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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제국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생물의 세계를 탐험하다
칼 짐머 지음, 이석인 옮김 / 궁리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기생충 관련 책은 별로 읽는 사람이 없다. 기생충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니까 안읽고, 모르는 사람은 관심이 없어서 안읽는다. 그래도 몇 안되는 기생충 전공자의 하나인 난 <기생충 제국>을 읽기 전에 이런 마음을 가졌었다. “사실과 다른 얘기만 해봐라!!” 그런데 불행히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 그런 오만함은 눈녹듯이 사라지고, 페이지를 넘길수록 저자에 대한 존경심은 커져만 갔다. 다 읽고 나니 나에게 기생충의 크고도 신비한 세계를 가르쳐 준 저자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다. 발로 전세계를 누비며 기생충에 대해 파헤친 저자 앞에서, 알량한 지식으로 전문가 행세를 했던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
기생충이 가장 진화한 생명체라고 주장하는 저자는 기생충이 숙주에 적응하기도 하지만 숙주를 자기에게 맞게 바꾸기도 한다는 것을 풍부한 증거자료를 통해 얘기한다. 예컨대 촌충에 감염된 물고기는 수면 가까이 떠다니게 되고, 그럼으로써 새에게 잡아먹히기 쉬워지는데, 이건 촌충이 새의 몸 안으로 가기 위해 물고기를 조절한 것이다. 톡소포자충에 걸린 쥐가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도, 간질에 감염된 개미가 풀잎에 올라 소에게 먹히기만을 기다리는 것도 모두 기생충이 숙주를 통제한 예가 될 것이다. 그러고보면 기생충은 참으로 대단한 생명체인 셈이다. “기생충은 생명의 기원 초기부터 숙주가 진화하는 원동력이었을 것이다”는, 다소 허황되게 보이는 말도 믿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물론 기생충은 인류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이긴 하다. 하지만 기생충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세계평화에 기여해 왔다. 에컨대 사람들의 88%가 기생충에 감염된 베네주엘라의 빈민촌엔 알레르기 환자가 없지만, 상류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기생충이 없는 대신 43%가 알레르기 질환을 가졌다. 다시 말해서 기생충이 사라지자 면역계가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게 된 것. 역시 자가면역 질환으로 고치기 힘든 크론병 환자에게 기생충을 먹여 완치에 이르렀다는 대목은 우리가 더 이상 기생충을 박멸의 대상으로 봐야 하는가 회의를 갖게 한다. 기생충을 한 마리 키우면서 살 것인가, 아니면 천식같은 알레르기 질환에 시달릴 것인가.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오랜 기간 고생했던 내게 묻는다면 당연히 전자다.
기생충은 숙주 안에서 살아가야 할 존재, 그래서 기생충은 숙주의 멸종을 원하지 않는다. 대부분이 별 증상 없이 양식만 축내고, 괴롭히더라도 아예 죽이는 일은 드물다. “기생충은 바로 인간들이고 지구는 숙주다”라고 말하는 저자는 이렇게 책을 끝맺는다. “자제할 줄 모르는 기생충은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자신의 숙주마저도 그 대가를 치르게 하고 말 겁니다” 지구를 무한정 파괴하고 있는 인류가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기생충들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이 아닐까. 이 책을 내게 선물해 주신 스타리스카이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