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극악구충이라는 게 있다. '극'은 가시를 뜻하고, '악'은 '턱'이란 소리, 그러니까 가시와 턱을 가진 벌레라는 말이다. 모대학의 손교수는 중국에서 수입한 미꾸라지에서 이 기생충의 유충을 발견했고, 그냥 날로 먹으면 걸릴 수도 있다는 내용을 학회에서 발표했다. 내가 조교를 하던 시절인데, 다음날 모교로 전화가 왔다.
기자: 유극악구충이라면 아주 악독한 기생충이란 소리냐
H: 아니다. 그건 턱을 뜻하는 말로, 악하다는 게 아니다.
기자: 인간이 걸릴 확률은 얼마나 되냐.
H: 난 모르고, 모 대학의 손교수에게 물어보라.

막상 기사화가 된 걸 보고 우리는 모두 실소했다. [이 기생충은 이름에서 보듯 악성이므로.... ] 학회에서 발표를 한 손교수의 이름은 들어가있지 않았다.

96년 내가 정말 말도 안되는 책을 냈을 때, 모 스포츠신문 기자가 날 인터뷰했다.
기자: 그러니까 국립의료원에서 근무하십니까?
나: 국립의료원이 아니라 국립보건원입니다. 전자는 병원이고 후자는 연구소죠.
기자: 피씨통신도 하시나요?
나: 전 컴맹입니다. 그런 거 못합니다.
기사는 어떻게 나왔을까? [서민 씨는 국립의료원에서 의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피씨 통신에서도 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엊그제 성형외과를 하는 친구를 만나 술을 마셨다. 그-알파라고 한다-는 개업을 하기 전 모 대학에서 1년간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노조가 파업을 했단다.
"윗 선생님들이 '니가 제일 젊으니까 대표로 나가서 협상을 해라'고 떠미는거야. 그래서 할 수 없이 나갔지"
그런 데 경험이 전혀 없는 그가 어떤 소리를 했는지 짐작하기 어렵진 않다. 그 이후 노조는 "알파 교수 물러가라!"를 외치기 시작했고, 병원 복도, 진료실, 바닥 등 곳곳에다 알파를 규탄하는 대자보를 붙였다고 한다. 성형외과는 대체로 개업을 해야 하고, 그 역시 개업할 생각에 여기저기 터를 알아보고 있던 시절이었기에, 알파는 잘됐다는 마음으로 사직을 했다. 얼마 후 조선일보 기자가 그를 찾아왔다.

기자: 왜 그만두셨죠?
알파: 그냥 개업하려구요.
기자: 혹시 노조 파업 때문에 그만두신 건 아닌가요?
알파: 그건 절대 아닙니다. 그냥 개업을 하려고 생각 중이었어요.

신문엔 어떻게 났을까. [노조 파업 너무하네...젊은 교수 격분해 사직!]
그러니까 그는 노조에 적대적인 조선일보의 '노조때리기'에 이용된 셈이다. 기사가 나간 후 그는 여러 친구들로부터 격려, 혹은 위로의 전화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런 식으로 하려면 인터뷰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 기자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기사를 미리 다 써놓고 그저 구색을 맞추기 위해 인터뷰를 하는 경우가 흔한 일인 것 같다. 꼭...그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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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2004-06-25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없음에 웃어버렸습니다. 정말 너무들 하네요. 저도 가끔 기자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주로 전부다 모아다가 우리말 교육과 논리교육을 새로시켜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형식만 문제인줄 알았더니 진실성이 결여된 글이 가장 문제있는 글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내용도 문제네요.

sweetmagic 2004-06-25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제가 우리나라 언론을 다 믿지 못하고 비싼돈 내면서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외신을 뒤진다니깐요. 근데 이나라 저나라 별 수 없더군요. 모 직업 비리로 떠들썩 할때 모 방송국에서 저희 아빠 인터뷰 할 때도 그랬어요. 안그래도 말씀도 잘 못하시는데 필름 중간 중간을 썰어 내니 아주 딴판 인터부가 되더군요, 편집 기술 대단하데요. 따발총으로 으다다다 쉴새 없이 떠드는 재주 없고는 인터뷰하면 안 되겠더군요. 그러니 님도 그러려니 하세요. 그래도 그 많은 기자 중에 한명이라도 양심에 찔려하며 기사 쓰는 사람 있겠죠. 그럼 된거 아닙니까 ? ^^

stella.K 2004-06-25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우습네요. 웃을 일이 아닌데...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얼마 전 기자의 잘못된 보도 때문에 한 마을이 초토화된 사건이 있었더라구요.
그 마을은 폐광산을 끼고 있었는데, 그 광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마을을 오염시켰다고 보도했죠. 그리고 다리 저는 애매한 어르신 한분을 붙잡아 놓고, 그가 다리를 절게된 이유가 폐광산에서 나온 오염된 물을 먹고 그렇게 됐다는 겁니다. 자세히 알아 본즉, 그 사람은 원래 무슨 사고로 그렇게 됐다고 그때부터 카메라만 보면 무조건 치워버리라고 하더라구요. 그분이 입은 정신적 피해란...
마을도 그렇게 보도가 되고부터 외지에서 땅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어 부당산 값이 폭락이라고 하더라는군요. 근데 그 마을 흐르는 물을 보여주면서, 오염된 물이 이렇게 맑을 수 있겠으며, 그 물엔 잠뱅이(?)등 물에서 노는 곤충들이 있더라구요.
기자들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플라시보 2004-06-25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일을 당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자에게 부탁해서 최종 원고를 마감전에 보여달라고 하는 것 밖에는 없는것 같습니다. 물론 바쁜 기자로써는 귀찮아서 좀 짜증을 낼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기사 잘못 나가서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것 보다는 낫지 않나 싶습니다.

부리 2004-06-25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 기자, 알라딘 뉴스레터를 보니 자네도 만만치 않더군!

아영엄마 2004-06-25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기자들도 자기 생각 위주로 기사 작성하려 해서는 안되며, 자신의 기사때문에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있는지, 기사가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인터뷰한 거 몇 번 되진 않지만ㅡ 저는 인터뷰 뒤에 기사 작성시에 참고하도록 다시 한 번 질문들을 기억해내서 제 답변을 정리해서 메일로 보냅니다. 그래도 가끔은 생각과는 다른 내용이 나오지만서도.. ^^;)

2004-06-25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밀밭 2004-06-25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사는 정확하지 않든, 정확하든 간에 한번 활자로 남으면 오래 가더라고요. 잘못된 보도일지라도 사람들은 자신이 눈으로 본 활자를 더 믿으니까요. 요즘 인터넷 첫 화면에 이런저런 뉴스가 나오는데 그런 것들도 지나치게 눈요기감이라서 더더욱 뉴스나 기사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네요.

하얀마녀 2004-06-25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 읽는 동안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ㅁ-

진/우맘 2004-06-25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로렌초의시종 2004-06-25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나 네상에나...... 저도 정말 웃어서는 안되는 이야기인데 웃고 말았습니다^^;;;; 아니 정말 배울만큼 배웠다는 기자들이 도대체 왜들 저러는 걸까요? 저는 정말 마태우스님 글 중에 한명이라도 끝날 무렵에 '안그런 기자도 있긴 하더라'라는 말씀이 나올 줄 알았는데 정말 전부다 그모양 그꼴이더군요...... 도대체 무슨 말을 듣고 무슨 소리들을 하는 사람들인지......

아영엄마 2004-06-25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이 플라시보님과 이름 같이 올라있는거 보면 좋아하실 것 같아서 캡쳐했답니다~ 저 잘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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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rysky 2004-06-25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기자 유형
1. 보도자료 보내준 대로 토씨 하나 안 틀리게 그대로 베낀다. 써야 할 기사 분량보다 보도자료가 긴 경우, 내용 중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을 홀랑 빼버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 없게 만든다.
2. 취재해야 할 분야에 대해 겁나 무식하다. (명함에는 분명 그 분야의 전문기자라고 박혀 있건만) 취재원에게 묻고 묻고 또 묻는다(아주 기초적인 것까지). 취재원은 시간 들여서 열라 열심히 설명해준다. 기자 만족하면 돌아간다(혹은 전화를 끊는다). 버뜨, 기사 내용은 공상과학소설 수준.
음, 우리나라 기자분들이 다 이렇지는 않을진대 왜 저는 이다지도 무식하고 비상식적인 기자만 상대해 본 걸까요.. 운도 없지.. -_-

마태우스 2004-06-25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타리님/혹시... 기자가 스타리님에게 넋을 잃어서 그렇게 된 게 아닐까요???
아영엄마님/그, 그러시면 안되는데..... 일단 감사합니다.
로렌초의시종님/아니 뭐 안그런 기자가 없다는 건 아니지만요, 제가 좀 운이 없다보니...
하얀마녀님/혹시 아직도 입을 벌리고 계신 건 아니죠???^^
진우맘님/요즘 페이퍼가 뜸하시더군요. 열심히 합시다, 우리. 힘 내세요.
호밀밭님/그죠. 첫 보도가 워낙 중요하죠. 만두 보세요. 아무리 정정해도 안팔리잖아요.
스텔라09님/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예전에 서해 페리호 선장이 살아있다는 오보 생각이 나는군요. 그때도 정말 한심했죠...
스윗매직님/으음...저도 그러고 싶은데 영어 실력이 딸리다보니...
메시지님/그게 늘 선정성만 추구하다보니 그리 된 거라고 생각해요. 다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