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그러니까 9월 24일 금요일날, 난 오후에 수업이 있었다. 하지만 연휴 전날 무슨 공부가 되겠는가. 난 과감하게 휴강을 해줬다. 애들은 물론 즐거워했고. 10월 1일도 휴강하자는 말은 들어주지 않았다. 어떻게 두 번 다 휴강을 하겠는가.


오늘 수업에 들어가면서 “애들이 한명도 없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이왕 노는 거, 이번주까지 푹 쉬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내 걱정과 달리 많은 애들이 강의실에 나와 있다.

나: 흠, 전 여러분이 오늘 아무도 안올까봐 걱정했었어요. 다른 과목은 다 수업 했나요?

애들: 아니요!

나: 에이, 아니죠? 수업 했죠?

애들: 저기 칠판 좀 보세요!


칠판을 봤더니 이렇게 써있다. ‘목요일 미생물 휴강, 예방의학 휴강, 금요일 오전 약리학 휴강, 오후 기생충학 수업 함’

세상에나, 강의실에 온 애들은 나 하나 때문에 먼 길을 달려온 거였다. 다른 과목이 수업을 해도 난 휴강을 하는 사람인데, 이게 무슨 일이람? 미안해하는 내게 애들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그래서...난 휴강을 해버렸다. 날 믿고 온 애들을 위해 출석부에 이름을 적어내게 한 것이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배려였다. “여러분들은 꼭 점수 올려줄께요”라고 한 내 말을 난 아마 지킬 것이다.


지도학생에게 다가가 물었다. “다른 거 다 휴강이라고 왜 얘기 안했어요?”

“지난번에 교수님이 너무 강경하게 휴강 안한다고 하셔서요”

내가 미안하다고 하자 그 학생은 다시금 못을 박는다.

“저야 괜찮지만 부산서 온 학생도 있어요”

으흐흑, 평소 휴강을 즐겨하더니만, 왜 이번엔 이런 짓을 했을까. 학생들에게 겁나게 미안해 죽겠다. 애들의 시간을 뺏은 난 범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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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4-10-01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학생들 마음 이해합니다. 저도 딸랑 수업 하나 들으러 학교 가면 왠지 그 교수님 미워지더라구요~~^^ 그래도 점수 올려준다고 하면 또 좋아서 헤벌레 웃는 게 바로 저랍니다. 그냥 출석해서 점수 벌었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하얀마녀 2004-10-01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저도 안타깝습니다.

sweetmagic 2004-10-01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마구 마구 휴강하는 교수님들 싫어요 메롱 !

mannerist 2004-10-01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교수님"들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휴강 안하시는 분들입니다. 가장 존경하는 저희 과 교수님, 학회 출장 관계로 일주일 휴강(3시간)하셨더랬는데 다음주 수요일 저녁 일곱시부터 열한시까지 보강 해주시더군요. 환갑이 넘은 양반이 말입니다. 새삼 존경. 을.

ceylontea 2004-10-01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갑자기 공업수학 교수님이 생각납니다. 연로하신 분이셔서.. 허리도 구부정 했는데.. 책을 항상 보자기처럼 생긴 것에 싸가지고 다니셨죠.. 정말 열심히 수업하셨었는데... 그리고 버스도 안타시고 걸어다니셨던 걸로 알아요...

sweetmagic 2004-10-01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너 님 실론티님 그죠 ?? 수업은 학생과 교수님 간의 약속이자 계약이라구요
마태님 계약위반 !!! 메롱 메롱 ~ !!

oldhand 2004-10-01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나리 학생이었던 저는 당연히 휴강을 좋아했습니다. ^o^
부득이 하게 휴강을 했다가 저녁시간이라도 내서 꼬박꼬박 보강해주시는 교수님들도 계셨구요.
저는 그런걸 '보강'이 아니라 '보복'이라고 불렀답니다. 아아아.. 못된 제자였지요.

stella.K 2004-10-01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밌어요. 하하. 그러게 평소에 잘 하시지...그래도 그 학생들 참 성실하네요. 나 같았으면 개겼거나, 교수님 씹었을텐데...저 이거 추천할래요.^^

노부후사 2004-10-01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사람이 있으면 저런 사람도 있는 거지요. ^^

sunnyside 2004-10-01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마태우스님 얼굴 보고 싶어서 온 학생들일 거에요.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

비로그인 2004-10-01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의는 어떤 스타일로 하실지 궁금합니다.

청강해도 되나요?(웃음)

진/우맘 2004-10-01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나~ 명절마다 씹던 그 교수님, 절대 휴강 안 하고 혼자 버티던 그 교수님이 바로 마태님이라니....ㅡ.ㅡ;

비로그인 2004-10-0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과는 심지어 사회복지사협회에서 사회복지사의 처우 개선과 관련된 집회 있으니 꼭 참여해달라고, 참여하지 않을 시에는 나중에 취직에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는 공문이 학교로 날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교수님들이 휴강을 안 해줘서--;;; 그날 집회에 저희 학교만 없었대요 -_-;; 고로 명절이라고 휴강? 절대 없죠..(실은 등록금은 제일 비싸면서 수업 일수는 다른 학교보다 2주 정도 짧은지라, 휴강까지 하면 -_-)

sweetrain 2004-10-02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나...명절이면 으레 휴강을 당연히 하는거라 생각했거든요...그래서 저희 학교에서는 아예 귀향버스가 추석 연휴 전날 아침에 출발합니다...그래도 아무 지장이 없으니까요..

2004-10-02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4-10-03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비님/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요, 교학과에서 수업을 한다고 했단 말이어요!
새벽별님/그, 그런 거죠? 역시 늦게라도 회개한 거 잘한 거죠?
여대생님/전 그렇게까지 융통성이 없진 않은데..억울해요! 그리고 님은 대학 시절의 재미 하나를 맛보지 못하고 졸업하셨나봐요.
진우맘님/그, 그게 아니라니깐요! 억울합니다!!!!!!
체셔고양이님/고양이님 오면 안됩니다. 우리과 남자애들이 난리 납니다.
서니사이드님/그런 걸까요? 님이 그리 말씀하시니 믿겠습니다.
에피메테우스님/오오, 노자 사상에도 도통하셨군요!!
스텔라님/님이 추천하신 의미가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감사드립니다. 스텔라님 고마워요!
올드핸드님/다 그렇죠 뭐. 전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게 보강이어요. 그래서 지금도 보강은 전혀 하고 있지 않습니다.
스윗매직님/계약위반에 대한 처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동심에 상처를 준 것은....
실론티님/으음, 님은 그런 교수님들을 좋아하시는군요.
매너리스트님/님두요... 역시 학문을 좋아하는 분들은 다르군요.
하얀마녀님/같이 안타까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흑, 그래도 위로가 안돼요!!
꼬마요정님/그, 그렇죠? 애들도 출석점수 벌었으니 상처를 덜 받았겠죠??

ceylontea 2004-10-04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어요.. 저도 휴강 잘 해주시는 교수님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