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년 전, 내가 조교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는 이메일이라는 걸 시작했는데, 우선적으로 교수들에게 아이디를 부여했다. 당시 온갖 잡일을 도맡아하던 난 아이디를 정하라는 학교측의 요구에 기분 내키는대로 만들어서 제출을 했다. 나중에 내가 만든 아이디를 본 교수들은 화를 냈다. 한상태(이하 가명) 선생님은 hst, 최정일 선생은 cjy, 이상훈 선생은 lsh로 했었으니까.
한상태: 야, 이게 나인 줄 어떻게 알겠니? 홍성태도 hst고, 황성탁도 hst 잖아!
최정일: 그러게. cjy도 어디 한두명이겠냐. 무슨 일을 그렇게 해?
우연히 우리 교실에 놀러온 선배가 그 광경을 보고 “아이디는 간단할수록 좋아요”라고 했지만, 선생님들은 그 뒤에도 틈만 있으면 나를 갈구셨다. 지금은 다들 알 것이다. 아이디는 간단할수록 좋다는 걸. 물론 컴맹이라 인터넷이 도대체 뭔지도 몰랐던 난 그런 생각 없이, 순전히 귀찮아서 간단한 아이디를 만들었지만, 그 덕분에 우리 선생님들은 겨우 세글자로 된 멋진 아이디를 갖게 되었다.
내가 아이디를 가진 건 그로부터 4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천리안에 가입하느라 이메일 계정을 갖게 된 것. 90년부터 자칭 마태우스라고 스스로를 칭했던 나는 당연히 mataeus라는 아이디를 쓰려고 했다. 그런데, 그 아이디를 누가 쓰고 있다! 할 수 없이 난 matheus 라는, 다소 변태적인 아이디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 뒤 프리챌에 가입하면서 천리안을 탈퇴하고 프리챌 아이디를 주 이메일 주소로 썼는데, 그때도 mataeus는 이미 다른 누군가가 사용 중이었다. 그에게 이메일을 보내 “니가 마침내 태어난 우리의 스타를 알기나 하냐”라고 묻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참았다. 대신 내 아들 benji로 아이디를 정했다. 세상에, 누군가가 쓰고 있다. bbenji조차 다른 사람이 쓰고 있는 걸 확인하자 짜증이 났다. 그에게도 역시 “니가 벤지를 알기나 해?”라고 묻고 싶었었다. 결국 난 bbbenji라는 아주 변태적인 아이디를 써야 했고, bbbenji는 나를 대표하는 아이디로 성장했다.
우리 학교 선생들은 대부분 학교에서 부여한 계정(@dankook.ac.kr이나 @dku.edu)를 쓴다. 게다가 다른 사이트들이 하도 많이 생겨, 프리챌을 이메일로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금 난 한달에 3천원씩을 내가며 프리챌 120MB의 용량을 쓰고 있는 중인데, 메일에 큰 불만은 없지만 어쩐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뜬금없는 생각을 한다. @dankook.ac.kr을 쓰는 게 학교에 대한 충성심을 나타내는 것 같아 그걸로 바꿀 생각도 했지만-그럼 자를 때 한번 더 고려하지 않을까?-이메일이라는 건 휴대폰 전화처럼 한번 바꾸는 게 이사가는 것만큼 힘든지라 그냥 쓰고 있다. @chollian.net을 그만둔 뒤에도 사람들이 그 메일로 뭔가를 보내는 바람에 오랜 기간 힘들었던 생각을 하면 바꾸지 않는 게 나을 것 같다. 요즘 추세로 보아 프리챌이 망할지도 모르지만, 그때까지 난 bbbenji@freechal.co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