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교 때, 선생님들과 점심을 먹고 들어가는데, 뒤에서 걷던 지도교수가 이렇게 말씀하신다.
"서선생이 히프가 굉장히 크네!!"
그 후부터 난 웬만하면 뒤에서 걷는다. 그렇다고 해서 큰 히프가 어디 가는 것도 아니지만.
난 대중목욕탕에 비치된 것과 비슷한, 조그만 목욕의자에 앉아 샤워를 한다. 내가 할 때도 그렇지만, 벤지를 목욕시킬 때 십여분 이상을 쪼그리고 앉아 있는 건 내게 무리인지라, 그 의자는 여러모로 유용했다. 그런데 여동생이 그 의자를 탐을 냈다. 여동생을 주면 어떻겠냐고 어머니가 물었을 때, 내 대답은 이랬다.
"그 의자 없으면 나 평생 샤워 안해!!"
날 깨끗하게 기르고 싶은 어머님은 결국 의자를 안주기로 하셨지만, 지난주 언젠가 여동생이 갑자기 들이닥쳐 반강제적으로 의자를 가져갔다. 그냥 하나 사지...
그 후부터 난 세숫대야를 엎어놓고 거기 앉아서 샤워를 했다. 물론 체중을 완전히 싣지는 않은 채로. 그런데 오늘, 열나게 머리를 감는데 "우지끈!" 소리가 났다. 세숫대야가 쩍 하고 갈라져 버렸다. 벤지 목욕 시킬 때 유용하게 쓰던 커다란 세숫대야인데, 아쉽다. 일차적인 책임은 의자를 훔쳐간 여동생에게 있지만, 나의 커다란 히프도 공범이다.
어제, 팬티가 47장 있다는 내 발언이 화제가 됐다.
마태: 참고로 전 팬티가 47장입니다.
책나무: 마태님 정말로 팬티가 47장입니까??...세장 더사세요...50장 얼른 채워야죠...ㅎㅎㅎ
곰도리: 마태님, 부유하시군요.
난 몰랐는데, 팬티의 숫자가 부의 척도가 될 수도 있나보다. 그런데 진짜로 내게 있는 팬티가 47장일까? 집에 있는 내 팬티의 총수가 그정도가 된다는 건 맞다.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중에서 입을 수 있는 팬티가 얼마나 되냐일 것이다. 큰 히프에 걸맞게 난 105를 입는다. 대학 때만 해도 95였는데, 슬그머니 100이 되더니, 이젠 105도 힘겹다. 아들 팬티를 사는데는 돈을 안아끼시는 우리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엄마, 110은 없어요?"
이런! 그런 사이즈는 없단다. 그럼 나보다 힙이 더 큰 사람은 어떻게 한담? 맞춰서 입나?
물론 105 정도면 입을만 하다. 하지만 메이커에 따라서 사이즈가 작게 나오는 것도 있다. 그런 팬티를 입으면 하루가 힘겹다. 행동도 영 불편하고, 무엇보다 가릴 곳을 다 가려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큰 동작을 취하면 팬티가 찢어지기도 하는데, 그렇게 해먹은 팬티가 열장은 될거다.
난 어릴 적부터 삼각을 입어왔다. 삼각 이외의 다른 팬티는 생각해 본 적도 없던 시대니, 당연한 일이다. 십년쯤 전에 어머니가 처음으로 사각을 사오셨을 때, 난 한번 입어보고 고개를 저었다. "엄마, 나 이거 안입을래요. 너무 답답해요"
그러는 사이 대세가 변해, 절반 이상의 남자들이 사각으로 전환했다. 한번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 망설였지만, 눈을 딱 감고 입으니 그런대로 입을만 했다. 무엇보다 좋은 건 삼각이 거의다 흰색이라 실수를 하면 치명적인 데 반해, 사각은 그런대로 융통성이 있다는 것. 내가 밤색 팬티를 선호하는 이유도 다 그 때문이다. 인간의 적응력이란 참 무서운 것인지라, 이제 다시 삼각을 입고는 못걸어다닐 것 같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보면 통풍이 잘 되는 사각이 더 시원해야 하건만, 나는 왜 처음 사각을 입고는 답답하다고 느꼈을까? 익숙함이란 때론 당연한 상식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지금도 난 사각만을 입는다. 찢을 팬티는 이미 다 찢어져서, 더 이상 팬티가 찢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다. 지금 돌려입는 팬티만 헤아린다면 대충 십여개쯤 될거다. 그러니까 팬티 47개의 신화는 상당부분 거품인 셈. 하지만 내 속옷을 넣어두는 서랍에는 옛 추억이 어린 삼각 팬티가 가득 들어있다. 입지도 않을 팬티를 버리지 않고 놔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나도 모르겠지만, 혹시 아는가. 유행은 변하는 법이니, 다시금 삼각이 유행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