 후배나 아내는 물론이고 아이의 장래를 봐서도 축복이라 할 만한데, 문제는 결혼생활을 잘 유지하는 것, 지금이야 싸웠다 화해한 직후의 서먹함으로 갈등이 없지만, 사람이란 변하지 않는 존재라는 걸 감안하면 갈라서게 만든 불씨는 여전히 잠재해 있다고 할 수 있다. 후배에 의하면 “아내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고 한다. 그에게 평소의 지론을 말해줬다.

“한쪽이 100% 잘못한 싸움은 거의 없다. 너 자신도 많이 변해야 한다.”

후배는 흔쾌히 내 말에 동의해 줬고, 그의 얼굴에는 예전의 어두움 대신 빛이 넘쳤다. 잘 살게나, 동생.


62번째: 5월 19일(금)

누구와: 곰과

마신 양: 소주 네병+ 알파


내가 곰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여성적 캐릭터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분위기에 맞는 대화를 구사할 줄 안다. 이런 스타일의 남자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내 예상대로 그는 “주변에 여자 친구가 많다.”고 한다. 아직 총각이고 성격도 좋은 그, 여자들이 남자를 고를 때 여자에게 인기가 많은가 하는 것도 중요한 기준으로 잡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곰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가 너무도 술을 잘 마시기 때문이다. 잘해야 소주 세병에 못미치는 주량을 가진 나는 번번이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고, 다음날이면 “어제 폐가 많았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은 술이 잘 받았는데, 내가 술을 줄인 덕분일 수도 있고, 냉면을 안주로 소주를 마셔야 하는 필동 냉면집에서 1차를 시작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2차를 가고 3차를 갔지만 술이 전혀 취하지 않아 곰으로부터 “오늘은 평소와 다르시네요?”란 찬사를 들었는데, 다음번에는 더 몸을 만들어 곰이 자는 모습을 보고 싶다. 기다리시오, 곰!


63번째: 5월 23일(화)

마신 양: 소주--> 맥주


축제 기간이다. 그래도 학과장인데 학생들이 하는 주점에서 술을 먹어 주는 게 도리, 조교선생들 몇과 더불어 6시 쯤 주점을 찾았다. 준비가 안되었다고 학생회장이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저...내일 오시면 안되요?” 후원금을 건네고 밖으로 고기를 먹으러 갔다. 배가 터지게 먹었다. 술이 좀 들어가니 갑자기 주점에 안간 게 마음에 걸렸다. 차를 타고 다시 그곳에 갔더니 다른 단과대보단 못하지만 성업 중이었다. 맥주를 시키고 안주를 시켰다. 아주 대단한 맛은 아니어도 학생들의 정성이 깃든 푸짐한 안주에 극진한 서비스는 나로 하여금 최고급 술집이 부럽지 않게 해줬다. 술값과 2차 후원금, 그리고 우리가 먹어치운 고기값을 계산해보니 돈을 너무 많이 쓴 듯하지만, 여기서 쓰고 이번주 내내 굶자는 생각을 하며 나오지 않는 돈을 꺼냈다.


술이 제법 취했나보다. 사람들이 많이 내리기에 따라 내렸더니 아뿔사, 거긴 수원이었다. 출발하는 기차를 뛰어가서 타려다 역무원에게 제지당했는데, 다행히 다음 열차가 10분 후 도착해 그걸 탈 수 있었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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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6-05-24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좋은 글이네요. 추천합니다.

비로그인 2006-05-24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 같은 남자= 좋은 남자

기인 2006-05-24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축제 때 주점도 하네요 ^^; 축제 때 주점은 목적이 있는 건가요?
저는 주점이라면 변호사비 마련을 위한 주점; 밖에는 몰라서. 축제 때는 보통 장터를 하는데, 장터 또한 과에서 당시 투쟁하고 있던 조합을 위한 장터 같은 것을 해서 열심히 먹어주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주점은 그렇다쳐도, 장터의 음식맛은 장난 아니었죠. -_-; 파가 떨어져서 총장잔디에서 풀 뜯어서 풀전(?) 부치고 쩝... 휴우. 그나마 민가협 장터는 먹을만했는데.. 옛날 추억이 나네요 ^^

하늘바람 2006-05-24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곰은 단군신화에도 나오듯 기다림의 천재에요. 괜히 곰과 내기하셨다 몸상하셔요

마태우스 2006-05-24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저..주점이 장터에서 술만 파는 것 같은데요...민가협에도 관여하셨군요. 정말 존경스러운 분입니다...
나를 찾아서님/곰은 우리 민족의 조상이지요. ^^
부리님/늘 말없이 추천해주시는 거 다 압니다. 감사드려요

마태우스 2006-05-24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신화는 신화일 뿐입니다. 곰도 인간인데 어찌 허점이 없겠습니까. 써놓고 보니 말이 이상하네..

mannerist 2006-05-24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요즘 애인이 '곰돌씨'라고 부르는데요. ㅎㅎㅎ

기인 2006-05-24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저는 후배들이 파는 거 열심히 먹기만 했는데요. -_-; 새내기때는 호객행위만 하고요. 제가 음식 만드려고 하면 다들 거부하던데요 -_-aaa 이 장터 한번 해보면, 돈 열라 남아요. 그래서 그것으로 당시 투쟁하고 있던 분들에게 지원금 전달하고 했지요. 요즘은 학생의 복지를 위해서 장터를 하나 보네요 ^^; 하기는 우리 학교도 최근 학생회장이 공공연한 '반권'이라서 말이 많은 상황입니다.
그리고 민가협에서는 열사 유가족 분들이 와서 음식을 만드시기 때문에, 정말 제대로 된 음식이 나와서, 언제나 인기 1순위였죠 ^^
제가 선배가 되니 과장터는 잔디 뜯어서 파전을 만들지 않나. 참... (역시 선배가 되면 못마땅한 점만 보이나봅니다.) 얼마전에 학교 축제였는데, 이제는 모르는 후배밖에 없고, 지나가도 호객 행위의 대상도 안되서 슬펐어요 ㅜㅠ

비로그인 2006-05-24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님이 어떤 분일까 궁금하네요 ^^

야클 2006-05-24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는 좋은데 곰은 느무느무 싫어요.

2006-05-24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6-05-24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술 얘기를 접할때마다 배를 바라봅니다. 어여어여 이것이 나와야 할텐데..흐흐.

하이드 2006-05-24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나두 술! 근데, 여기는 소주 4달러밖에 안하더라, 참소주~

비로그인 2006-05-24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좋은 댓글이네요. 추천합니다.

Mephistopheles 2006-05-24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7: 맞아요....부부가 이혼을 하는 이유는 어느 한쪽의 책임이라기 보다는 양쪽 책임이라고 생각해요..박수소리가 한손으로 안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후배님 앞에 행복한 앞날만 있기를...^^
58: 이런생각 하면 안되는데...곰님이라는 분이..잠든다..그리고 덥친다...가 자꾸 생각나는 이유가 뭔지..거참.....=3=3=3=3
59:학생들이 좋아하는 교수님이실 수 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비로그인 2006-05-24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7,62,63 입니다

비로그인 2006-05-24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8,59 가 비공개인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비로그인 2006-05-24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날리, 짤려서 요즘 겁나게 한가합니다.

moonnight 2006-05-24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배분의 일이 잘 되어서 참 다행입니다.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하고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네요. 저는 요즘 몸이 좀 안 좋아서 술을 맘껏 못 마시는데, 흑흑. 마태우스님 페이퍼 읽고 있음 절로 술이 땡깁니당. 대학교축제주점. 맛은 별로라도 ;; 분위기 정말 좋죠. 인기만점교수님다우세요. ^^

2006-05-24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 그날은 마태님의 피부가 가장 환한 날이었어요. 작정을 하셨구나, 생각했지요. 술집을 향하는 발걸음 또한 상당히 가뿐했답니다. 약속을 미뤘어야 했나, 생각했지요.
하지만 그날은 무지 좋은 날이었어요. 바람이 좋은 날이었고 음식과 술 그리고 금요일이었자나요. 솔직히 3차에서 버거웠어요. 심하게 먹는 감이 있지만 그래도 설렁탕이 저를 살린 듯해요.
아 ... 그날은 무지무지 기분 좋은 날이었어요. 마태님이 제게 줄 것이 있다고 이야기하셨자나요. 혹 잊으신 것은 아니지요? ('기'로 시작해서 '안'으로 끝나는 ...) 서두르지는 마시되 잊지는 말아주셔요. 곰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겁나) 기다리겠습네당. 이번주?^^

야클 2006-05-24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곰님/ 위에 있는 제 댓글 농담인거 아시죠? ^^
다음에 마태님이랑 같이 한번 달려요. ^^

하이드 2006-05-25 0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h, that GOM!
I had a chance to d...

마태우스 2006-05-25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포일러하이드님/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야클님/강한 상대를 보면 참지 못하는 야클님...^^
곰님/그렇죠? 3차에서 버거워하시는 것 같더이다. 설렁탕은 정말 맛있었죠? 저도 그랬답니다. 이번주라..... 님이 3차에서 그러셨던 것처럼 버겁네요^^
달밤님/부끄럽습니다.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인기만점 원장님 만세.
하날리님/앗 제가 미처 못쓴 술일기가 있나요? 다른 데라도 쓴 것 같은데.... 그리고 짤리신 거, 마음아픈 일인가요 아님 자발적?? 아무튼 반갑습니다...
메, 메피님/덮치다뇨....-.- 그런 사이 저얼대 아닌데요.... 글구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날리님/댓글을 베끼시다니!!! 넘하십니다! 부리는 그런 거 싫어하는데...^^
스포일러하이드님/4달러면 4천원이잖아요! 우리 슈퍼에 가면 천원밖에 안하는데...
플라시보님/피이, 님 뭐, 말씀과 달리 그리 술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속삭이신 님/레지던트는 원래 밖에서 밥을 잘 먹으니 영양학적으론 걱정안하셔도 될 듯한데요.. 근데 얘기 들어보면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잘 풀려야 할텐데요....
야클님/곰님이 한번 보재요. 맘 단단히 먹고 나오세요^^
고양이님/한번 보실래요? 멋진 남자분인데^^
기인님/잔디 뜯어서 만드는 파전...호호, 그 전설적인 파전은 어느 학교에나 있군요^^ 엊그제도 애들이 만든 파전을 한번 먹어봤는데, 맛은...호호. 글구 모르는 사람밖에 없으면 슬프죠. 간만에 팔아주려고 가는건데.... 그 맘 알아요 저두. 같이 나이먹어가는 처지에, 잘 지내도록 해요.
매너님/글쎼요. 매너님과 곰은 어울리지가 않는데...^^

비로그인 2006-05-26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 중간에 곰님의 출현으로 박진감 넘치는 페이퍼와 댓글로 ..
그나저나. 마태님 술일기 읽다가 자꾸 술고파지는군요.
세상일은 혼자라는게 없는것 같아요. 좋은 조언 ! 추천 백만번.
그리고 두 사람이 합쳐서. 가장 기쁜 사람은 아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