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박 얘기는 몇 번 재탕했지만, 그래도 씁니다. 최대한 우려먹는 게 제 특기니까요. 음하하.
나보다 2년 선배는 한때 빠찡고에 심취했었다. 동대문에 있는 병원의 전공의-일명 레지던트-였던 그는 우연히 따라가서 처음 해본 빠찡고에서 100만원짜리를 터뜨리는 행운을 잡는다. 도박에 빠지는 사람은 다 그렇게 해서 중독이 되는 법, 그는 그 후 빠찡고집을 심심치 않게 드나들게 된다. 빠찡고도 실력이 중요한 건지, 아니면 되는 사람만 되는 건지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는 돈을 계속 땄다고 한다. ‘오늘은 안되겠구나’ 라고 생각할 때마다 막판에 잭팟인가가 터졌다나? 재미가 들린 그는 더 열심히 빠찡고집을 다녔고, 처음의 기세와 달리 잃고 갈 때가 많아졌다. 급기야 교수님이 맡긴 연구비로 빠찡고를 하게 되었다. 200만원인가 되는 돈-그때가 90년도니 꽤 큰 돈이었다-을 다 잃어가자 그는 자살을 생각했었단다. ‘다 잃으면 죽자!’ 천만 다행으로 돈 2만원을 남겼을 때 엄청난 게 터지는 바람에 본전을 다 만회할 수 있었다고 한다.
빠찡고집 앞에는 그가 자주 옷을 맡기는 세탁소가 있었다. 주인은 그가 레지던트라는 것도 알고, 그한테서 의학적인 도움도 받고 했었는데, 그날 돌아가는 길에 그를 부르더니 이렇게 말하더란다.
“선생님은 빠찡고 하실 분이 아니신데, 요즘 너무 자주 가시는 것 같습니다....제 기대를 저버리지 마세요”
세탁소집 주인의 말은 그로 하여금 도박을 끊게 만들었고, 그 이후 단 한번도 도박을 한 적이 없단다. 자신의 의지가 강하기도 했겠지만, 세탁소집 주인은 망가질뻔한 그의 생을 다시 돌려줬는지도 모른다.
사람에겐 어느 정도 도박에 대한 열망이 있다. 그게 지나치게 강한 사람이 ‘도벽’으로, 돈이 없으면 돈을 빌려서, 집에 가둬놓으면 어떻게든 포위를 풀고, 손이 잘리면 다른 손으로 도박을 하고, 필연적으로 집안을 말아먹는다. 아무리 봐도 돈을 잃을 게 보이지만, 큰거 한판의 욕망에 눈이 먼 사람에겐 그런 당연한 이치가 파고들 틈이 없다. 정신과에서도 도벽은 고치기가 어려운 질병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도박을 끊을 수 있었던 걸로 보아 아까 그 선배는 ‘도벽’은 아니었을게다.
다행히도 난 도박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젊은 시절 친구들과 밤을 새워가며 포커의 하이로를 친 적도 있고, 한게임이나 프리챌의 포커에 빠져들었던 적도 없진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 한달 이내에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게다가 난 담까지 작아, 누가 1만원을 베팅하기라도 하면 손이 덜덜 떨린다. 술을 먹으면 10만원, 20만원도 표정의 변화 없이 긋는 사람이 포커의 1만원은 왜 그리도 무서워하는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난 잃어봤자 2만원이고 그나마도 개평으로 다 떼워주는 내 친구들과만 포커를 친다. 인터넷 포커? 따봤자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과 친목을 다지는 것도 아닌데 뭐가 재미있담? 하지만 한게임 같은 걸 어쩌다 접속해보면 대낮에도 포커를 치는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도벽이 고치기 어려운 이유는 그 사람의 유전자에 각인된 채 태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암을 예방하기 힘든 것처럼 도벽 역시 발병을 막을 수 없다. 의술이 발달해 웬만한 암은 다 고치지만 도벽은 여전히 고칠 수 없는 병이고, 거기에 더해 집안까지 말아먹으니 도벽이 암보다 훨씬 더 무서운 질환이 아니겠는가. 외모는 좀 떨어지지만 이것저것 따져보면 내가 꽤 잘 태어났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따라 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