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일년에 한두번 정도는 감기를 앓는다. 알레르기성 비염 탓인지 내게 오는 감기는 언제나 코감기 형태로 나타나는데, 코를 하도 풀어서인지 감기가 나을 때쯤 되면 내 코는 대개 헐어 있다. 휴지와 더불어 내가 많이 쓰는 것은 바로 약이다. 타이레놀 ER과 알레르기성 비염 약을 말 그대로 ‘때려먹’는데, 내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내 감기는 유독 증상이 심하고, 도저히 견디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그렇게 위기를 넘겼지만, 타이레놀ER 4알을 원샷했다가 그대로 혼절한 적이 딱한번 있다.
올해는 어떻게 감기 한번으로 마감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지만, 지난 금요일 밤 추운 데서 잔 탓인지 또다시 감기가 찾아왔다. 그저께 밤을 떨면서, 혹은 코를 풀면서 꼴딱 새고 난 나는 어제 아침 기차를 타기 전에 타이레놀 ER을 두알 먹었다. 당연히 졸음이 쏟아졌다. 내가 안일어나면 5분마다 미친 듯이 울리는, 충직하기 짝이 없는 휴대폰 알람이 없었다면 천안에서 내릴 수 없었을거다.
학교 앞에 있는 약국에서 알레르기 비염 약을 샀다. “하루 한알 드시는 거 아시죠?”라는 말을 한쪽 귀로 흘리고 내 방에 가자마자 두알을 먹었다. 별로 나아지는 것도 없으면서 졸음만 잔뜩 왔다. 점심 식사 후 약 두알을 더 먹은 채로 부총장 등 높은 사람들이 잔뜩 모인 회의에 참석했다. 서류를 하나씩 나누어 주는데, 그 두꺼운 걸 설마 다 읽겠냐 했는데 진짜로 다 읽는거다. 지루해서 딴생각을 하다가, 난 그만 코를 곯고 자버렸다. 옆사람이 날 쳐서 일어나 보니 대부분의 사람이 나를 보고 있다. 이런이런, 이게 무슨 망신이야.
드디어 회의가 끝났다. 질문 있냐니까 누가 또 질문을 한다. 질문하는 사람을 잠시 째려보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서류를 챙겨 먼저 나갔다. 가면서 택시를 불러 기차역으로 갔고, 충직한 휴대폰 알람을 내리는 시각에 맞춰 놨다. 졸음이 엄청 쏟아져, 기차를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전화가 계속 오는 바람에 한번 깼고-내가 가져간 서류가 ‘대외비’라고 빨리 가져오란다-옆 사람이 내릴 때 또한번 깼다. 그리고 충직한 휴대폰 알람 때문에 5분 간격으로 깼다. 모 케이블 방송국에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쓰러져 잤고, 방송이 끝나고 다시 기차역으로 갔다. 그리고 또 잤다. 휴대폰 알람 때문에 극적으로 일어났고, 기차에서 내려 약속 장소로 갔다. 택시에서 좀 잤으면 했는데, 기사 아저씨가 보증을 섰다가 상대가 도망가는 바람에 제초제를 먹고 자살한 친구 동생 얘기를 하는 바람에 전혀 못잤다.
약속장소 도착. 하지만 남은 고기가 별로 없었다. 고기 좀 더했으면 했는데 다들 밥을 먹자고 해서 소면을 먹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저녁 약속에 늦었더니 고기 딱 4점 남겨둔 거 있지. 배 무지하게 고프니까 저녁 좀 차려 주세요”
버스에서 내내 잤고, 도저히 전철은 못타겠다 싶어서 택시를 타고 집에 갔다. 가자마자 난 그대로 쓰러져 자버렸다. 어머님이 부르는 소리가 났다. “민아, 저녁 먹어야지!!!!!” 하지만 그놈의 약기운 때문에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어지러운 와중에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사람들은 이 맛에 마약을 하나보다.
* 어제 하루동안 쓴 택시비가...무려 얼마야? 돈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