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와 난 별로 닮지 않았다. 내 작은 눈은 아버지의 판박이이며, 낮은 코 역시 그렇다. 엄마는 내 어머니라고 하기에는, 최소한 외모적으로는 아까운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나와 닮았다는 말에 화내지 않는, 오히려 기뻐해 주시는 유일한 여자다.
외모를 제외하고 말한다면 난 여러 가지 면에서 엄마를 닮았다. 내게 착한 면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착함은 오로지 어머니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어머니의 착함은 내가 닮고 싶어 안달하는 부분이며, 난 지금 그 반에 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내가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놈이라면, 그것 역시 어머님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리라.
어머니와 난 김치를 무지하게 좋아해, 김치를 덜어먹는 설렁탕집-구체적으로는 모레네 설렁탕-에 갈 때마다 둘이서 김치 한통을 작살낸다. 자동차 기름냄새를 좋아하는 것도 엄마와 나만 가지고 있는 희한한 특징이다. 여기서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동물에 대한 지나친 사랑을 들 수 있겠다. 다른 형제들이 동물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와 나의 유난스런 동물 사랑에 비할 바는 아니다.
밥을 안줘도 여전히 우리집 근처에서 배회하는 다리 다친 고양이에게, 어머니와 나는 교대로 밥을 주기 시작했다. 물은 어떻게 먹으며, 저녁은 또 어떻게 해결하는지가 늘 궁금했던 터였는데, 오늘 아침, 고양이 밥을 비비던 내게 어머니가 물으신다.
“그 고양이, 우리가 기를까?”
나도 진작부터 그러고 싶었기에 좋다고 했다. 물론 야생에서 오래 산 녀석을 집안에 들일 마음은 없었다. 그냥 옥상에다 집을 만들어주고 거기 있으라고 하지 뭐. 제때 밥을 먹는 것만 해도 어디야? 하지만 어머니는 거기서 더 나가셨다.
“목욕 깨끗이 씻겨서 집안에서 기르면 어떨까?”
어떻게 그러냐고 말은 했지만, 막상 녀석을 데려오는 데 성공한다면 나도 결국 집안에 들이는 데 찬성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목욕 뿐 아니라 구충을 비롯한 질병치료가 끝난 뒤라는 전제가 붙지만.
벤지 이후 “동물을 기르는 건 절대 안돼!”라고 몇 번이나 다짐하던 어머니, 동물에게 정을 붙이는 일은 다시 없을 거라던 나, 기억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것도 내가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점일 것이다.
나가다 보니까 그 고양이가 길게 누운 채 몸을 핥고 있다. 저 녀석을 무슨 수로 사로잡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