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중반에 나온 스필버그 제작의 <백 투 더 퓨처>는 매우 획기적인 작품이다. 첫째, 그 이전까지의 타임머신은 한 자리에 놓인 채 작동하는 커다란 기계였지만, 그 영화에서는 자동차가 타임머신 역할을 하며, 시속 88마일에 도달해야 시간여행이 가능하다. 둘째, 이게 더 획기적인데, 그전까지의 타임머신은 과거로 갔다 오면 현실은 그대로였는데, 여기선 과거가 변하면 현재도 변한다는 스토리가 전개된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지만, 아무도 생각 못하는 당연함을 실천하는 건 늘 천재들의 몫이다.

긴박한 액션이 연속되고 유머까지 버무려진 그 영화가 어찌나 재미있던지, 1편을 보고 난 직후 가슴이 압박되어 한참을 웅크리고 있던 생각이 난다. 스필버그는 1편 이후 속편을 만들 생각이 없었고, 그저 장난으로 ‘to be continued'란 자막을 엔딩 크레딧에 넣었다고 했지만, 3탄까지 계속된 이 영화만큼 속편 제작의 당위성을 느낀 시리즈는 아직까지 없었다.
이 영화에서는 커다란 개가 한 마리 나온다. 신기한 것은 거기 나오는 박사의 이름이 브라운이고 개 이름은 아인슈타인이라는 것. 눈을 부릅뜬 것 같은 박사의 표정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문제 삼고 싶은 건 박사의 부도덕성이다. 화장실에 벽시계를 달다가 떨어져서 머리를 다친 이후 타임머신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박사는 결국 드로리안 차를 타임머신으로 만들어 냈다. 자, 그렇다면 시험 운전을 누가 먼저 해야 할까. 당연히 박사다. 뭔가 잘못되어 엉뚱한 곳으로 간 경우 기계를 조작해 다시금 현재로 돌아오려면 기계를 만든 사람 자신이어야 한다. 하지만 박사는 자신의 개를 운전석에 태우고, 리모컨을 이용해 개를 1분 뒤 미래로 보낸다. 다행히도 실험이 성공해 1분 뒤 아인슈타인이 나타났기에 망정이지, 실패했다면 그 개는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 아니었을까. 용케 살아난다 해봤자 주인을 잃은 슬픔을 가슴에 안고 살아야 했지 않는가.
영화를 본 다른 사람들이야 별 생각이 없었겠지만, 개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다시금 본 그 장면은 영 불편했다. 사람이라면 주의사항이나 일이 잘 안풀릴 때의 지시 사항에 대해 들을 수 있지만, 개는 아무것도 모른 체 불안에 떨며 차 안에 갇혀야 한다. 이거, 비인도적 행위다. 개는 인간의 친구이지 실험에 쓰라고 존재하는 건 아니니 말이다.
언젠가 강남에 사는 여자와 소개팅을 한 적이 있다. 40분을 늦게 나온 것도 그렇지만, 소개팅 도중 카페에서 다른 친구를 발견하고는 그 테이블에 가서 20분 이상 시간을 보내다 올 정도로 싸가지가 없었던 그녀는 핸드백에서 마취총을 꺼내더니 자랑을 한다. “이거 마취종이어요.”
“써보신 적 있어요?”
그녀의 대답은 엽기적이었다.
“네. 저희 집 강아지한테 쐈어요. 기절하던데요.”
순간 난 그 총을 빼앗아 그녀에게 쏘고픈 심정이었다. 세상에, 기르는 개한테 마취총을 쏴보는 얘가 있다니. 그것 때문이 아니라도 그녀와 난 잘 되었을 리가 없지만, 그 일 때문에 그 소개팅은 내게 무지하게 불쾌한 기분으로 남아 있다. 늘 말하지만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고, 개는 그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