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 있는 판타지움 극장을 가니 안내요원이 사슴뿔을 쓰고 입장객에게 인사를 한다. 갑자기 그게 탐이 난 우리-나랑 여자 둘-“어디서 사셨어요?”라고 물었다.

“본사에서 준 거라 모르겠어요.”

지나가다 보니 제과점이나 팬시상품의 판매원들도 다 사슴뿔을 머리에 꽂고 있었는데, 그들 역시 판매처를 몰랐다. 갑자기, 오늘밤 가는 공연을 우리 셋이 사슴뿔을 달고 보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했다. 날은 춥고 사람은 많았지만 그 틈을 비집고 노점상을 헤매며 다녔다. 드디어 발견, 하지만 그 뿔은 극장 직원 것과는 달리 징그럽게 길기만 해, 사슴이라기보다는 엘크 종류의 뿔 같았다.

“종로에 가면 이런 거 파는 데가 많을거야.”


이런 추측이 맞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대학로보다 열배쯤 많은 사람들 때문에 걷는 것조차 어려운 종로 길가를 우린 30분이나 뒤졌다. 결국 우리는 사슴뿔 파는 곳을 찾지 못했고, 한약방을 뒤져 진짜 뿔이라도 훔쳐올까 어쩔까 하다가, 공연장인 시네코어 옆 던킨도너스에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던킨 직원도 사슴뿔을 머리에 달고 있다!

“어디서 사셨어요?”

그녀는 처음으로 사슴뿔의 출처를 말해줬다.

“명동이요!”

둘을 커피숍에 남겨둔 채 난 명동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거기서, 사슴뿔을 두손에 쥐고 흔드는 여인을 발견했다. 1만2천원짜리 케잌을 사면 3개를 준다는 말에 난 케잌을 샀고, 의기양양하게 사슴뿔을 들고 커피숍에 왔다.


우리끼리 사슴뿔을 머리에 쓰면서 좋아하고 있었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아저씨-아주머니들이 전부 우리를 보면서 웃고 있다. 사회적 체면 때문에 내가 쓰기를 망설일 즈음, 아주머니가 격려의 박수까지 쳐준다. 결국 난 사슴뿔을 썼다. 아저씨 한분이 이런다.

“귀엽네.”

아주머니도 맞장구를 친다. “정말 그러네.”

후후, 이 나이에 귀엽다는 소리를 듣다니, 내가 인생 헛산 건 아니다. 우리는 사슴뿔을 머리에 꽂고 사진을 찍었다(나중에 친구가 올려주는대로 올릴께요).


소원이던 사슴뿔을 달고 있어서인지 공연 내내 신이 났으며, 같이 본 애들 역시 크게 만족한 채 귀가를 했다. 몸 상태가 안좋아서 타이레놀과 소화제를 먹어가면서 보낸 하루지만, 올해 성탄절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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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12-24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즐거우셨나봐요^^
그 귀여운(?) 모습 빨리 볼 수 있길 바랍니다. 메리크리스마스!

하이드 2005-12-24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에서 사슴뿔때문에 안 보이지 않았을까요?

하늘바람 2005-12-25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사슴뿔이 탐나긴 했지만 마태우스님의 열정을 따르지 못했네요^^

moonnight 2005-12-25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마태우스님은 깜찍하시네요. ^^ 그 정열이 부러워요. >.<

아영엄마 2005-12-25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슴뿔 쓴 마태님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즐거운 성탄 보내시길~~ ^^

chika 2005-12-25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나는 사슴이다, 저 만화책 재밌었던가..? ^^a
귀엽다,는 말에 엄청 좋았나봅니다. 사진 받는 대로 올리시겠다는거 보니. ㅋ

하루(春) 2005-12-25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저는 오늘 아침 mbc 뉴스 보는데 기상캐스터가 사슴뿔을 달고 나왔더군요. 그게 되게 웃기고 생뚱맞아 보였어요. 그런데 더 웃긴 건 결혼식 다 끝내고 계산하는데 여직원들이 다 사슴뿔을 쓰고 있는 거예요. 왜 여기저기서 다 그걸 쓰고 일하는 걸까요?

mong 2005-12-25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 사방에 사슴뿔~ㅎㅎㅎ

진주 2005-12-25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과 가까이 살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어요...우리애들이 그런 거 좋아하는데 저는 엄두가 안 나거든요.

마태우스 2005-12-25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어머 사슴에 대한 안좋은 추억이 있으신가봐요... 전 사슴뿔 좋던데...^^
몽님/이맘때 아니면 언제 또 그러고 다니겠어요^^
하루님/한번 써보면 그 맛을 알죠. 사슴이 되고픈 욕망의 대리만족이랄까...
치카님/귀엽단 말이 전 좋았어요. 이유는 다음 페이퍼에!
달밤님/요즘 저 이 잘 닦고 있어요. 치과의사가 가르쳐준 방식대로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늘바람님/사슴뿔은 열정 없이는 얻어지지 않지요^^
하이드님/음, 그건 아니어요. 의자 등받이 높이보다 사슴뿔이 낮았으니깐요. 시네코어 공연홀은 의자등받이가 높더라구요.
깍두기님/이럴 때는 저도 디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울보 2005-12-25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사슴뿔을 쓰고 그럼 공연을 보셨다는 말씀,,류보다 더 즐거운 시간이셨겠네요,,

하늘바람 2005-12-25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신랑한테 사슴뿔 갖고 싶다고 했다가 몇살이냐고 구박만 받았습니다.ㅠㅠ

마태우스 2005-12-26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어머 신랑분은 사슴에 대한 페티쉬가 없으신가봐요!@
울보님/네 그랬습니다. 내년 이맘때 또 쓰고 다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