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보다 월등한 지적 생명체가 지구를 공격한다. 그들이 무기라고 갖고 온-아니 예전에 심어 놓은-문어처럼 생긴 물체(일명 트라이포드)는 섬광같은 광선으로 도시를 부수며, 지구에서 아무리 폭탄을 발사해도 방어막으로 다 막아 버린다. 영화 속 인물의 표현대로 전쟁이라기보단 ‘일방적 살육’이었다. 그런 놈들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몇백년 전, 미국에 정착한 유럽인들은 월등한 무기로 인디언들을 물리친다. 모르긴 해도 우주인과 지구인의 화력 차이는 인디언과 유럽인의 차이보다 훨씬 클 것이다. 개미가 지어놓은 집이 우리 눈에 우습듯이, 백만년 동안 지구인을 관찰한 우주인의 눈에는 우리의 무기란 게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호나우도와 베컴이 초등학생 둘을 데리고 축구를 하는 격이랄까. 그럼에도 지구인들은 승리를 거둔다. 어떻게? 저절로. 결말이 황당하단 얘긴 들었지만, 이 정도인줄은 몰랐다. 최소한 인디펜던스 데이의 ‘컴퓨터 바이러스’ 정도는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적들은 그냥 쓰러진다. 왜? 좀 미안했던지, 영화사 측은 나레이션을 삽입한다. 지구의 미생물들이 해낸 거라고.


잘 만든 영화에 속하는 ‘우주전쟁’이 욕을 먹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잔뜩 긴장하며 봤는데 이게 뭐냐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끝이 부실하다고 이 영화가 그렇게 매도되어야 할까? 난 이 영화를 정말 재미있게 봤다. 두시간이 지날 때까지, 영화로 인한 긴장감은 무지하게 높았다. 내가 본 영화 중 두시간 동안 즐거움을 선사한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주괴물들이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는 것부터 시선을 끌더니, 섬뜩한 광선을 쏘는 것, 그리고 사람 피를 빨아먹는 엽기적인 모습-근데 피를 참 힘들게 먹더라. 사람을 붙잡아서 놔뒀다가, 다시 밖으로 던져서 피를 빨다니 비효율적이다-이 등장하면서 우리의 공포는 가중된다. 스필버그가 왜 거장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들, 소문만 듣고 이 영화를 안봤으면 후회할 뻔했다.


우리는 너무 결과 중심주의에 빠져 있다. ‘유종의 미’ 이데올로기 때문인지 끝이 안좋으면 과정 전체가 매도당한다. 과연 그게 옳은 것일까? 헤어진 연인을 기억하는 건 고통스럽다. 왜? 그녀가 아무리 예쁘고 성격도 좋다 해도, 잘되지 못하고 헤어졌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라면 그녀와의 아픈 이별만 되씹는 대신, 그녀와 보냈던 좋았던 추억들을 회상하면서 행복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차피 인생은 죽기 전까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냐가 중요하며, 그녀 덕분에 얼마의 시간 동안 행복했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는 게 아니냐는 거다. 우주전쟁도 그렇게 평가해 주자. 결말이야 원래 알고 있었지 않는가? 중요한 건 결말이 아니라 과정이란 걸 깨닫는다면, 이 영화의 장점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왕 변명을 한김에 몇가지 질문에 더 답변을 해주고 싶다.

-왜 주인공 가족은 하나도 안죽나요?;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마지막을 봐서 아시겠지만, 생존자는 주인공 가족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살아나죠. 영화에서 주인공을 고르는 요령은 살아남느냐 여부에 있습니다. 즉, 주인공이기 때문에 안죽는 게 아니고, 안죽으니까 주인공을 시킨 겁니다.


-몇백만년 동안 지구인을 관찰했다면서 왜 미생물에 죽은 건가요?: 미생물은 눈에 안보이거든요. 현미경을 쓰지 않은 게 결정적 패인입니다.


-차라리 원시시대에 지구를 공격했으면 쉽게 이길 수 있었을텐데. 박격포 같은 게 개발되기 전에 말입니다; 정복이란 반드시 땅을 뺏기 위한 건 아닙니다. 정복이 너무 쉬우면 의미가 없겠지요. 그래서 우주인들은 최소한의 저항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 겁니다. 좀더 늦추지 않은 건 더 기다렸다간 자기들만큼 발전할까 두려웠던 거지요.


-영화에 나오는 여자애 예쁘던데 누구예요?: 다코다 페닝이라고, 요즘 잘나가는 여자애죠. 저만 그런지 몰라도, 어린애들은 외국애가 더 예쁜 것 같습니다. 물론 20대가 되면 우리나라 여자들이 훨씬 예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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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8-02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날개 2005-08-02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볼께요, 볼께요..! ^^

moonnight 2005-08-02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보셨군요. 저는 이 영화를 매우 피곤한 날 혼자 봤더니 중간에 약간 졸았어요. -_-; 피뽑는 이야기는 그래서 어리둥절합니다. ㅠㅠ 다코타 패닝 정말 이쁘죠? 이 아인 커서도 천사같지 않을까 기대돼요. ^^

marine 2005-08-02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렇게 안 자려고 발버둥을 쳤건만, 남친 왈, 차라리 편하게 자라, 내가 불편해서 못 보겠다, 이렇게 됐습니다 극장 나오면서 다들 생각보다 별로네, 이러는데 남친 왈, 참 사람들 이상하네, 이 영화 얼마나 재밌는데, 이러더라구요 아마 마태우스님처럼 남들이 못 보는 부분을 발견했나 봐요 ^^

marine 2005-08-02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나이트님, 그런데 맥컬리 컬킨 생각하면 모든 경우를 다 걱정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전 나 홀로 집에 보면서 귀여워서 죽는 줄 알았는데, 그 성장한 모습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거든요

깍두기 2005-08-02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이건 칭찬을 가장한 비판 같은데요? ㅎㅎ 고단수.....

플라시보 2005-08-02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제가 궁금했던 것에 대한 답변을 이리도 잘 해 주시다니요. 우문현답입니다.^^ 저도 보는동안 상당히 즐거웠습니다만. 이상하게도 리뷰만 쓰려면 버릇인지 자꾸만 안좋았던 것들만 나열하게 되더라구요. (이게 다 님이 비판리뷰에다 좋아요! 멋져요 님!을 남발하셔서 그래요. 으흑...안놀테야)^^

포도나라 2005-08-03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그 영화 안 봤는데요...
들리는 소문 제가 들은 것들도 다 별루~...
근데 마태우스님의 이런 눈물겨운 배려글을 봐도 보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넹~...
헤헤 죄송~..^^ㅋ...
그냥... 갑자기... 처음이 거창했다가 결말이 갑자기 그 모양이라서 욕을 먹는다...면... 글쎄요... 이미 처음에서 끝으로 가는 과정 자체가 엉망이었다...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인지...
탐 크루즈를 보는 재미로 보고 싶기도 하지만...ㅋㅋ~.. 그럼 극장비가 아깝기도 하고...
그냥 저의 의견이었음... 신경쓰시지 마셈... 님께 좋은 영화였다면 영화로서는 행복할 따름일테니...

포도나라 2005-08-02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혹시 중간 중간에 미생물의 시각에서 전개되는 부분도 나오나요?!.. 미생물에 대한 언급이 엉망이 아니라면 과정이 엉망인 건 아닌데... 그럼.. 볼만 할 수도... ㅡㅡㅋ..

비로그인 2005-08-02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말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모 일간지 영화담당 기자가 분석해놨던데요. 스필버그가 일부러 김빼는 전략을 구사했다나 어쨌다나. 그리고 주인공이 서민(!)이라 높은데에서 저지르는 일을 알 수 없는 관계로 관객들이 아리송해하는게 당연하다고 했던 것같은데요.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영화는 안봐서, 아니 못봐서 모르겠사옵니다~(_ _)

줄리 2005-08-02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거 보다가 말았는데.. 이유는 나랑 영화를 보는 눈이 좀 다른 울남편이 무지하게 재밌다고 하길래 재미없는줄 알고요. 울남편은 우주나오고 전쟁 나오는건 무지 좋아해요. 그러니 우주전쟁 이 안좋을수가 없었겠지요.

인터라겐 2005-08-02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볼라 하다가 아일랜드 본건데.. 다음주엔 이거 볼까봐요...

瑚璉 2005-08-03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백만년 동안 지구인을 관찰했다면서 왜 미생물에 죽은 건가요?: 미생물은 눈에 안보이거든요. 현미경을 쓰지 않은 게 결정적 패인입니다."
-> 눈에 안보인다고 그간 없었던 게 아니지요. 그동안 적응할 기간은 충분했다고 봅니다. 따라서 미생물 설은 기각하고... 진실은 '영화끝날 시간이 되었으니 걔들이 죽었다'인걸로 봅니다.

산사춘 2005-08-03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마태님의 이런 남다른 시각이 좋아요.
스필버그는 장면장면마다 넋을 잃게하는 무언가가 있으요.

조선인 2005-08-03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정무진님이 좋아요. 와하하하하하

비로그인 2005-08-04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아주 비슷한 생각을 하셨군요. ^-^ 저도 아주 공감100%입니다.

sooninara 2005-08-11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죽기때문에 주인공을 시켰다가 예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