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친구 은찬이는 고향인 대구에 묻혔다. 이승의 고통을 뒤로한 채 편안히 쉬면 좋겠지만, 그럴 것 같진 않다. 아들이 잘 크는지, 친구들은 잘 지내는지가 궁금해 한동안 이승에 머물러 있지 않을까?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일년이 넘도록 내 꿈에 아버님이 나타나시자, 어머님은 안좋은 낯빛으로 말씀하셨다. "아직 여길 못떠나신 거야. 빨리 하늘 나라에 가서 편안히 쉬셔야 할텐데" 엄마 말씀이 맞다면 은찬이의 가족들은 한동안 꿈에서 그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 절
바지를 입을 때는 주로 허리 사이즈를 묻는다. 사람들 중에는 당장 말하기가 부끄러워서, 혹은 살을 뺄 것을 가정하고 꽉 쬐는 바지를 사기도 하지만, 한두번 실패해보면 안다. 그게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나도 무리하게 32를 샀다가 한번도 못입고 버린 게 두벌이나 된다. 바지에서 허리가 중요하긴 하지만, 다른 게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히프 사이즈나 허벅지 두께가 바지 치수를 좌우할 때가 있다. 예컨대 책울타리님의 부군께서는 허리는 34에 불과하지만 허벅지가 굵으셔서 할수없이 36을 입는단다. 생각해보니 나도 그렇다. 히프가 유난히 큰 나는 허리에 맞는 바지를 사면 오래 가지 못한다. 바닥에 뭐가 떨어졌을 때 그걸 줏으려다 바지 뒤가 반으로 쩍 갈라진 적이 세 번이나 있다.
그래서 나에게 절은 위험하다. 절이란 히프를 가장 두두러지게 내미는, 다시 말해서 바지 뒤가 최대한 팽창하는 자세니까. 게다가 여름 바지라 천도 얇다. 그러니 내가 상가집에 가서 맘놓고 절을 했다가는, 첫 번째는 넘긴다 해도 두 번째 절할 때는 기어이 사고를 칠거다. 신성한 상가집이 웃음바다가 될테고, 그런 일은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될 것이다. 내가 맘놓고 절을 하지 못하고 늘 하다만 듯 절을 하는 건 다 그 때문이다.
영정 앞에서 두 번 절을 하고난 뒤, 상주와 빈객은 맞절을 한다. 3년 전 내가 상주였을 때, 빈객과 하두 절을 많이 하니까 폼만 잡으면 저절로 절이 나왔다. 그때의 경험담을 난 이렇게 표현했다.
[상주와 빈객이 인사를 나눌 때, 절대신 반절을 하는 분도 계십니다. 절인데 반절로 착각한 경우는 자연스럽게 자세를 고쳐버리면 되지만, 맞절인 줄로 착각하다 알고보니 반절일 때는 좀 민망합니다. 한번 해보세요. 무지 웃깁니다.....]
상대는 인사만 하는데 난 쓰러지듯 바닥에 넙쩍 엎드린 자세, 슬픈 와중에도 웃음이 나왔다.
2. 육개장
상가집의 육개장은 대충 따져서 한그릇에 6천원 정도다. 육개장 뿐 아니라 음식들이 다 비싸다. 대형병원에서 장례식장을 크게 짓는 것도 다 남는 게 많아서 그런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빈객을 적당히 대접할 수는 없으니 음식이 부족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대개 상주가 계산서에 싸인을 하는데, 나중이 되니까 돈의 개념이 없어져 버렸다. 음식값이 이것저것 따져보니 몇백만원이 넘는다. 그러니 제수씨가 날더러 "아주버니 친구분 중 한분이 육개장 세그릇 드셨어요"라고 볼멘소리를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기억이 나서, 난 장례식장에 갈 때는 근처에서 밥을 먹고 간다. 엊그제도 짜장면을 한그릇 먹고 갔고, 육개장을 안먹었다. 어떤 친구가 두그릇을 먹기에 이런 말까지 해줬다. 이거 한그릇에 6천원이라고. 그친구, 매우 놀란다. "정말? 그럼 안먹을 걸..." 혹자는 그런다. "상가집에서는 잘 먹어 주는 게 예의라고" 잘 먹고 오래 있어주면 고맙긴 하지만, 안먹고 오래 있으면 더 좋은 게 아닐까? 문제는 내가 육개장만 안먹었을 뿐이라는 거다. 나와 내 친구들은 소주에 캔맥주를 엄청나게 먹었으며, 상 위의 반찬들을 두 번이나 갈았다. 육개장보다 사실 그런 것들이 훨씬 비싼데 말이다. 부의금도 안받았으니 이중으로 미안하다.
3. 여동생
상가집과 무관하게 여동생 얘기를 안할 수가 없다. 매우 깜찍한 짓을 했기 때문이다. 어제 여동생 집에 갔던 어머니가 목걸이를 하나 얻어가지고 왔다. 여동생이 줬단다. 그럴 때도 있구나 싶었는데, 잠시 후 어머니가 목걸이를 풀려고 하는데 안풀린다. 내가 아무리 해봐도 안되기에 여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그거 원래 잘 안풀려. 나도 한달 동안 할수없이 하고 있었어" 그렇다. 여동생은 고장난 목걸이를 준 거다. 도대체 그게 무슨 심보일까? 간만에 운동을 하려던 나는 다 때려치우고 옷핀과 뻰지를 동원해 가며 십여분동안 끙끙댔고, 결국 목걸이를 풀었다. 그 깜찍한 동생을 어떡하면 좋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