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8시부터 호주오픈 테니스 남자 준결승을 봤다. 그때는 이미 경기가 시작된 지 두시간이 지난 후였고, 세계 4위인 날반디안이 먼저 두세트를 땄지만 돌풍의 주역인 바그다티스가 3세트를 따내면서 반격을 개시할 무렵이었다.
21세의 바그다티스는 정말이지 멋진 플레이를 수도 없이 연출했다. 불가능해 보이는 공을 따라가서 멋진 위너로 연결시킬 때는 절로 탄성이 나왔다. 하지만 내가 “아--” 하고 더 큰 탄성을 터뜨릴 때는 바그다티스의 애인이 카메라에 비춰질 때였다. 코치와 함께 앉아 있는 바그다티스의 애인은 대단한 미녀였다.
아나운서의 말, “저런 미녀가 와서 응원해 준다면 힘이 펄펄 나겠지요?”
해설자, “테니스 선수들은 다 부인이 예쁘지요.”
정말 그랬다. 여자 선수의 경기에 꽃미남이 와서 응원하는 경우는 별로 없어도, 남자 선수들의 경기에는 늘 절세의 미녀가 관중석에 앉아 응원을 했다. 96년도 윔블던에서 우승한 크라이첵이란 선수의 애인은 내가 그때까지 본 여자 중 가장 예뻤고, 그때만 해도 아가시가 경기를 할 때면 늘 브룩 쉴즈가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독일의 전설적 스타 보리스 베커(나랑 동갑인데 전설적 스타라...)도 모델과 결혼한 걸 보면 유명 선수들의 애인이 다 미녀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테니스 선수들은 왜 미녀를 밝히는 걸까? 한가지 생각할 수 있는 건 테니스란 종목은 애인이 TV에 비춰질 기회가 아주 많다는 거다. 축구나 야구, 그리고 농구와 달리 테니스는 개인 경기고, 거의 매일 시합이 벌어지니까. 게다가 테니스 선수들은 일년내내 40개 정도의 대회를 쫓아다니느라 세계를 유랑하는 존재들, 애인이 꼭 과시를 위해 있는 건 아니지만 여러 나라를 돌면서 자기 애인을 자랑하고픈 치기도 남자들에겐 있다. 그리고 유명 테니스 선수에게는 유혹의 손길이 무지 많은데(유명세도 얻고 세계일주도 할 수 있잖아?), 그런 여자의 대부분이 미인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바그다티스를 보면서 내 생각을 했다.
“나도 저렇게 발이 빠른데...”
“나도 저렇게 스트로크가 좋은데...”
생각해보면 난 여러 모로 테니스를 잘 칠 신체조건을 타고났다고 할 수 있다. 포핸드를 배운 지 석달만에 코치가 “포핸드는 더이상 가르칠 게 없다.”고 했을만큼 테니스에 대한 소질도 남다르다. 전 세계 1위 마르티나 힝기스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부모님이 내게도 다섯 살 때부터 라켓을 쥐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네! 서민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저런 말도 안되는 공을 달려가서 잡아내네요. 상대방도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군요.”
“네, 서민 선수, 윔블던 4강에 진출했습니다! 테니스인의 한 사람으로서 감개가 무량합니다그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내게 테니스 라켓 대신 밥 숟가락을 쥐어 주셨고, 밥만 많이 먹은 난 지금 배가 나온 몸으로 헉헉대며 공을 받아낸다. 우리 국민들은, 윔블던 4강에 진출한 선수를 보는 대신 그랜드슬램 1, 2회전에서 번번히 탈락하는 이형택과 조윤정만 안타깝게 바라본다. 조기교육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소질이 있는 애한테 조기교육은 필요하다. 테니스 신동이 그렇게 사라진 걸 안타까워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