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이어트 한다고 퍽이나 우려먹었죠? 한편 추가요!
숨을 못쉬겠다. 양복 때문이다. 양복 바지가 허리를 조여와, 앉으나 서나 몸이 힘들다. 행여 바지 뒤가 반으로 쪼개질까봐 걸음도 조심스럽게 걷고 있다. 바지가 쪼개지는 건 물건을 주울 때 빈발하므로, 손에서 뭔가를 떨어뜨리지 않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내 수중에 있는 양복은 거의가 다 99년에 산거다. 그 이후에 양복을 산 기억이 없는 걸로 보아, ‘전부 다’가 옳은 표현일 듯싶다. 양복이 어찌나 많이 생겼는지 ‘평생 양복 안사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 게다가 난 양복을 거의 안입고 사니, 하나같이 새것에 가깝다. 하지만 문제는 사이즈였다. 99년의 나는 어땠을까. 난 그때도 내 몸매에 만족을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 눈엔 그렇지가 않았나보다. 우리 조교가 2003년에 한 말이다.
“처음 뵜을 때, 전 저렇게 날씬한 사람이 있나 싶었어요”
지금은 어떠냐고 물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뚱뚱해요”
물어보지 말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오늘 갑자기 양복을 입은 이유가 있다. 11월 1일과 2일, 학교에서 중요한 일이 있는데, 거기 대비한 회의를 하던 도중 학장님께서 날더러 이러신다.
“그날은 기초 선생들 다 정장 하고 오라고 해. 청바지 같은 거 입지 말고”
말씀은 ‘기초 선생들’을 지목했지만, 사실은 나를 겨냥한 말이리라. 오늘은 그 중요한 일의 리허설날, 난 ‘혹시 양복이 없는 게 아니냐’는 학장님의 우려를 덜어주기 위해, 그리고 안입다 갑자기 양복을 입으면 힘이 들까봐 정장을 입고 왔던 거다. 양복마다 사이즈가 다 틀려 숨을 편히 쉴 수 있는 것도 여러 개 있지만, 오늘 내가 집은 양복은 하필이면 사이즈가 가장 작은 거다. 일단 화장실에 한번 갔다와야 숨통이 트일 것 같다.
숨을 못쉬겠다는 단점은 있지만, 나름의 장점도 있다. 바지가 허리를 꽉 조이고 있으니 배가 안고프다는 것. 평소 아침을 안먹으니 11시쯤이면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그렇다면 사이즈가 작은 바지가 다이어트의 한 방법도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럴 수는 있지만, 그게 잘 안된다. 오늘 것과 비슷한 바지를 며칠 입고 다녔더니 한 여자애가 날더러 이런다. “선생님, 보기에 너무 안스러워요. 바지가 너무 작아서요”
재벌 2세로서 남에게 안쓰럽게 보이는 걸 최대의 치욕으로 아는 내가 그 바지를 옷장 꼭대기로 던져 버렸음은 물론이다.
TV에서도 복부비만에 대해 경고를 하고, 거기 영향을 받은 어머니도 내 허리를 보며 한탄하시지만, 나라고 그런 것에 대한 경각심이 없는 건 아니다. 그래서 시작한 윗몸일으키기, TV 받침대에 발을 끼우고 하다가 히프가 까지는 바람에 한동안 중단했었지만, 엊그제 친구로부터 윗몸일으키기 기계를 하나 얻었다. 기계라고 말하니 거창해 보이지만, 그냥 플라스틱으로 된 판자떼기 하나다. 하지만 그걸로 하니까 발을 누가 잡아줄 필요도 없고, 히프도 보호된다. 잠시 고려했던 요가는 때려치우고 그걸로 윗몸일으키기를 열심히 할 생각이다. 허리 때문에 그 많은 양복을 다 사장시킬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어제, 그제는 술 때문에 못했고, 오늘도 술을 마셔서 안되니 내일이 내게는 윗몸일으키기의 원일(元日)이다. 양복을 살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