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7월 7일(수)
누구와?: 친구들과, 소주를 급히 마셨다.
지난 토요일, 다른 약속이 있어서 친구들 모임에 안갔다. 내가 아는 중 베스트 3 안에 드는 동창 여자애도 나오는 모임이었기에 더더욱 미안했는데, 그날 저녁 때 쯤 그녀한테서 전화가 왔다. 수요일날 뮤지컬 표가 4장 있는데, 2대 2로 같이 가자고. 그날 못간 게 미안했던 터라 일단 간다고 했다. 그리고는 후회했다. 난 뮤지컬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학생 때 성악과 애를 사귄 적이 있다. 절세의 미모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매력이 넘치는 여자였는데, 그녀 덕분에 난 팔자에 없는 오페라-뮤지컬과 오페라를 난 구별하지 못한다-를 몇편 봤다. 별 재미도 없으면서 자리를 지켰고,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닌, 지극히 형식적인 박수를 쳐댔다. 그저 오페라가 끝난 후 무대 뒤로 가서 내가 공연 선물로 주곤 했던 리치몬드 제과점의 쵸코렛을 전달하는 게 내 유일한 목적이었을 뿐이다. 그녀와 헤어졌을 때, 난 스스로를 이렇게 위로했다. "휴, 하마터면 평생 오페라만 따라다닐 뻔했네"
수요일날 약속장소로 가면서도 난 담담했다. 아니 싫었다. 여덟시간의 소방교육을 받고 난 뒤라 피곤하기 짝이 까. 어떻게 또 두시간을 앉아 있나 하는 마음, 나 좋으라고 가는 게 아니라 그녀를 위해서 간다는 시혜적인 입장에서 난 광화문에 갔다. 근데 젠장, 시작부터 너무 재미있더니, 끝까지 재미있다. 배우들이 추는 아름다운 탭댄스, 간간이 나오는 폭소, 남자배우들의 멋진 춤들, 그 공연은 내가 가장 많이, 그리고 진심으로 박수를 친 몇 안되는 공연이었다. 그러고보니 내가 뮤지컬 장르를 꼭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21세기 들어서 내가 가장 재미있게 봤던 영화가 다름아닌 뮤지컬 영화-<시카코>-가 아닌가. <시카코>를 보면서 뮤지컬에 눈을 떴다면, 어제 본 <42nd street>으로 인해 뮤지컬은 내가 좋아하는 장르로 급부상한 듯하다. 이 뮤지컬은 오랜 기간 잠자고 있던 뮤지컬에의 욕구에 불을 붙여서, 뮤지컬을 보는 내내 난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흔들고, 흥에 겨워 어깨를 움직이며, 발을 굴렀다.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은, 배우들의 다리 길이가 그다지 길지 않아, 다리를 들어올릴 때 외국 배우들에 비해 그렇게까지 멋있지는 않았다는 것.
이소룡 영화를 보고 누군가와 싸움을 하고 싶다든지 하는 식으로 극장을 나서서도 계속 영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건 덜성숙한 사람의 행동 양식이다. 어제 난 극장 밖에 나가서 탭 댄스를 추면서 술자리로 이동했으며, 노래를 부르며 애들과 대화를 했다. 역시나 난 미성숙한 인간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그날 익힌 탭댄스 실력을 보여주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