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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중심을 향한 반역
하상일 지음 / 새움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문학 관련 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문학권력 얘기면 거의 환장한다. 그런데 하상일이 쓴 <타락한 중심을 향한 반역>은 제목과 달리 도발적이지도, 그렇게 재미있지도 않다. 문학권력 얘기는 하도 많이 들은 얘기라 식상하고, 여기저기 발표한 글들을 모은 책이라 중복되는 부분도 가끔 있다 (예컨대 강준만과 권성우의 논쟁)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게 신경숙을 소재로 한 ‘베스트셀러의 정치학’이다. 사실 신경숙은 문학권력의 대표적인 수혜자다. 내면에 침잠하는 초기작들은 시대 변화의 징후를 알리는 괜찮은 작품들이었지만, 그 후에 쓴 작품들은 영 아니다. 그럼에도 문학권력의 정점에 서있는 출판사 <문학동네>와 조선일보를 비롯한 메이져 언론들은 신경숙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무슨 대단한 책인 양 선전을 해대고, 비평가들은 주례사에 버금가는 찬사를 늘어놓는다. 신경숙의 책들이 매번 잘 팔리는 것도 사실은 그 때문인데, 거기에 대해 신경숙은 무척이나 부담을 느꼈나보다. 그래서 그녀는 내 동창의 유고집을 표절해 <딸기밭>을 쓰고, 초기작인 <배드민턴 치는 여자>를 장편으로 개작해 <바이올렛>을 내는 등 작가로서의 한계를 드러낸다. 물론 장편으로 만들 절박한 이유가 있다면 그래도 된다. 하지만 저자는 “두 작품 사이의 차이를 느낄 수가 없었”고, 그게 “초기 소설을 답습하는 매너리즘의 결과”라고 한다. 문학평론가 박철화는 신경숙의 작품들에서 마루야마 겐지나 파트릭 모디아노의 냄새가 난다고도 했다. 대가로부터 영향을 받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들의 어설픈 모방에 불과하다는 얘기일 거다.
권력은 어디나 존재한다는 점에서 문학권력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문제는 그게 잘못 행사된다는 거다. 신경숙이 90년대 최고의 작가로 칭해지고 있다는 것만 해도 문학권력의 폐해가 느껴지지 않는가? 하지만 권력을 쥔 자들이 늘 그렇듯, 문학권력에 대한 비판에 그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권력을 갖지 못한 자들의 한풀이일 뿐이라고 폄하하면서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려 한다. 신경숙의 남편이자 <문학동네>의 실세인 남진우가 문학권력 비판에 대해 보이는 반응을 보면, 그들의 의식세계가 얼마나 빈약한지 능히 짐작할 만하다(이런이런, 부부를 싸잡아 비난해버렸네...).
류시화와 정호승의 시 세계를 비판한 대목은 “역시 시는 난해하다”는 느낌만 줬고, 책 뒷부분은 워낙 지루해 대충대충 읽고 말았다. 그렇긴 해도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를 보니 책의 가치에 비해서 지나치게 안팔린 것 같다.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