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를 치러 갔다. 어제 술을 먹었더니 어김없이 설사기가 느껴진다. 코트에 도착하자마자 휴지를 들고 화장실로 뛰었다. 화장실 옆 잔디밭에는 고교생으로 보이는 여자애들이 단체로 앉아 있었다.


남자화장실로 들어간 나는 일순간 당황했다. 여자애 둘이 들어와 있었던 것. 난 당황해서 이곳이 남자 변소가 맞는지를 확인했다. 소변기가 있는 걸로 보아 맞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여자들은 내가 들어온 걸 아랑곳하지 않고 웃고 떠든다.
“xx야! 뭐해? 빨리나와!”

잠겨있는 방에서 일을 보는 친구한테 하는 말 같다. 사정이 급해서 문이 열려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설사가 나왔다. 여자애들이 듣는 걸 뻔히 아는 터라 그 소리가 무척이나 민망했지만, 더 부끄러웠던 건 내가 방귀도 뀌었다는 거다. 황급히 물을 내렸지만 다들 그 소리를 들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나갈 수가 없었다. 난 그녀들이 다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잽싸게 나왔다. 순간 난 때마침 들어온 세명의 여학생들과 마주치고 말았다. 괜히 부끄러워진 난 고개를 푹 숙였고, 그네들은 당당하게 수다를 떨고 웃고 그랬다. 그네들은 필경 여자화장실이 너무도 밀려서 한적한 남자화장실을 찾았으리라. 화장실을 빠져나온 나는 나같은 성을 위해 만들어놓은 화장실에서 일도 마음대로 못보는 세상을 불평했다.


딱 한번, 나도 여자화장실에서 일을 본 적이 있었다. 십여년 전 여친을 따라 백화점에 갔는데, 설사기가 느껴졌다. 화장실을 갔더니 남자 변소에는 소변기만 달랑 있다. 남자는 큰일을 보지 말라는 건지, 소변기에다 대변을 보라는 건지 투덜대던 나는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는 급박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비어 보이는 여자변소로 뛰어들었고, 무난히 일을 본 후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구두 소리가 났기에 긴장했는데, 나도 모르게 기침을 하는 바람에 내 존재를 들켜버렸다. 한 오분 가까이 숨어있다가 조용해진 틈을 타서 뛰쳐나왔는데,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난 그렇듯 죄의식을 가지고 일을 치른 반면 오늘 만난 여자애들은 티없이 맑았고, 그런만큼 거침이 없었다. 그네들의 당당함은 날 부끄럽게 했고, 고개를 푹 숙인 것도 나였다. 그런 게 바로 젊음의 패기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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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09-04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핫. 이런 남자가 여자화장실 들어갔으면 변태~ 라고 소리쳤을텐데 거꾸로는 되려 남자가 민망해해야하니... 훔. 그 학생들도 참...

야클 2005-09-04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차피 쪽팔림은 순간인데요,뭘. ㅋㅋㅋ

히나 2005-09-04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음의 패기가 아니라 쪽수로 밀어붙인 거겠죠 흐흐..

진주 2005-09-04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연! 젊음의 패기로고!

검둥개 2005-09-05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젊음의 패기는 화장실에서 발산되는군요 ^^;;;

싸이런스 2005-09-05 0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장실을 빠져나온 나는 나같은 성을 위해 만들어놓은 화장실에서 일도 마음대로 못보는 세상을 불평했다.' 오오 치떨리는 분노여!!! ㅋㅋ

manheng 2005-09-05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당황하셨을듯... ㅎㅎㅎ

호랑녀 2005-09-05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그네들이 젊어서 젊음의 패기인데, 혹시 그네들이 아줌마였음 아줌마의 당당함이였을까요? ^^
어쨌든 참 주객 전도네요.

비로그인 2005-09-05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패기라는 말에서 어째 좀 구리구리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요...^^;;;;

생각하는 너부리 2005-09-05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미나요. 실은 저두 그 여자들 같은 짓 했었거든요. 대학을 여학교 다녔는데, 아무래도 여자가 많다보니 건물에 남자 화장실은 하나고 층마다 여자 화장실은 있었어요. 그래도 평소엔 남자들이 거의 없는지라 여자 화장실에 사람많으면 쓱 보고 거침없이 남자 화장실 사용했었지요. 그러다 아주 드물게 건물에 남자가 있을 경우 당황하는 쪽은 늘 남자지요. 이런 말 하면 좀 나쁠지 모르지만, 여자가 부끄러워하지 않고 남자가 부끄러워하는 그런 상황 은근히 즐겼던거 같아요.

비로그인 2005-09-05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훗훗~

패기는 그렇다치고 마태님 기사 실렸네요.(뒷북인가) 추카추카 드림~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278469

마태우스 2005-09-05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님/뒷북이라뇨. 전 모르고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번에도 오마이에 한번 실렸었는데...
에이프릴님/그죠..쪽수에서 밀리면 남자도 부끄러워하기 마련이겠지요^^
별사탕님/호호, 구리구리한 패기...^^
호랑녀님/젊음의 패기, 중년은 아줌마의 당당함, 노년이라면 유종의미^^
만헹님/네, 황당하구 또 부끄러웠어요
싸이런스님/제 일에 그렇게 흥분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검정개님/아무래도 원초적인 곳에서 패기가 발산되는 법입니다^^
진주님/제말이 그말입니다^^
스노우드롭님/님이 정곡을 찌르셨어요. 쪽수의 힘이라는 게 사실은 더 맞는 표현 같네요.
야클님/그럼요. 갑자기 이효리가 화장실에서 물 안내리고 나가던 얘기가 생각나네요
아프락사스님/그러게 말입니다. 이게 다 남녀 화장실을 같은 크기로 지어놓은 단견 때문인 것 같습니다..

sweetmagic 2005-09-07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남자 화장실에 들어간적 있어요,,,
사실 표시된게 넘 작거나 잘 안보이면 간혹 그래요....

sweetrain 2005-09-09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남자화장실에 간혹 들어가서 일보는 모르는 아저씨께 꾸벅 인사하고 나온 적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