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과 현황을 챙기다가, 본과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상의 토익 성적을 거두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하도 신기해서 “이거 지금 시행되고 있는 거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합격선이 595점-물론 토플, 텝스 등을 봐도 된다-이니 그렇게까지 어려운 건 아니지만, 내 지도학생에게 물어보니 610점을 맞았다고 하고, 595점으로 본과에 진입한 친구도 있다고 한다.
교육 쪽 위원장을 맡고있는 선생은 내게 “기준선이 너무 낮지 않느냐”고 한다. 높이는 건 내 재량이지만 “그래도 현실적인 선으로 올려야 한다”는 게 그의 견해다. 본1 얘들은 이미 합격한 사람의 심리상 “800점으로 올려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그랬다간 본1이 열명도 안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취업시 토익 점수를 따지는 회사가 많아지긴 하지만, 병원에 취업할 때 토익점수를 보는 곳은 아직 없다. 어차피 거의 대부분이 의학도의 길을 걸을텐데, 뭐하러 토익 같은 게 필요한 걸까? 의대에서는 원서를 읽어야 한다고 하지만, 원서를 읽는 능력과 토익은 그렇게까지 비례하지는 않는다. 세계화 시대니 외국학회에도 가야 한다고? 토익을 의무화하지 않던 시절에 의사가 된 사람도 외국 가서 잘만 살았다. 오히려 토익성적이 955점인 난 외국에 가면 거의 말 한마디 못하고, 영어 논문을 읽어도 무슨 소린지 이해를 못하고 있지 않는가.
내가 듣기엔 토익, 토플에 목을 매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일본과 한국 뿐이며, 둘 중에서 따지면 한국이 훨씬 심하다고 한다. 취업이 목전에 닥친 것도 아닌 예과 학생들이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토익을 보는 건 토익이나 텝스를 빌미로 먹고사는 장사치들의 배만 불린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려운 관문을 뚫고 의대에 들어온 얘들이니 조금만 노력한다면 점수를 올려도 대부분 통과할 거다. 하지만 그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럴 시간에 책이라도 한권 읽으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아닐런지.
올리고 낮추는 게 내 재량이라니, 내가 과장으로 있는 2년간은 610점에서 동결이다. 맘 같아선 500점 선으로 내리고 싶지만 참는 거다. 그 후에는 어떻게 하냐고? 어차피 보직을 맡겠다는 사람도 없을테니 내가 한번 더하지 뭐. 4년 후엔...나도 모르겠다....
* 위 글에서 내가 토익을 955점 맞았다는 건 순전히 거짓말입니다. 전 자신이 없어서 토익을 본 적도 없구요, 히어링이 워낙 안좋아 600점도 넘길까 말까겠지요. 음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