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강수연을 좋아하기 시작한 건 우리 모두 고 1이었을 때부터다. 아역 스타였던 강수연을 기억하는 내게 성숙하게 변해버린 그녀의 모습은 넋을 잃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상해 씨와 진행하던 <희한한 세상>이란 프로를 보고나서였는데, 별로 재미도 없던 그 프로를 매주 앉아서 보던 기억이 난다. 그게 얼마나 재미가 없었냐면....
[강수연이 겁나게 오래 전화를 하고 있다.
강수연; 네, 뭐 그럴 수도 있지요.... (전화를 끊는다)
이상해: 너 어디다 그렇게 오래 전화를 하냐?
강수연: 잘못 걸린 전화예요
이상해: 뭐? 잘못 걸린 전화를 30분이나 해???]
하지만 중요한 건 내용이 아니었고, 난 그저 강수연을 일주에 한번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내가 강수연의 사진을 모으기 시작한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 당시 이런 일이 있었다. 인간성이 나빴던 내 짝이 내가 노상 들여다보던 강수연 사진에 콧수염을 그려 놓은 것. 속이 상한 내가 그 사진을 찢으면서 눈물을 흘리자, 짝이 이랬다. "너 진짜 강수연 좋아하는구나!!"
그렇게, 세상은 날 가만 놔두지 않았다. 같은 반 애들은 물론 우리 누나, 어머니까지 나서서 날 설득했다. "강수연이 풍문여고 야간인 거 알아? 거기서 깡패래!"
"걔가 내가 아는 애랑 같은 학교 다니는데, 술집 나간데!"
그러면서 그들은 당시 강수연의 라이벌이던 조용원을 찬양했다.
"조용원이 훨씬 더 이쁘고, 공부도 잘해!"
내가 조용원을 얼마나 미워했을지 짐작이 가는가? 나중에 그녀가 교통사고로 연기자 인생을 마감하게 되었을 때, 난 그게 마치 나 때문에 그런 것인 양 마음이 아파했었다.
고2 때부터는 TV에서 강수연이 주연으로 나온, <고교생 일기>라는 하이틴 드라마를 매일같이 했다. 지금은 유명인이 된 이금림 씨가 극본을 했는데, 최화정 씨가 강수연의 언니로, 이청이 상대역으로 나왔다. 당시 멤버들 중 지금도 유명한 사람은 안문숙인데, 그때는 매우 청순한 여고생 역이었다. 난 그 드라마가 시작할 때쯤 집에 와서 저녁을 먹었고, 다 보고 나서는 아쉬움을 달래며 독서실로 향하곤 했었다.
당시엔 천마리 학을 접는 게 유행을 했다. 당시 인기 가수였던 전영록이 "천번을 접어야만 학이 되는 사연이..."라는 가사의 <종이학>을 부른 게 그런 유행을 만들었는진 모르겠다. 난 알로에 껌의 금빛 껍질로 학을 접기 시작했는데, 난 껌을 잘 안씹어서 종이만 갖고 껌은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물론 주위 사람들은 나중에 알로에 껌만 보면 멀미를 했다. 난 하루에 몇 마리를 접었는지 그래프를 그려가면서 학을 접었고, 그런 노력이 결실을 봐서 천마리 학을 완성했다. 그 전에도 팬레터를 보냈지만, 학이 만들어지자 난 열심히 편지를 써댔다. 별 내용은 없다. 학이 완성되었으니 주겠다고. 하지만 전의 편지에도 그랬듯이 강수연은 끝끝내 답장을 주지 않았다. 학은 내 방에서,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옥상에서 썩다가, 아버지에 의해 잔인하게 버려졌다. 그 전에 친구로부터 비싼 값에 그 학을 사겠다는 제의가 있었지만, 난 응하지 않았다.
고교를 졸업한 뒤 난 강수연이 야한 영화에 나올까봐 걱정을 했다. 예술을 이해하지 못했던 시절이라 진짜로 옷을 벗고 하는 줄 알았던 탓이다. 초기작인 <W의 비극>은 괜찮았다(베드신이 없었다는 뜻). 하지만 그 다음 영화가 <씨받이>였다. 그때 내 생각, '아, 얘는 이렇게 포르노 배우로 가는구나!'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그 영화는 베니스 영화제의 영광을 그녀에게 안겨줬고, 몇 번의 상을 더 타면서 강수연은 월드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내가 그걸 좋아했을까. 잘 모르겠다. 마냥 좋아하지만은 않았을 거다. 유명한 배우가 되면서부터 지극히 평범한 남정네인 나와 맺어질 확률은 사라졌으니까. 꿈을 접은 나는 그녀가 나온 영화들을 열심히 봐주면서 팬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한때 오비에서 <ICE>라는 맛없는 맥주를 출시한 적이 있다. 그때 강수연은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4억의 몸값을 챙겼는데, 그때 내가 그 맥주를 열심히 먹어주기도 했다.
나보다 한 살이 많으니 그녀도 이제 서른 아홉, 하지만 데뷔 때와 비슷하게 여전히 이쁘다. 토니 박이라는 인간과 사귄다는 설이 보도되기도 했지만, 그녀는 아직도 결혼을 안하고 있다. 혼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즐거워하곤 한다. 다음과 같은 생각이다. 그녀가 결혼 안하는 이유가 혹시 나 때문? 혹시 아는가. 내가 보낸 팬레터를 간직하고 있다가, <TV는 사랑을 싣고>같은 데 나가 "학을 접었던 소년을 찾습니다"라고 할지. 호호, 착각은 자유고, 돈이 안든다. 질문 한가지. "강수연이 결혼하자면 할래?" 그럴 리도 없겠지만, 그런다 해도 선뜻 '그럽시다!'라고 할지 의문이다. 그런 꿈을 접은지가 너무 오래고, 더 결정적인 이유로, 그녀보다 더 젊고 이쁜 여자들이 주위에 많으니까^^
* 참, 강수연이 뜨고 난 뒤 친구 어머니들은 날더러 쪽집게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