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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실패 - 기업의 성공 신화에 가려진 진실
신기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3년 4월
평점 :
살다보면 별의 별 일을 다 겪게 된다.
인물과 사상 표지에 얼굴을 디민 것.

십년 전만 해도 인물과 사상에 내 글을 한번 실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는데,
표지에 나다니 기분이 몽롱했다.
그럴만한 인물이 아니란 생각에 미안한 것도 잠시,
출판사를 찾아가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했다.
다 좋았는데 막상 나온 사진을 보니까 내가 너무 주름도 많고,
늙게 나온 거다.
내가 이렇게 늙었나 싶어서 보톡스 생각을 잠시, 아주 잠시 했다가 지웠다.
그런데 어제, 아는 분의 추천으로 한 블로그 사이트를 들어가 봤다.
그 블로그 주인장께선 내가 나오는 베란다쇼를 잘 보고 있다면서
내 그림을 그려서 올려 주셨다.

흰머리로 뒤덮인데다 얼굴도 쪼글쪼글한 내 모습을 보면서,
물론 그림을 그려주신 건 감사드리지만,
마음이 아팠다.
난, 너무 늙었다. 늙어도 너무.
언젠가 베란다쇼 시청자게시판에 “그 쭈글이게스트는 뭐하는 애야?”라고 쓴 것에 약간 상처를 받았는데,
이젠, 얼굴에 대한 언급에 전혀 신경 안쓰는 것처럼,
피부 가지고 뭐라고 해도 무덤덤한 내가 되는 게 장수의 지름길일 듯하다.
2012년 알라딘 서재의 달인이 된 뒤 조금 자만했다.
별로 한 게 없는데 달인이 되고나니 “이 정도만 하면 되는구나!”라는 마음을 먹었던 탓.
게다가 베란다쇼에 본격적으로 나오면서부터는 아예 서재활동을 작파해 버렸다.
그래도 오늘 날 언급해 준 고마운 분 덕분에 “아참, 서재에 글써야지!”란 생각을 하게 됐고,
상반기 동안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을 뽑아서 리뷰를 쓸 기특한 마음이 들어 버렸다.
혹자는 이럴 것이다.
“흥, 바쁜 척은 다 하고서 책이나 읽을 시간이 있었겠어?”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물론 천안으로 이사온 뒤 서울에 뻔질나게-정말 뻔질나게-드나들긴 했지만
그 덕분에 이사온 뒤 부쩍 떨어진 내 독서량이 상승곡선을 긋고 있다.
역시 책은 기차나 버스에서 읽는 게 적성에 맞나보다.
6월이 아직 다 안갔지만 앞으로 읽을 책 리스트를 봐도 역전은 힘들 것 같아
여기서 상반기 최우수작을 발표한다.
인물과 사상 인터뷰를 하러 갔을 때 받은 <사라진 실패>가 단연 1등이다.
기업 얘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이 책은 첫장부터 내 심장을 떨리게 했고, 심지어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그 심장의 떨림을 지속하게 만든 몇 안되는 책이다.
재미있거나 깨달음을 주는 책을 좋은 책이라고 꼽는데,
이 책은 그 둘 다를 선사해 줬다.
이 책을 읽고난 뒤 두달간 “내가 ‘사라진 실패’를 읽었는데 말야, 거기에 따르면...”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심지어 내가 가끔 기생충 글을 쓰는 네이버 담당자한테 이런 문자도 보냈다.
“‘사라진 실패’ 읽어보셨나요. 네이버 얘기도 났는데, 정말 후덜덜하네요.”
혹자는 또 이럴 것이다.
“아쭈. 이것이 아예 대놓고 책선전을 하네? 인물과 사상에서 표지에 실어줬다고 이러는 거 아냐?”
혹시 이런 생각을 한 분이 있다면 예리하다,고 말씀드리겠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아까 책 주문을 하러 갔다가 이 책이 그다지 많이 안 팔린 것에 놀란 게 더 큰 이유다.
마무리를 멋지게 해보자.
“속는 거 아냐?”라는 생각에서 이 책의 주문을 망설인다면, 그거야말로 이 책에서 말하는 ‘실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