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체육대회가 있는 날. 어젯밤 26세 미녀와 밤드리 노니다가 새벽 1시가 넘어서 잠이 든 내게 9시 반까지 학교 운동장에 집합하는 일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기차를 타면 천안역에 내릴 수가 없을 것 같아, 무리해서 택시를 탄 뒤 고속터미널로 갔다. 택시 안에서 계속 자고, 그리고 천안까지 가는 버스에서 또 잤지만, 여전히 졸렸다. 그래도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운동장에 갔다.


‘의과대학’의 푯말 앞에 가보니 세상에나, 우리 학생들은 겨우 7명이 와있다. 다른 단과대학은 적게는 100여명, 많게는 200여명이 바글거리고 있던데, 7명이라니. 한 학생의 말대로 “주최측에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기권하려면 진작에 관둘 것이지, 행사에 재를 뿌리려는 게 아니라면 이게 무슨 짓일까. 뱀처럼 긴 다른 대학의 줄에 비해, 달랑 일곱명뿐인 우리 쪽은 공허해 보였다.


결국 우리는 40명이 나가는 줄다리기에서 실격을 당했다.

“의과대학과 공과대학의 경기는 의과대학의 선수가 부족한 관계로 공과대학이 부전승으로 올라갔습니다”라는 멘트에 공대생들은 환호했지만, 의대 애들은 아무런 느낌이 없는 듯했다. 내 전략 과목인 계주는 오후였기에, 나는 조교 선생에게 “이따가 연락하겠다”고 말한 뒤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러니까 우리 학생들은 체육대회에 대해 나만큼의 관심도 갖지 않았던 거다. 천안 캠퍼스에서는 총장격인 부총장이 축사를 하고, 교수들도 꽤 많이 나오는 등 학교의 단합을 위한 좋은 자리건만, 우리는 겨우 그런 모습밖에 보일 수 없었나보다. 그나마 온 학생도 “나 12시엔 가야 한다”고 태연히 말을 한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들 바쁜지 모르겠다. 이번 체육대회에 나와야 할 애들은 예과 1, 2학년 뿐이고, 다들 알다시피 예과 성적은 인생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한학기 동안 술먹은 것밖에 기억이 안난다”는 한 학생의 말처럼, 예과는 그저 편하고 자유롭고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뭣들을 하기에 이리도 무관심한 걸까. 그래도, 명색이 교수인 내가 우두커니 서있는 것이 미안하지도 않는가보다.


심하게 말하면, 의대 애들은 자신들만의 선민의식에 빠져있는지 모르겠다. ‘난 이 학교를 다니지만, 너네들과는 다르다’는 생각 말이다. 교양과목이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수준이 영 낮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이 없지는 않을거다. 그러니 다시 만날일이 없는 단과대학과의 행사에 가는 게 시간이 아까운 거겠지. 하지만 입학 성적상 커트라인이 더 높은 치과대학도 200, 300명이 넘게 온 판국에, 뭐가 그리 잘난 걸까.


점심 시간이 끝나고 조교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선생님, 저희 인원수가 안되서요, 7인8각이랑 계주도 다 취소됐어요. 오실 필요가 없을 것같아요”

예과과장이 되고나서 학생들에게 가졌던 애정이 실망으로 바뀐다. 아직 본과에 오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벌써 ‘의사’의 길을 걷고 있는 걸까. 어쩌면 잘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참에 그간 밀린 글이나 왕창 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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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마녀 2004-10-28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마태우스님의 승전보를 기다렸건만... 아쉽습니다.

sweetmagic 2004-10-28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대 다니는 친구들 중 한 녀석이 치과의사들은 단지 기술인 일 뿐이라고 하며 의사 가운 입을 자격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속으로 " 너 이, 와 장창 썩어 버려라 !! " .... 그나저나 고생이 많으십니다.

깍두기 2004-10-28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아쉽네요. 굉장히 개인적인가 보군요. 의대 분위기가. 그래도 그렇지 일곱명이 뭐랍니까....

sooninara 2004-10-28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인8각 달리기와 계주 기대했는데..

oldhand 2004-10-28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주.. 기대했었는데 저까지 아쉽구만요.

sweetrain 2004-10-28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그래서 의대 애들이 재수가 없다...라고 하면 한대 맞을라나...근데 실제로, 슬픈 이야기지만, 교회에서 연합 모임을 하면...가장 비협조적이고 냉소적인 사람들이 의대생들이더란...ㅠ.ㅠ 제가 어제 한판 하고 왔거든요.

sweetmagic 2004-10-28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비님도 참... 그래 봤자 지들이 자구땅 위에서 먹고 싸는 사람들일 뿐인데 그죠 ?? 그런 사람들이 착한 의사까지 이미지 버린다구요,,, 가장 비협조적이고 냉소적인 사람들..아마 어울리는 법을 몰라서 그럴 꺼예요 ... 좀 봐줘요 ~~~

니르바나 2004-10-28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죠.
덕분에 마태우스님의 밀린 글 보는 '반사이익'을 볼 수 있잖아요.
학생들이 마 과장님 말씀을 잘 들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계주복수혈전'도 관전할 수 있구요.

조선인 2004-10-28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마태님이 계주에서 일등할 기회를 놓치다니 아쉽네요.

maverick 2004-10-28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의대생들 약간의 선민의식이 있는 걸 가끔 느낍니다...
뭐 그게 전체에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겠지만요...
뭐.. 모두에게 사명감에 똘똘 뭉친 의사상을 요구할 순 없잖습니까? ^^;

ceylontea 2004-10-28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름대로 불참 이유가 있었겠지만.. 좀 심하긴 하네요..
그래도 마태우스님 실망 하지 마시고... 내년 체육대회엔 참가자가 늘어날 수 있도록 독려를 해 보심이 어떨까요?

panda78 2004-10-28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7인 8각 달리기 기대했건만 아쉽군요. 흠..
'밤드리 노니다가'가 멋져서 추천 하나 .

플라시보 2004-10-28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너무 저조하게 나왔네요. 하긴 예전에 우리과 애들도 체육대회 하면 5명 나갔습니다. 지도교수님. 조교. 과대표. 부대표. 총무. 그 다음날 우리과 애들 전부 지도교수님께 죽도록 야단을 맞았죠. 전부 나하나 안나간다고 표나겠어 하는 마음에 안나갔더니 그리 된거지요. 그때는 뭐 아무 생각 없었는데 이렇게 다른 사람의 입장. 즉 나간 자의 입장에서 쓴 글을 보니 잘못했구나 하는 뒤늦은 반성이...^^

가을산 2004-10-28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승전보를 기대하고 들어왔는데, 의외의 내용이네요.
혹시 학생들이 '시험'을 앞두고 있었거나, 홍보가 덜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학교는 다르지만 제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이 글 같은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마태님이 다음에는 학생 대표들을 불러 한번 이야기 하심이..... 쪽팔리잖아~! 이러면서.

비로그인 2004-10-28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26세의 꽃미남과 밤드리 노닐고 싶어요 ㅠ.ㅠ

BRINY 2004-10-28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육대회 시작한 지 2시간만에 입 삐죽이 내밀고는 [재미없어요, 집에 먼저 가도 되요?]라고 말하던 우리반 애도 나중에 의대 갈라나요?

마냐 2004-10-29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어쨌든 오랜만에 마태님 글을 실컷 즐길 수 있다는데서 저는 간사하게 위안을 찾았슴다. 마태님도 '좋은 일' 하셨으니 기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