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허드렛일(1)이 예상치 못한 반향을 얻은 듯하다.
"그렇게 힘들게 사는 줄 몰랐다"며 내 손을 잡고 눈물을 적시는 이도 있었고,
여기저기서 격려메일이 쇄도했다.
하지만 어느 직업에나 애환은 있기 마련이고, 사실 이 정도 일하는 건
다른 직종도 마찬가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고 넘어가려다 결국 '허드렛일(2)'를 쓰게 됐다.
멧돼지 고기를 채썰고, 하루 수백킬로를 운전하는 거야 어쩔 수 없다해도
오늘은 몇시간 동안 인간펌프가 됐으니 말이다.
어제 수업을 마치고 전라남도 곡성에 있는 철기시대 유적지로 출발했다.
근처에서 1박을 하고 오늘 아침 8시경 해당 장소로 가보니
구덩이마다 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주말에 비가 많이 온 여파로 물이 빠지지 않은 것.
이 상태에서는 샘플채취가 불가능한지라
바가지로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몸이 힘들어서 그런지 표정도 무섭다...저게 나야? (셀카임)
그냥 물만 퍼낸 게 아니라 물이 빠져나가도록 수로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평소 안하던 삽질도 했다.
내가 만든 수로로 물이 빠져나가는 장면. 이 광경은 참 아름다웠다.
그래도 중요한 건 바가지로 물을 퍼내는 거, 이것만 몇시간을 했는지 모른다.
이렇게 퍼낸 뒤 흙을 와장창 제거하고 그 당시 토양층을 따내서 튜브에 담았는데
몸이 힘들었던만큼 기생충알도 와장창 나와줬으면 좋겠다.
물을 제거한 뒤 이렇게 벽면에 튜브를 꽂아 토양샘플을 채취한다.
많은 분들이 지난번 글을 읽고 "기생충알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댓글을 달아 주셨다.
어느 분은 기생충알을 뿌려 주겠다고 하기도 했는데 (몸에 지니고 계신 걸까?)
이런 격려의 댓글에 어찌나 가슴이 뭉클했는지!
그런 기대가 허황되지 않아
지난번에 전남 장흥에서 채취한 샘플에서 드디어 기생충알이 나왔다.
이건 정말 축하할 일로, 11월 말의 결과보고서 때 최소한 한마디는 할 수 있게 됐다.
나온 기생충은 편충.
원래 편충은 참 아름다운 알을 낳아서
"나도 한번 걸려보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게 하는 기생충이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니만큼 고고학적 유적에서 나온 건 모양이 많이 변하기 마련으로
20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이번 편충알은 다음과 같다.

속이 텅 비어있고 마개도 빠진 모습인데,
그래도 내게는 너무도 이쁜, 올해 나온 것 중 가장 사랑스러운 기생충알이다.
긴 여정을 마치고 집에 온 지금,
300킬로 가까운 운전에 두세시간 가량의 물퍼내기, 게다가 삽질까지 한 터라
피로가 도져 멀미가 날 정도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난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교수인 것 같다.
모종의 할 일이 남아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다가 이 글을 쓰는데
위에서 다른 직종도 다 나만큼 힘들지 않을까 싶다는 말을 했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내가 주위 사람들 중엔 제일 힘들게 일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