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두 미녀와
일시: 11월 12일(토)
마신 양: 소주-->맥주--> 소주
올해 목표 중 하나가 술 마신 횟수보다 읽은 책의 권수가 많도록 하는 거였는데, 현재 스코어 책 126권에 술은 141번을 마셨으니 목표 달성은 물건너갔다. 마지노선으로 설정한 150번 이하로 마시기도 이미 글러버렸으니, 한국 사회에서 술 안마시고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깨닫게 된다. 이왕 그른 거, 연말까지 한번 마셔 볼 생각이다.
홍대 앞에 살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들이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극동방송국 건너편 주차장골목에 있는 떡볶이집이고, 또 하나가 합정역 부근에 있는 황소곱창이다. 하나를 더 고른다면 ‘기차길 왕갈비’ 정도? 하지만 우리 동네의 대표선수는 역시 황소곱창. 거길 가보면 체인점과 분점을 일체 두지 않는다는 말이 크게 써있는데, 다시 말해서 우리동네 곱창만이 진짜 황소곱창이란 얘기다. 이 곱창의 맛에 대해서 목동에 사는 친구 하나가 이런 글을 쓴 바 있다. 놀라운 관찰력으로 일관된 이 글을 혼자만 보기엔 아깝다.
[곱창구이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라서 유명하다는 곱창집은 여러군데 가봤지만 합정동 황소 곱창이 울나라에서 제일 맛있는 집이라고 감히 소개 할수 있을것 같아.
우선은 곱창 굵기가 다른데하고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굵어서 굽고 나서 보면 곱창안에 곱이 가득히 차있어서 입에 넣고 씹을때 곱이 흘러나오는것을 느낄수 있을 정도이니깐
그리고 곱창을 구울때 물이 많이 나오게 되는데 다른데에서 굽는걸 보면 물을 빼지 않고 심지어는 소주를 넣고 굽는데도 있더라고..
특히 솥뚜껑 같은데에 구워서 나오는 데에는 물이 많아서 그런지 이게 곱창구이인지 곱창찜인지 구분이 안되는 곳이 대분분인데..
황소 곱창에서는 계속 물을 빼주면서 구워서 구이의 진수를 맛보게 해주는것 같아
또 이 집만의 소스가 있는데 ... 아줌마들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뿌려주는데.. 절대로 밖으로 내놓지를 않아.. 누가 비법을 훔쳐 갈까봐 그런다나]
이 친구는 말을 안했지만 황소곱창이 다 좋은 건 아니다. 세상에나, 고기도 아닌데 곱창이 1인분에 1만6천원이라는 게 말이 되나? 하지만 그런 고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미어터지며, 7시 반 무렵이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밖에 서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난 처음에 무슨 유명 가수의 콘서트 줄인 줄 알았다. 게다가 종업원은 불친절하고, 뭘 달라고 해도 잘 안갖다준다.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사람들은 죽어도 그곳을 찾는데, 사실 곱창에 별 페티쉬가 없던 내가 “곱창곱창!” 하면서 노래를 부르게 된 것도 황소에 가고난 이후다. 최치원의 ‘토황소격문’을 보면 “황소곱창에서 토할 때까지 곱창을 먹고 싶구나.”라는 말이 나오고, “앞으로 저기 가나봐라!”라는 다짐을 한 사람도 며칠 못가서 그 앞에 가 줄을 선다. 맛 앞에는 불친절도, 높은 가격도 소용없는 거다.
미녀 둘을 만난 날, 우리는 기찻길 왕갈비에서 1차를, 2차로 맥주를 마셨다. 한명이 가고 남은 미녀와 난 3차로 황소곱창을 갔는데, 원조가 아닌, 거기서 좀 떨어져 있는 아류집으로 갔다. 황소곱창을 최대한 흉내낸 가짜 ‘황소곱창’집도 그런대로 맛있어, 배가 부를대로 부른 상태였지만 곱창 2인분과 밥 1인분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니 그때 원조집을 갔다면 곱창 4인분도 너끈히 먹었지 않았을까? 요즘 SM 광고를 보니 다른 차를 산 사람은 눈 버리니까 보지 말라고 하던데, 황소곱창을 한번 맛보면 곱창폐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