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지도학생이었던 고xx라고 아시죠?”

별 생각없이 전화를 받았건만, 이 말을 듣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전할 게 있다면 고xx가 직접 하지, 다른 사람을 시키지는 않을 것이니까.

“그 친구가 어제 밤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선생님께 알려 드려야 할 것 같아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난 그저 멍~했다.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고xx. 지금 우리 병원 인턴인 그는 곧 이비인후과 레지던트가 될 예정이었다. 그래서 코로 숨을 잘 못쉴 정도로 심각한 내 비염을 치료해줄 터였다.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 공부도 잘하는데다 생각이 깊어 내가 특히 예뻐했던 애였는데. 작년 초, 졸업을 앞두고 횟집에서 만났을 때,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제가 더 이상 학생으로서 선생님을 못뵙게 된다니 서운합니다”

난 무슨 소리냐며, 졸업 후에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고 얘기했지만, 바쁜 인턴 생활은 그에게 그럴 짬을 주지 않았고, 결국 그 만남이 그와 나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차끼리 부딪혔는데, 그의 차에서 불이 났다나. 그래서 상대방은 별로 다친 곳도 없는데, 그 친구만 죽었다나.


그에게는 7년간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다음주 토요일이 결혼 예정일이었다. 그날 역시 여자친구를 데려다 주고 집에 가다가 사고를 당한 거란다. 아들을 훌륭하게 키운 부모도 기가 막힐테지만, 신부가 될 그 여자분은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


술약속 선약이 있어 소주 한병 반을 마시고 용인에 갔다. 머리고기와 전, 김치가 테이블에 올려진다. 뭐라 할 말이 없어 그저 묵묵히 소주만 마셨다. 모든 죽음이 사연이 있고 억울하겠지만, 나보다 훨씬 어린 스물일곱살의 죽음은 해도 너무한 게 아닐까. 나쁜 녀석이다, 그는. 감히 나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가다니. 나로 하여금 검은 양복을 입고 자기 영정에다 절을 하게 한 놈이 어찌 좋은 놈일 수 있을까. 나중에 저 세상에서 만나면 혼내 줄 생각이다. 저 세상에서는 그가 내 선배일 테지만, 한번 지도교수는 영원한 지도교수니까. 일단 지금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렌초의시종 2005-01-08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어떻게......

paviana 2005-01-0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하기 1주일전에....참....뭐라 할말이 없네여...

하루(春) 2005-01-08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납골당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휴~ 알았던 사람이, 더군다나 꽤 잘 알던 사람을 하루 아침에... 다시 가봐야 할텐데... 안 됐네요.

라쇼몽 2005-01-08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정한 신을 믿지는 않지만, 이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어떤 두려움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항상 내 옆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스물일곱 나이에 누가 짐작이라도 했을까요.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조선인 2005-01-08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플라시보 2005-01-08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세상에 아깝지 않은 죽음이 어딨겠습니까만은. 그분의 죽음은 참으로 안타깝네요. 이뻐하던 학생이라니 님의 충격이 크실듯 합니다. 부디 좋은곳으로 가셨길...

비로그인 2005-01-09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하고 착한 사람일수록,

일찍 데려가시는 모양입니다.

좋은 곳으로 가셨을거라고 믿습니다. 너무 상심마셔요.

2005-01-08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연우주 2005-01-08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심란한 일이군요...

비연 2005-01-10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궁. 어떻게 이런 일이.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maverick 2005-01-10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사연을 볼때마다 무신론자로서의 확신이 더해지는군요.. 도대체 저들은 무슨 죄가 있어 저런 시련을 받아야 합니까.. 남은 가족분들과 약혼녀분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덜 다치기를 기원합니다..

마태우스 2005-01-10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버릭님/그러게요. 전 이런 생각을 했어요. 오래살려고 고기 안먹고 이래가면서 바둥바둥 살면 뭐하나.....

비연님/정말 어떻게 그런 일이 있는지....말씀 감사드려요

우주님/그러게요. 마음이 영 좋지 않네요

속삭이신 분/중2면 더더욱 심난하겠네요. 무슨 죄가 있다고....놀러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양이님/부디 좋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플라시보님/말씀 감사합니다.... 인생무상이란 말이 떠올라요.

조선인님/감사합니다.....

황게으름동이님/앗 처음 뵙는 것 같은데.... 저도 그런 생각을 해요. 그때 그가 병원에서 일이 있어 여친을 만나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까, 아니면 데스티네이션처럼 다른 일로 죽을까.... 그건 알 수 없겠지요? 하지만 운명이란 게 있다면....

하루님/모든 죽음은 허망하고 덧없지요. 특히 젊은 사람은...

파비아나님/히유,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결혼 후에 그런 것보다 낫다고 생각할래요...

로렌초님/히유, 심란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