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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 사용설명서 3
톰 히크먼 지음, 김명주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난 알콜중독이 아니다. 술을 마시고픈 마음이 드는 건 일년에 2-3일이지만, 술을 마시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그보다 훨씬, 대략 20번 이상 한다. 인기가 많아 술을 자주 마시는 거지, 마시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마시는 건 아니라는 거다. 그럼에도 내가 술의 상징 쯤으로 오해되는 것은 술자리에 나갈 때마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나의 이상한 습관 때문이고, 내가 늘 고치려고 노력하는 부분이다. ‘사용설명서 술’이란 책은 그런 나에게 적합한 책으로 보였다. 그래서 읽었다.
책의 앞부분에는 이름도 잘 모르는 술의 종류와 제조법, 그리고 술에 얽힌 역사가 나온다. “럼은 식민지 미국의 노예매매를 가속화했다” “브랜디라는 말은 네덜란드어 브랜드위인, 즉 태운와인에서 유래한다”
술꾼에는 두종류가 있다. 술 자체를 즐기는 사람, 그리고 나처럼 양으로 마시는 사람. 전자라면 술의 역사나 원료 등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지만, 나처럼 술맛이 어떻든 많이만 마시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런 건 사치일 뿐이다. 섬씽스페셜과 발렌타인 30의 맛 차이도 모른 채 원샷을 해대는데, 발렌타인 30의 제조법이 중요할 리가 없다. 유유상종이라고 내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토닉워터가 말라리아 약인 키니네의 쓴맛을 희석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진(jin)과 찰떡궁합이 되었다고 설명해봤자 이런 대답만 돌아올 거다. “야야, 헛소리 하지 말고 좀 따라 봐. 잔 빈 지가 언젠데!” 그러니 책의 전반부가 내게 얼마나 지루했겠는가.
하지만 술에 취한 사람들의 기행이 소개되고, 건강과 알콜의 관계가 언급되는 후반부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한 취객은 말과 정사를 벌여보면 어떨가 궁리하다가 체포되었고” “만취한 보안요원이 방탄조끼가 칼을 막아주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동료의 방탄조끼로 칼을 찔러..” “헤밍웨이는 술을 마시고 글을 썼다. 처음에는 맥주 몇잔이었지만 나중에는 자기 소설 속 인물들만큼 술을 마셨다” 저자는 헤밍웨이가 머리에 총을 쏜 것도 술 때문이라고 한다. 알렉산더가 서른둘에 죽은 것도 살벌한 술시합을 벌이던 결과였다는 것도 모르던 사실이다. 저자는 술의 위험성을 잔뜩 경고하지만, 다음과 같은 위로도 아끼지 않는다.
“적당히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더 건강하며, 그들은 평균 15년을 더 산다”
중요한 것은 바로 ‘적당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내가 못마시는 와인에 대한 설명은 많은데 내가 즐겨하며 한국인의 술인 소주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 영 서운했다. 또 하나. 저자가 영국인이라 영국의 술고래들을 잔뜩 소개한 건 그렇다 쳐도, 술 강대국으로 러시아나 일본은 언급하면서 진정한 강대국 우리나라를 빼먹은 건 정말 아쉬운 부분이다.
“술 소비 분야에서도 선두는 러시아다...유럽 밖에서 음주문제가 가장 심각한 나라는 일본이다...”
러시아의 잠재력은 인정하지만, 일본한테 뒤지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설령 그게 술이라 해도! 안되겠다. 더 열심히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