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비오니 우산 챙겨라.”

엄마의 말에 난 내게 우산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난 늘 가방에 우산을 넣어두고 다닌다. 우산을 말리는 게 귀찮아서 웬만한 비는 그냥 맞으며 다니는 탓에, 그 우산은 거의 새것에 가깝다. 그 우산이 지난 토요일날 없어졌다. 사건의 전말은 간단하다. 미녀와 함께 있는데 비가 왔고, 난 당연히 그분께 우산을 건낸 것. 용어 사용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기회비용의 측면에서 내가 우산을 쓰는 것보다 그분이 비를 안맞는 게 훨씬 이득이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그 행동은 내가 그때 했던 말대로 “마이 플레져!”였다.


내겐 가방이 세 개 있다. 한 개는 늘 들고다니는 배낭, 다른 한 개는 제법 멋진 모습을 한, 하지만 넣을 공간은 별로 없는 것. 또 하나는 그냥 이런저런 물건들을 보관해 둘 목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 세 번째 가방에 우산이 또 하나 있기에 난 그 가방을 열어 보았다. 이럴 수가. 그 가방은 비어 있었다. 내가 놀란 건, 우산이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선물로 받은 ‘기형도 시집’과 ‘최승자 시집’, 그리고 CD 두장이, 현재 내가 기억하는 한에는, 들어 있었다. 그 CD는 세장이 한 세트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요 50곡을 어느 미녀 분이 세장으로 구워 준 거였다(한 개는 차 안에 꽂혀 있다). 난 엄마에게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가방 안의 내용물이 어디 있느냐고 여쭈어 보았다. 엄마는 너는 왜 맨날 찾기만 하냐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한번 찾아볼게.”라면서 이방 저방을 다니셨다.


내 가방은 내가 보관하는 게 맞다. 하지만 내가 억울한 것은, 내가 외국에 간 일주일 동안에 가방 두 개를 엄마가 빠셨기 때문이다. 주로 쓰는 배낭의 내용물은 종이 가방에 잘 넣어 두셨지만, 두 번째 가방의 내용물은 온데간데 없다. 엄마와 더불어 있을만한 곳을 대충 뒤져 봤지만, 아무래도 나올 것 같지 않다. 책도 소중하고 CD도 소중한데, 설마 그걸 버리기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잃어버린 것들의 8할 정도는, 아니 어쩌면 9할 정도를 집에서 잃어버린 걸 감안한다면 무척이나 암담한 일이다. 집에서 잃어버리면 결국 나오기야 한다. 하지만 그건 조카가 소파 밑에 집어넣은 테니스 공을 찾거나, 제사를 지내려고 상다리를 찾는다든지 할 때 갑자기 솟아나는 것이지. 찾는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250평이나 되는 집구석을 일일이 찾아볼 수도 없고.


찾는 게 나오지 않을 때의 속상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난 다른 사람이 내 물건에 손을 안댔으면 하지만, 정리를 안하고 지저분하게 해놓고 사는 사람의 운명은 ‘분실’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아무도 손을 안대는 내 연구실에서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 하나둘이 아니듯이. 기형도 시집아, 도대체 어디 있니? 돌아와 주면 안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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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2-28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리신 물건이 빨리 나오기를...그런데 250평이라구요..!!!.허걱..

이매지 2006-02-28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일일이 집구석 뒤질꺼 뭐 있어요. 이사 한 번 가세요 ㅋ
짐싸다보면 나오지 않을까요? ㅋ

비로그인 2006-02-28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린 물건 탐지기를 발견한다면 재벌될텐데, 재벌될텐데~(마태우스 님이야 이미 재벌 2세이므로 굳이 발명하실 필요는 없으실 듯 합니다만 저는 한 번 연구해볼까 싶습니다. 흐흐)

paviana 2006-02-28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집사는 모하고 님이 그걸 직접 찾으셨나요?

마태우스 2006-02-28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님/집사는 뭐 찾는 건 절대 안합니다. 재산관리와 손님접대만 한답니다^^
주드님/꼭 성공해 주세요. 급합니다!
이매지님/이사라...이사 생각만 해도 현기증이 나는걸요^^
메피님/조크 한마디에 놀라시다니요 넘 소심하시다..^^

oldhand 2006-02-28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50평이나 되는 집구석 뿐만 아니라 1500평의 정원도 잘 찾아보셔야 합니다.

2006-02-28 1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eylontea 2006-02-28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궁... 집에서 잃어버리셨다니 꼭 나오긴 하겠죠...

Mephistopheles 2006-02-28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요..마태님이요..팥으로요..메주를요..쒀도요...믿거든요...ㅋㅋ

2006-02-28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숨은아이 2006-02-28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언제 솟아날지 기대됩니다.

twoshot 2006-02-28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가 김영하에 의하면 읽어버린 물건들이 사는 나라가 있답니다..집이 250평이니 아마 왕국을 건설하고 살지 않을까 사료되옵니다...-.-

진주 2006-02-28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사만 두시지 마시고 잡사도 두시지요. 잡일 다 해주는 잡사.

2006-02-28 1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weetmagic 2006-02-28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플레져 여기 ~ (수줍~)

저도 물건 잘 잃어버리는데...
대부분 상하전후좌우 70센티 근방에서 발견되더라구요.

ㅠ.ㅠ; 잘 찾아보세요.

참고로 전 잃어버린 사실을 얼른 잊어버리고,
얼결에 찾은 물건은 로또당첨 된 듯 기뻐라 합니다. ㅜ.ㅜ;
세면대에 붙어있는 콘텍트렌즈 찾았을 때가 가장 기뻤던거 같아요.

하루(春) 2006-02-28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려도 싸다,고 하면 화내시겠죠?

panda78 2006-02-28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까우시겠네요. 얼른 나와야 할 텐데..
그치만 안 나오더라도 어머님한테 속상한 티 내진 않으시겠죠? ^^

2006-02-28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주 2006-02-28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요하시면 우리집 잡사님을 잠시 보내드리도록 할게요..
-260평에 사는 진주- - 2006-02-28 22:43

펠릭스 2006-03-01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상하게도 간절히 찾을때는 안나오다가 갑자기 다른거 찾다가 나오는건 왜일까요? ㅋㅋㅋ

마태우스 2006-03-02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펠릭스님/그게 분실물의 속성이지요 호호
진주님/아...졌다...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가야지...^^
판다님/그럼요 절대로 안냈습니다. 저 믿으시죠?
속삭이신 분/분당 함 가야죠 안그래도 계획 짜고 있습니다
하루님/아니어요 전 그래도 싸요 흑흑
매직님/70센티라... 으음... 그렇다면 소파 밑이겠군요!
속삭이신 분/신춘문예에서 님의 존함을 꼭 보길 빌께요!! 지금의 성과는 작은 시작이지요.^^
진주님/잡사라고 하면 듣는 잡사가 싫어하지 않을까요^^
마커스님/그 나라에 꼭 한번 가봐야겠는데요 전 주민등록증도 집에서 잃어버렸어요
숨은아이님/저희 나와바리에 오셨는데 못뵈서 죄송해요. 흥, 연락도 안하구서
메피님/정말 고맙습니다. 신뢰는 소중한 겁니다^^
실론티님/그 언제가 언제냐가 중요하지요^^
속삭이신 분/죄송해요&&
올드핸드님/정원이 그 정도 넓이는 안되거든요ㅠㅠ 넓혀야겠단 생각이 불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