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3일, 오늘을 내가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오른쪽 위부터 시작한 나의 잇몸수술 & 사랑니 제거는 한바퀴를 돌아 왼쪽 아래에 이르렀다. 드디어 끝이다. 끝났다는 환희 대신 입이 너무도 아픈 나머지 눈물을 흘리면서 치과를 나왔다.
-5월 13일, 잇몸수술을 시작한 날. 부위는 오른쪽 위. 13일의 금요일날이다. 이날도 난 울었다. 그때의 아픔을 10으로 매겼다. 닷새간 죽만 먹었다.
-5월 20일, 오른쪽 아래. 두 번째 해서 그런지 하나도 안아팠다. 아픔 지수 3. 이런 식이면 나머지 두 번도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에 밖에 나가서 고기도 먹었다. 오른쪽 잇몸이 안닿게 하면서 술도 마셨다.
5월 27일. 왼쪽 위. “이쪽은 잇몸이 너무 안좋네” 하면서 내 후배는 한시간 반 동안 내 입을 작살내 놨다. 왼쪽, 오른쪽을 다 못쓰게 되었으니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배가 너무 고파서 오른쪽으로 죽을 먹었지만, 아직 아물지 않은 잇몸이 아파왔다. 아픔 지수 20.
6월 3일, 왼쪽 아래. “여기는 그래도 괜찮으니 금방 끝나겠지?”란 내 말에 후배는 그렇다고 했다. 다만 사랑니가 너무 깊숙이 들어가 있어 뽑기가 여간 어려울 거라고 한다.
“에이, 김선생 기술 좋잖아! 난 믿어”
이러고 의자에 누웠는데.........
1시간 40분이 넘게 후배는 내 입을 작살내 놨다. 아픔 지수는 40 정도? 참고로 내가 정한 인간의 한계는 20 정도다.
사랑니를 빼는 건 차라리 쉬웠다.
후배는 “사랑니 바로 밑이 이가 완전히 녹아버렸네. 내가 살리려고 노력은 해볼게”
그래놓고는 그쪽 부위를 학대한다. 여간해서 아프단 말을 안한 나지만, 계속 “으으--” 신음소리를 냈다.
“거의 다 했어, 형”
이 말을 하고 나서 후배는 50분을 날 의자에 앉혀 놓았다.
원래 난 기자가 써달라고 한 책의 50자평을 치과 진료 중에 생각하려고 했다. 그거 생각하고 있으면 아픈 걸 잊을 수 있잖는가. 초반에 4개를 생각해 냈고, 누운 채로 종이에 적었다. 하지만...아픔이 심해지면서 내 머리는 굳어버렸다. 아무 생각도 안났다. 의자에서 내려 후배의 목을 조르고 싶었다. 눈물이 주르르 났다. 코로 숨을 쉬는 것도 힘들어 죽겠다.
사랑니를 뽑은 뒤 꿰메는 것도 오래 걸렸다. “한바늘만 더”라고 해놓고선 네댓 바늘은 꿰맸나보다. 마취가 풀려서 그런지 바늘이 들어갈 때마다 유난히 아팠다. 이제 끝인가 했더니 간호사가 고무 패킹을 해준단다. 지난번에 떨어져서 고생했다고 말해서인지 튼튼하게 한다고 십분이 넘게 내 입을 괴롭혔다. 참지 못하고 신음 소리를 냈다. 미안하다면서 계속 아프게 한다. 다시금 눈물이 났다. 순전히 아파서.
이제 내게 사랑니는 없다 (사랑니와 더불어 누군가를 사랑할 정열도 사라진 건 아닌지...). 그리고 잇몸은, 관리만 잘 한다면 문제없이 살 수 있단다. 몰래몰래 마시긴 했지만, 내가 인생에서 한달간 술을 마시지 않은 적은 거의 처음인 것 같다. 그 동안 우리 경제가 다시 침체기로 빠진 걸 보니, 화류계에서 내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도 큰가보다. 당장은 아니지만 일주일 후 쯤엔 다시금 알콜계로 복귀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경제야, 일주일만 기다리렴.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치과 가라고 한다. 스켈링 하라고 권한다. 내가 십여년간 잇몸을 방치함으로써 그 좋은 이빨을 이리 만든 게 한스러워 그러는 거지만, 치과라는 게 자발적으로 가게 되는 곳은 아닌지라 별 효과는 없을 듯하다. 그들 중에는 나처럼 “아 그때 민이 말 듣고 치과 갈 걸” 하면서 후회할 사람이 있지 않을까. 이는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하지만 대개는 건강을 잃은 뒤에야 그걸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