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스키토와 모기는 철자가 비슷하다. 인류는 다 한 조상에서 나왔다는 게 타당해 보이는 대목.

 

지난 여름을 난 모기를 죽이면서 보냈다. 모기를 마취한 뒤 주사기 바늘로 머리를 분리해 냈고, 현미경으로 보면서 잘 보이지도 않는 투명한 침샘을 떼어냈다. 대단한 노하우가 필요한 일이라 손이 거칠기만 한 나는 아주 애를 먹었는데, 시범을 보인 사람이 했던 것처럼 내가 정확히 침샘만을 분리한 건 몇 번 되지 않고, 대부분의 경우 침샘을 터뜨렸다. 빠져나간 침이 아까워 붓으로 허겁지겁 주워담곤 했는데, 1.5ml짜리 튜브를 침샘으로 채우는 데는 두달이 걸렸다.


모기는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닌지라, 난 곤충 전문가와 더불어 물 웅덩이를 찾아 헤맸고, 거기서 잡은 모기 새끼를 설탕물을 줘가면서 키웠다. 모기는 금방 자랐고, 다 자란 모기는 내 주사기 바늘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내가 그짓을 한 이유는 소아과에 온 환자 때문이었다. EB 바이러스라는 게 있다. 걸리고 나면 사람의 면역체계를 뒤흔들어놓는 질나쁜 바이러스인데, 이 바이러스에 걸린 아이 하나가 모기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이 격심하게 나타났다. 물릴 때마다 그 부위가 썩어나갔다. 여름에 모기 한두번 물리는 것도 아니니, 그 얘의 고통이 얼마나 컸겠는가. 면역이 너무 과도해서 생긴 질환인만큼, 치료도 면역치료를 해야 했다. ‘탈감작’이라고, 모기 항원에 미리 노출시켜 면역반응을 이끌어내면 막상 모기가 물어도 덜 난리를 피울 게 아닌가. 그래서 모기 항원, 그 중에서도 모기가 사람을 물 때 주입하는 침샘의 항원이 필요했던 거다. 튜브에 모은 침샘을 정제해 항원을 만들었다. 항원의 단백질 농도가 일정량 이상인 것을 확인하고 소아과에 갖다 줬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그래도 약간의 효과는 봤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올해, 소아과에서 또 연락이 왔다. 그런 환자가 몇 명 더 있는데 한번 더 해줄 수가 있냐고. 심난했다. 환자를 위해서는 해줘야 하지만, 보직을 맡아서 성가신 일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곤충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내키지 않았다 . 작년에 일이 끝난 뒤 나름대로 성의를 표했지만, 내가 쓴 책을 준다는 걸 깜빡하는 바람에 그가 올해 초 전화를 걸어 “난 책도 안주냐!”고 항의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라도 갖다 줬으면 좋으련만 알았다고 하고 안갔다. 안그래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못하는 터라, 또 모기를 잡아달라고 하기가 어려웠던 거다. 사정을 얘기하니까 소아과 사람은 자기가 구해볼테니 침샘만 빼달라고 한다. 알았다고 했다.


그저께, 그 사람을 만나 모기를 받아왔다. 50미리 튜브에 모기가 잔뜩 들어있는 것이 적어도 몇천마리는 되어 보였다. 문제는 그게 죽은 거라는 것. 죽어서 이미 말라버린 모기의 침샘에 침이 남아있을 리는 없었으니까.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침샘이 있던 자리의 조직을 떼어 튜브에 넣고 있는데, 이게 과연 효과가 있으려나 싶기도 하고, 그 많은 모기를 언제 다 처리하나 하는 생각에 암담하기만 하다. 오늘은 하루종일 강의준비를 하느라 모기 근처에도 가지 못했고, 내일은 무슨 회의가 있어 시간이 없고, 모레는 토요일, 월요일에는 라디오 나가는 것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는데...


9월이지만 우리집엔 모기가 많다. 휴대폰을 충전하느라 전자모기향을 안피우고 잤더니 몇군데를 물렸다. 기차에서 양말 밑으로 손을 넣어 열심히 긁고 있었더니 옆자리 여자가 지저분하다는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피, 누군 긁고 싶어서 긁나? 글을 쓰며 인터넷을 누벼야 할 내가 모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고생이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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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4-09-09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옷..!! 침샘이 있던 자리의 조직을 떼어 튜브에 넣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마태님의 의사선상님다운 모습이 엿보입니다..^^

ceylontea 2004-09-09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그런 일을 하시다니. 너무 대단하십니다...

가을산 2004-09-09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보통 일이 아니겠는데요!

깍두기 2004-09-09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이 전문가라는 실감이 나는군요. 평소엔 너무 친근한 모습이라^^

아영엄마 2004-09-09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아주 예민, 민감, 세심하신 마태우스님은 잘 해내실 수 있으실 거예요~ ^^*(그렇긴 해도 그많은 모기에서 분리를 해내려면..에구~ 눈 아프시겠습니다)

호랑녀 2004-09-09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 일을 하나하나 다 수작업을 해야 하는군요...
하... 전 역시 연구실 스타일은 아닌가 봐요. 그 얘기를 듣자마자 온몸에 진저리가 쳐지면서 목마르고 화장실가고싶고... 그러는 걸 보면.
인류를 위한 마태님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모자 벗고 꾸벅~

하얀마녀 2004-09-09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이 흰 가운을 입고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정교한 작업을 하는 모습. 크... 멋진데요?
타스타님이 한번 안 그려주시려나... ^^

starrysky 2004-09-09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기는 갈수록 독하게 진화하나 봐요. 0.0 전에 모기의 역습인가 하는 다큐를 봤는데 모기가 옮기는 기생충이 끔찍하게 많더군요!! 보면서 계속 마태님 생각 했는데..
어쨌든, 너무너무 고생스러우시겠어요. 하실 일도 많은데, 도움을 청할 만한 분 안 계신가요?

털짱 2004-09-09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바쁜 분을... 흑, 이젠 괴롭히지 않을게요.

메시지 2004-09-09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목도령신화'에의하면 인류가 홍수로 멸망할 때, 목도령이 마음이 약해서 그의 땟목에 모기를 태워줬다고 합니다. 그때 목도령이 맘을 독하게 먹고 모기를 거절했어야한다는 생각이 또 드네요.^^*

sunnyside 2004-09-09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미.. 몇 천 마리씩이나? 이런... '갈비 효과'가 아직 남았다면, 다음 번 오프 모임은 마태님이 모기한테서 침샘을 떼어내야 할 때, 마태님의 연구실에서 하는게 어때요? (침샘 떼기를 무슨 인형 눈알 붙이기나, 봉투 접기로 생각하고 있는 나 -.- )

비로그인 2004-09-09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번엔 파리의 침샘에 관한 연구도 부탁;;;;
(뭔소리냐 -_-;)

stella.K 2004-09-09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멋지십니다. 그런 중요한 일을 하시다니...! 정말 흰 가운 입고 현미경 보며 일하시는 그런 모습 보고 싶어요. 그런 사진 좀 올려주세요!!
저도 어젯밤, 아, 오늘 새벽이구나. 서재질 하느라 늦게 잤으니. 모기 한마리 나르는 바람에 약 뿌리고 잤는데...액체전자 모기향 그거 말짱 꽝이어요.>.<;;

tarsta 2004-09-09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 번개때 가지고 오셨으면 다들 봉투 붙이는 자세로 도와드렸을텐데... ㅠ.ㅜ

nugool 2004-09-09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굉장히 어려운 일도 하시는 군요.. 푸하하하!! 타스타님의 말씀에 뒤집어 집니다.. ㅋㅋㅋ

마태우스 2004-09-09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굴님/다른 분들은 저보다 더 힘든 일을 하시는데요 뭐. 창업준비는 잘되어 가시는지요??
타스타님/이미지와 댓글의 분위기가 달라서 가져가도 안도와줄 것 같은 분위기...^^
그림자님/모기 얘기가 이토록 깊은 존경심을 불러올 줄 저도 몰랐습다^^
스텔라님/액체전자 모기향 그거 꽝입니까? 어쩐지 계속 물린다 했어요... 글구 저 가운 없어요T.T
체셔고양이님/그거 유머였죠?? 10점 만점에 2점 드리겠습니다. 남녀노소미추에 관계없이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는 마태^^
서니사이드님/눈알붙이기보다는 조금 어려울 것 같아요. 현미경으로 보면서 하는 거라...근데 제가 술을 하도 먹어서 손이 떨린다는....치명적인...
메시지님/맞아요 다 목도령 때문이어요!!
털짱님/아니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흑흑
스타리님/도움 청할 분이 한분 계시죠. '스'로 시작해서 '이'로 끝나는...흐흐
하얀마녀님/일단 까운부터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이...
호랑녀님/아니 뭐 인류를 위한다기보다...부끄.....
아영엄마님/제말이 그말입다. 어제 잠깐 했는데 눈이 어찌나 아픈지...제가 또 눈도 작지 않습니까...
깍두기님/전문가라니 부끄럽습니다. 안그래도 이따 리뷰 쓸 때 님 글 좀 우려먹겠습니다. 괜찮죠?
가을산님/님이 하시는 일에 비하면 보통 일입죠^^
실론티님/대단할 것 까지요. 전 님의 피부가 훨씬 더 대단하게 느껴져요^^
금붕어님/후후, 그래서 사람은 가끔 자기가 일하는 모습도 글로 써야 한다니깐요. 이 감동의 물결에 제가 다 감동하고 있습니다

sweetrain 2004-09-10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고시원엔 모기가 없어요. 그래서 아무 것도 없어도 올 여름엔 한번도 안 물렸지요. 음홧홧.

tarsta 2004-09-12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그런데 모기는 어떻게 마취시켜요..? (따지는게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