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수께끼님의 글이다.
[촌로가 칭하는 "아가씨...아줌마"라는 용어가 언어적 성폭력이라며 철수하고야만 서울대 농활팀의 결정을 보며 씁쓸함을 감출수 없습니다...만약, 서울대생들이 촌로들의 사고를 자신의 사고에 맞춰달라고 하였다면 이것은 농활이 아니라 대접받으러 간 격입니다.... 겨우 호칭문제로 그대들은 떠나왔지만 그대들의 잘못된 판단은 단지 그대들이 서울대를 다닌다는 이유만으로도 신문의 기사거리에 충분히 오르내리라는것도 염두에 두게나....]
이 글에 나타난 것처럼 단지 호칭만의 문제였다면, 나도 여론의 80%가 비난하는 서울대 측의 행위를 옹호하지 않았을게다. 하지만 난 왜 사람들이 이 대목에는 애써 눈을 감는지 이해할 수 없다. 서울대 총학생회의 발표다. "신체적 접촉이 있었다는 보고도 올라왔다"
신체적 접촉이 있었다면 이건 분명한 성희롱이며, 농활을 계속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계기는 되지 않을까? 다시 수수께끼님의 말이다.
[봉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상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사태는 그런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봉사하는 사람이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은 전적으로 옳다. 하지만 그 불편이란 좋지 않은 잠자리나 에어콘이 없는 환경같은 것에 국한되는 것이지, 성희롱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난 사람들이 문제의 본질을 비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은 약자인 여자가 지배계급인 남성에게 성희롱을 당해서 촉발된 것이지, 여자가 어느 대학을 다니는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여자가 소위 말하는 이류대학이었다면 농활 철수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게 되는가? 재벌이 200만원을 훔쳐간 도둑을 고소했다면, 그 정도 돈을 가지고 난리를 치냐고 재벌을 욕할 셈인가. 난 서울대 폐지론자며, 서울대가 국가에 이바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해악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울대가 평소 잘못이 많은 것 때문에 이 사건을 보는 관점이 왜곡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련다. 기사에서, 다른 대학 같으면 이니셜로 표기될 만한 성희롱 사건이 굳이 '서울대'로 표기된 것은 잘난체 하는 애들이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난리를 친다는 기자의 관점이 나타난 것이리라.
인간의 건전한 이성을 믿는 나로서는 그들이 '아가씨'라는 호칭 때문에만 철수했다고 보지 않는다. 어느 분이 한겨레에 쓴 글에 따르면, 한국 시골에 만연한 노인들에 의한 유아 성희롱과 폭행에 대한 르포가 몇 년 전 주간지에 실렸다고 한다. [이웃을 믿고 맏기며 서로 개방적으로 지내는 시골에서 어린이들이 자주 노인들의 성희롱과 폭행 대상이 된다는 거였습니다. 보건소에 이런 아이들이 꽤 자주 온답니다. 보수적인 문화와 노인이란 이유로 신고 않고 그냥 넘어가 버리는 경우도 많다는 거죠]
모르긴 해도, 농활 철수는 그들에게 할아버지들이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성희롱이 잘못된 것임을, 저항해야 할 일임을 농촌 사람들에게 가르쳐 줬을거다. 여성이 성희롱의 대상이 아니어야 하는 게 어디 도시만의 일인가? 성희롱을 당한 여학생은 서울대생이기 전에 여자고, 우리의 딸일 수 있다. 자신의 딸이 농활에 갔다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그래도 "서울대생이 싸가지 없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경우를 바꾸어, 남학생 하나가 농활을 갔다가 게이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했을 때, 그때도 우리가 이처럼 서울대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을까?
이 사건에 대해 파란여우님은 매우 중립적인 입장에서 글을 쓰셨다. 파란여우님의 글에는 대체로 수긍하지만, 다음 대목만은 동의하기가 힘들다.
[만약에 어떤 불순한 의도를 내포한 '신체적 접촉'이 있었다는 확실한 정황과 근거가 있다면 그 수위가 어느정도인가를 불문하고 그건 분명 성폭력에 해당된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재고해 보자면 학생들이 주장하는 '신체적 접촉'이란 것이 동생이나 객지로 나갔다 돌아온 자녀를 대하는 가벼운 수준의 접촉이었다면 이 문제를 과연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그 여학생은 할아버지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과, '가벼운 수준'이라는 것도 사람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라는 거다. 엉덩이를 만져도 가만히 있는 여자도 있을 수 있고, 손만 잡혀도 수치심을 느끼는 여자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다시말해 성희롱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피해 당사자가 느끼는 감정이며, 제3자인 우리가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라고 말할 수 없다는 거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있다면 남들이 보기에 별거 아닌 말에 과잉반응을 보일 수가 있는 것처럼, 우리가 보기에 별 거 아닌 신체접촉도 그녀에게 성희롱일 수 있다. 다시금 말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남자 vs 여자이지, 남자가 농촌에 살며 할아버지인 것이나, 여자가 서울대를 다닌다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