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7월 29일(목)

누구랑: 중1 때 같은반이었던 친구와

마신 양: 소주 1병씩--> 맥주--> 걔네집에서 양주 한잔, 맛이 거의 갔음.


1) P

1년 선배인 선생님과 기차를 타고 서울로 왔다. 이십년 전 그는 사회주의자였다. 자본론을 읽고, 당시 유행했던 김영환의 ‘강철서신’을 탐독했던 P는 시위가 있을 때면 언제나 앞장을 섰다. 당시 교무부학장을 하던 선생님의 말씀이다.

“쟤는 정말 골수였어. 농성을 할 때 다들 앉아서 하는데, 저 친구는 무릎을 꿇고 하루종일 버티더라고”

민중당의 이재오가 한나라당으로 가서 극우의 기수가 되고, 강철서신의 김영환이 “북한민주화론”을 펴며 조갑제의 귀여움을 받는 것처럼, 극좌에서 극우로 공간이동을 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P 역시 그랬다. 그는 지금 87년 6월 항쟁이 북한의 사주에 의한 것으로 믿으며, 김대중과 노무현의 집권으로 국가 정체성이 흔들린다고 생각한다. 2000년 총선 직전 남북정상회담이 발표된 것에 놀라 왕십리에서 분당까지 달려가 기호1번을 찍었고, 요즘은 TV에서 노무현이 나올 때마다 짜증이 난단다. "대통령의 그릇이 못돼!“라고 거품을 무는 그에게 말했다. 그렇게 무식한 김영삼도 대통령을 했지 않냐고. 그의 대답이다. ”그가 무식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객관성이 결여된 주장이다“ 그가 몸바쳐 싸웠던 전두환도 노무현보다 나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걸까. 전세긴 하지만 55평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빨리 돈을 벌어 집을 살 꿈’에 젖어 있는, 극우적인 주장을 수시로 해대는 그를 보면서 변절이란 주위 사람을 슬프게 하는구나,는 생각을 했다.


2) K

내 중학교 동창인 K도 그 시절 사회주의자였다. 그의 출신고교에서는 “K가 오면 일체 응답하지 말라”고 학생들에게 당부했을 정도여서, 대학 캠퍼스에서 그와 마주쳤을 때 난 반가움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는 게 솔직한 심경이었다. 그는 졸업 후에도 운동을 했고, 지금도 사회주의에 대한 열망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그런 노력이“얼마나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것인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말했다. “정말 내 힘이 필요했던 그 시절에 한 게 아무것도 없어서 미안하고, 사회에 대해 부채감 같은 것도 있다”고. “나도 너처럼 투쟁의 추억이 있으면 좋겠다”고. 그는 웃으며 대답한다. “넌 그대신 다른 거 했잖아? 그것도 충분히  보람있는 거야” 글쎄다. 내가 했던 다른 건 내가 잘먹고 잘살기 위한 공부였는데...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이 지난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에 투표를 했다니 그 역시 변절한 건 맞다. 그래도 앞서의 변절과 달리 K의 변절은 날 별로 슬프게 하지 못했다 (왜 그런 걸까?). 중1 때 무척 정의롭고 바른 말을 잘하던 학생으로 기억하는 K는 여전히 유쾌했고 무척이나 여유로워 보였다. 7 살배기 아들과 둘이서 “아주 잘 살고 있다”는 그, 절반이 욕으로 점철된 그의 말을 들으면서도 난 기분이 좋기만 했다. 집이 가까우니 이따금씩 술을 같이 하자는 K, 아주 좋은 술친구가 생긴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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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gool 2004-07-31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술친구 한명이 또 느셨군요... ^^;;;

mannerist 2004-07-31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만 하고 "공부"를 안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핫핫핫... -_-;;;;


미완성 2004-07-31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쾌하게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건 덩말 좋은 일이어요.
K님과의 우정이 부디 끝까지 아름답게 이어지길 바랄께요*^^*

아아, 한많은 이 세상, 느는 건 술이요, 빚이로다-_-;;;

비로그인 2004-07-31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사실 예전에 사회주의자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냐, 며 자신의 과거 운동행적을 부정하고 변론하는 사람들 좀 못 마땅하더라구요. 잠깐 기류에 휩쓸리다 다시 권력을 쥐면서 더 나빠지는 사람들, 텔레비전에서 많이 봤어요. 운동권에 몸담았던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은 더 가관이고 과거의 행적을 마치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니며 정의를 위해 싸운 기업인, 이라는 이미지용으로 활용하는 것도 탐탁치 않고요. 그런 사람들 볼 때마다 말없이 싸우다 생을 마치신 이름없는 분들이 문득 떠오르게 되더라고요. (수정했떠요..)

하얀마녀 2004-07-31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보니 저도 기분 좋아지네요. 축하드립니다. ^^

starrysky 2004-07-31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봤을 때부터 맘이 덜컹했는데 역시 이런 내용이었군요..
사실 저도 P씨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뭐라 변명할 말이.. 저로서는 참 어려운 문제였고 힘들게 결정한 길이지만 그래도 더 이상은 생각 말자.. 싶었는데 알라딘에 들어와서 여전히 치열하게 투쟁하시는 분들 뵈면서 많이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반성만..이라는 게 더 큰 문제지만요. 이런 건 사실 평생의 화두여야 하는데 너무 일찍 잊어버리려 한 게 잘못이겠지요. 하아... 결론적으로는,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원)

마태우스 2004-07-31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타리님/어머나, 님에게도 그런 과거가... 하여간 님과 제가 친구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요, 님은 충분히 멋지십니다.
하얀마녀님/술친구가 생겼다는 건 축하할 일이지만, 그놈이 워낙 술 고래라서 말이죠... 또 마실 생각을 하니 걱정이...
복돌이님/님의 코멘트가 참으로 반갑습니다. 복돌님은 참으로 멋지십니다.
멍든사과님/우리의 우정도 길게 가기를 기대할께요^^
매너리스트님/오랜만이어요! 사실 저 님의 코멘트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요, 해석 좀 해주세요!
너굴님/하하, 친구가 는다는 건 좋은 일이지요.
파란여우님/아, 언제나 1등으로 코멘트를 날려주시는 여우님께 늘 감사드려요.

메시지 2004-07-31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원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삶과 개인의 행복을 위한 삶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분들을 가끔 뵙게됩니다. 아직도 그 사이에서 갈등한다는 것이 어찌보면 사회부적응자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때로 순수의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과 저의 태도는 과연 어떠한지에대해서는 저도 애써 외면해왔습니다. 전에 열심히 하겠다고 들어갔다가 그냥 도망쳐나온 사회단체가 생각납니다. 가끔 그분들의 활동을 뉴스나 신문을 통해 접할때면 부끄럽기도 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있다고 변명이라도 하고싶기도 합니다.

mannerist 2004-07-31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자 그대로입니다. 선배들 따라 돌 던지는 "운동"나가는 데는 커리때 나오는 유인물 훓어보는걸로도 충분하지만 일관되고 논리적인 세계관을 갖기 위해서는 꽤나 처절한 공부가 필요한 것 같더군요. 그양반이 "자본"을 읽었다고 하셨는데, 제가 알기로, 자본론은 독일 관념론과 고전학파 경제학을 아우르는 지식이 없다면 제대로 된 이해가 불가능에 가까운 책입니다. 이게 선행되지 않고 읽는다면 수박 겉핧기에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중권씨가 이를 코믹하게 표현한 적이 있지요: "운동권 애들 놀리는 재미에 살았다." 몸으로나 마음으로나. 다른 설명도 가능하겠지요. 평균 이상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 살면서, 정신적으로 빨갱이 이론에 몸 담을 순 없으니까, '사상을 전환'하는 게 아닐까 싶네요. 뭐 그렇게 사는 인간들에게 별 불만은 없지만, 그런 주제에 세상 밖으로 입 옹알거리는 화상들은 입안에 XXX을 X 넣고 XXXX를 XX겠지요. ㅎㅎㅎ

언젠가 "자본"에 도전해봐야 할 텐데요. -_-;;;

soyo12 2004-07-31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생각도 해요.
스무살에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심지어 세상도 바꿀 수 있다고,
하지만 사회에 나와서는 개인 하나하나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본이 아니게 변절을 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거나 자랑한다면
그건 자기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경험은 자기 자신의 경험은 부정이 될 수도 그리고 자랑스럽운 대상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인간은 생각하지 않나요?
그 때는 정말 부끄러웠다. 조금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는데.......
과거를 자랑하는 사람이 더욱 다른 이에게 잔인할 수도 자기 자신을 왜곡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자랑스러운 과거를 가졌는데 뭐가 눈에 뵈겠어요^.~

sweetrain 2004-08-01 0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사람은 쉽게 변하기도 하고 또..쉽게 변하지 않기도 한다는걸 느낍니다. 저도 스무살, 스물한살 시절을 길에서 시위하며 보냈습니다. 이래저래 경찰서장인 외삼촌이 저때문에 불편해하셨을 만큼, 서대문 경찰서 유치장에서 외삼촌과 마주하다보면 참 민망했었는데..그런데 불과 1년이 채 안되어 그냥저냥 평범하게 그네들과 상관없이 살고 있네요. 어쩌면...참 슬픈 이야기이지만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sweetmagic 2004-08-02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친구분들이 참 많으시네요... ( 언제 이렇게 많은 글을 쓰셨담.. 헥헥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