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8월 16일(월)

누구와: 모교 사람들과. 참고로 내 지도교수는 중국에 출장갔다가 일요일 밤늦게야 귀국하셨다. 피곤할 법도 한데...

마신 양: 소주 한병하고 세잔 더, 양주, 맥주

감옥에서 나온 전과6범이 바른 일을 하고 살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이전의 조직원들은 손을 털려고 하는 그를 가만 놔두지 않고, 그 역시 범죄 이외에 마땅히 할 수 있는 건 없다. 사회가 전과자인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두말하면 잔소리다. 결국 그는 다시 범죄에 가담하고, 붙잡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TV에서 흔히 나오는 스토리지만, 실제로도 이런 일은 벌어져 왔고,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다.

지난주 초 뜻하는 바가 있어 술을 끊었다. 주말에는 이틀 내내 집구석에서 뒹굴어 '바쁘려니' 하고 전화한 친구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 결과 난 지난 한주간 단 두차례만 술을 마시는 쾌거를 기록했는데, 이는 내가 집계를 시작한 이래 보기드문 경사다. 그 대신 난 열심히 러닝머신을 뛰었고, 월요일 아침 우리 조교로부터 "얼굴이 반쪽이 됐다"는 찬사까지 받았다.

하지만 세상은 날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어제 오후,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교실에서 한명이 그만두고 미국에 가는데 환송회를 한단다. 십초쯤 침묵했다. 솔직히 난 가고싶지 않았다. 거기서 술을 마시기보다는 러닝머신을 6-7킬로쯤 뛰고 저녁을 간단히 먹은 뒤 벤지를 쓰다듬으며 책을 읽고 싶었다. 수틀리면 글도 한 두어편 쓰고 말이다. 하지만 죄자가 다시금 범죄에 몸을 담구듯, 난 십초의 침묵 후 "갈께요"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난 간만에 회랑 스끼다시로 나온 음식들을 포식했고, 술도 무지하게 마셨다. 회 접시를 들어내자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내 앞에 새우껍질이 산을 이루고 있었으니까. 평소 "내 눈이 새우눈이라 새우를 안먹어"라고 하던 나지만, 어제 따라 새우가 땅겼다. 2차에 가서는 콜레스테롤이 많기로 유명한 마른오징어에 섬싱이란 양주와 맥주를 마셨다. 택시비를 빌려서 집에 가니 밤 11시 반, TV로 이원희의 금메달 장면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오늘 아침 한뼘은 더 나와 보이는 내 배를 보면서 난 절규했다. "제발 날 좀 가만 내버려 둬어어어!"

오늘 또 전화가 왔다. 내가 정기적으로 만나는 미녀가 예전처럼 둘(여자) 하나 (나) 모임을 하잔다. 그걸 거절하면 인간인가. 그래서 난 대학로에 왔고, 남는 30분을 이용해 이 글을 쓰고 있다. 삼겹살집에서 만나니 오늘도 한 이삼십점은 먹을테고, 그들의 술실력으로 미루어볼 때 머리가 돌도록 술을 마셔댈 전망이다.

관성이란 이렇듯 무섭다. 지난 3주간 단 한번도 먼저 술마시자고 전화한 적이 없는데, 사람들은 언제나 날 찾는다. 내가 시간도 많고 재벌 2세인데다 술마시는 것 말고는 달리 잘하는 것도 없기 때문에. 게다가 그들이 대는 이유라는 게 어쩜 그렇게 다 절절한지, 거절했다간 내가 나쁜 놈으로 몰릴 것 같다. '보고싶다'거나 '누가 그만둔다' '날이 더운데 맥주나 한잔 하자' 이 얼마나 가슴에 와닿는 이유인가.

수요일 아니면 목요일에 또 한차례의 술약속이 있고, 금토일은 놀러가니 이번주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실 것 같다. 다이어트를 시작하면 회식이 잦듯, 술을 끊으면 술자리가 더 잦아지는 기막힌 역설이란. 하지만 난 안다. 관성이란 건 영원한 게 아니라는 걸. 달리는 기차에서 사뿐히 내려놓은 돌이 영원히 날라가지 못하는 것처럼, 나의 술도 종국에는 빈도가 줄겠지. 날라가는 돌이 멈추는 게 공기의 저항이라면, 나의 술자리를 중단시켜줄 저항은 도대체 뭘까. 돈이 떨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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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4-08-17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술병이 심하게 들어 술만 처다봐도 토악질이 나게 만든다.
2. 밥 대신 술만 먹는다. 물도 술로 대신한다.
3. 온갖 카드와 재무관리에 철저한 미녀의 지배를 받는다
4. 입을 봉한다 ㅠ.ㅠ;
5. 유혹에 저항할 의지력과 정신력을 강하게 한다.

아..술 약속이 있어서 이만...

비로그인 2004-08-17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같은 마누라;;;

starrysky 2004-08-17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의 건강을 위한 스타리의 정성어린 기도. ^-^

하얀마녀 2004-08-17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명...
=3=3=3

nugool 2004-08-17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시원한 호프한잔 하지? " 이 말은 심하게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

다연엉가 2004-08-17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민하지 말고 그냥 이대로 살다가 갑시다!!!!!

tarsta 2004-08-17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성을 막을 방법보다.. 왜 '욕조 가득 맥주를 부어놓고 그 안에 들어가 편안하게 잔다'는 생각이 나는거죠. 깨끗하고 커다란 통에 술을 가득 붓고 그 안에 들어가서, 목욕재개하고 들어가 느긋하게 누워서 쉬다가, 먹다가, 쉬다가, 먹다가.... -0-

stella.K 2004-08-17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mark님과 스타리님 의견에 각각 한표씩 동의합니다. 근데 마태님은 괴로운 심정으로 쓰셨을텐데, 전 왜 이렇게 웃음이 나오는 거죠? 암튼 서서히 끊어 보세요.^^
전 서재질에 관성이 붙은 것 같아요. 뭔가 모를 보이지 않는 손이 저를 자꾸만 컴 앞에 앉게 만드니. 아, 이러면 안되는데...

메시지 2004-08-17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집에서는 술을 잘 안 마시는데 지금은 냉장고에 맥주캔이 있습니다. 밖에서 못마시다보니 점점 집에서라도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쩝 지금도 나가서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고 싶네요.

soyo12 2004-08-18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계속 술마시는 것보다는
중간에 며칠이라도 금주 하시고 러닝머신 뛰시는 것이 몸에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최소한 스트레스는 안받으실꺼라고 생각되네요.
음, 그런데 조금 후에 축구 하는 데 그거 보면서 시원한 맥주 한잔 하면 딱 좋겠네요. ^.~

마태우스 2004-08-18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요님/제가 축구를 안본다는 거 아닙니까.............. 의외죠??
메시지님/소주 열나게 먹고 왔어요.....그러니까 맥주 생각이 아예 안나네요^^
스텔라님/미모임이 탄로난 스텔라님, 님에게도 서재질이 관성이라니 놀랍고 신기해요^^
쥴님/그니까 제가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게 술을 줄이고픈 이유예요. 최근 러닝머신 1년 2개월을 결산했는데, 그걸 하면서도 살이 안빠진 게 술 탓인 것 같거든요.
타스타님/으음, 우유 목욕만 알았지 맥주 목욕은 첨 들어봅니다^^
책울님/그나마 고민 안해 버리면 살이 더 찌지 않을까 한다는... 님도 사진 보니까 고민이 많으실 것 같은데, 우리 같이 해요!
너굴님/글게 말입니다. 너무 매력적이라 숨도 못쉬겠다는...
하얀마녀님/수명이라... 글쎄요, 별로 와닿지 않는데요? 제 모토가 짧고 굵게거든요
스타리님/오오, 님의 기도라면 제가 술을 안마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역시 님은 너무 아름다운 맘을 가진 분이어요.
on your mark님/그, 글쎄요... 마누라라........... 그것도 여우같은...................

털짱 2004-08-18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에 실리콘을 더 넣는다고 해서 마태님의 매력이 줄어들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만, 전 마태님이 자신의 배를 웃으며 바라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제부터 한두개쯤 실리콘을 뺀다해도 반대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