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스펜서 존슨 지음, 이영진 옮김 / 진명출판사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추석연휴 마지막 날, 천안서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바람에 외박을 해야 했다. 같이 마시던 선생님 댁으로 가 아들을 다른 방으로 보내고 거기서 잤다. 습관처럼 6시에 잠을 깼고, 그 선생님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느라 알랭 드 보통의 <행복한 건축>을 읽었다. 일주 전부터 붙잡고 있던 책인데, 열페이지쯤 남아 있었기에 다 읽고 나니 6시 15분이다. 책꽂이를 보니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가 있다. 이거면 한시간은 버티겠지 하고 책을 폈는데, 읽고 난 소감을 써본다.


1) 러닝타임

그 책을 다 읽는 데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페이지 수도 워낙 적고, 글자도 큰데다 “치즈는 채소다”같이 별 대단한 말도 아닌 경구들을 한페이지 전체에 큼지막하게 배치한 탓이다. 쉽게 얻어지는 진리는 오래가지 않는다. 일주일 걸린 <행복한 건축>까지는 안될지라도, 모름지기 책이라면 최소한 두시간의 노력은 요구해야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30분이라니. 책 한권을 읽었다는 뿌듯함은 제공할 수 있겠지만, 그것 말고 이 책에서 얻을 게 뭐가 있을까? 이 책을 읽고 감동하신 분들도 분명 있겠지만, 그래서 그분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을지 난 회의적이다.


2) 교훈

그래, 대단한 교훈이라도 준다면 또 모르겠다. 이 책을 읽은 수많은 사람들은 ‘변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교훈을 얻기 위해 쥐가 치즈를 찾아 헤매는 책을 읽어야만 하는 것일까? 이 책에 나온 우화는 다섯줄 정도로 요약될 것을 지리하게 늘어놓아 그 자체로도 별반 재미가 없는데, 더 나쁜 것은 바로 세 번째 파트다. 책의 첫 파트는 동창들이 모여 담소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한명이 치즈에 관한 우화를 이야기하는 부분, 그리고 세 번째엔 다시 동창들의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과연 세 번째 파트가 왜 필요한지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원래 책이라는 건 이야기를 들려주고 독자가 그 안에서 교훈을 얻으라는 매체일진대, 이 책은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대신 작중 화자가 아예 교훈까지 들려준다. 이런 식이다.

갑: 이야기 잘 들었어. 그러고보니 요즘 너무 치즈에 소홀했어.

을: 나도나도! 앞으로 우리 치즈 많이 먹자.

병: 치즈도...중국산 있니?


이건 저자가 할 얘기가 아닌, 책을 읽은 사람들끼리 할 얘기다. 굳이 이해를 해보자면 두 번째 파트까지만 가지고 책을 내자니 너무 얇은 것 같아 그랬겠지만, 그 결과 이 책은 정말 최악의 책이 되고야 말았다. 저자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책이라니 원.


3) 슬픈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대단한 판매고를 올렸다. 그게 난 슬프다. 리뷰들이 찬사일색인 것 역시 슬픈 일이다. 삼겹살은 육체를, 책은 정신을 살찌워 준다고 어릴적 선생님이 얘기하셨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잘팔리는 책들은 더 이상 우리 정신을 살찌게 해주지 못한다. 그것도 난 슬프다. 이 책을 수백부 주문, 직원들에게 돌렸다는 사장님, 사장님 회사는 그래서 번창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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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7-09-30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 있었는데(집 어딘가에 처박혀 있는 건지 버린건지는 모르겠으나), 제 기억으로는 누나가 알바 하던 곳 사장님이 돌리셨다나봐요. 어떤 내용인데? 라고 물으니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누나가 생각나네요.

책읽는나무 2007-09-30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책 결혼전...그러니까 칠 년 전인가? 누군가의 추천을 받고서 직접 사서 읽었는데...
쩝~ 돈 아까워 죽는줄 알았다는~~~
그로부터 미국에서 발간된 베스트셀러는 되도록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물론 좋은책들도 많긴 하지만...대부분은 얄팍한 상술에 이용당한 기분이 들어서 말이지요.
최근엔 '마시멜로 이야기'책이 또 좀 그러한 기분이 들더라구요.그래도 그나마 '청소부 밥'은 좀 낫긴 하더라만요.다행히 이 두책은 내돈으로 안사고,빌려 읽어서 참 다행스러웠어요.
님도 이책 돈 주고 안사서 읽은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워요.

이런책들을 사장님들이 사서 전직원에게 돌리셔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나봅니다.왜 베스트셀러 책들은 대부분 판매고 순위로 매겨지는지 모르겠어요.베스트 셀러 순위 목록표를 보면 낭패당할 수가 참 많아서....ㅡ.ㅡ;;

비로그인 2007-09-30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제가 받은 느낌을 쓰셨네요.
오랜만에 우리가 통했어요.

비로그인 2007-09-30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이요.. 전 28분만에 읽었어요(은근한 경쟁심;) ㅎㅎ

BRINY 2007-09-30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추천!

시비돌이 2007-09-30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게 비정규직 노동자들한테 하는 애기들로 들리더라구요. 직장에서 짤리기 전에 옮길 곳을 미리 챙겨둬라, 결국 모든 건 니 잘못이다. ^^

다락방 2007-09-30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다니는 회사의 과장님께서 이 책을 읽고 전직장을 관두셨다고 했어요. 인생을 변화한 책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저는 읽어보진 않아서 뭐라 말할 순 없지만 아 책한권으로 직장을 때려칠 수 있는거구나,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 과장님은 지금 또 다른직장으로 옮기셨어요. 이번엔 무슨책을 읽었나 궁금해져요.

그건그렇고 마태우스님께서 별 한개를 주시고 이토록 슬퍼하시니 저는 어디 한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오히려 생겨버리는군요. 훗

프레이야 2007-09-30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 책이라도 안 읽는 사람들도 많다는 거이 더 문제 아닐까 싶어요.
그래도 이런 책이라고 무시하면 지적 계급 운운.. 돌 날라올지 몰라요.ㅋㅋ

울보 2007-09-30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을 위한 책도 있던데요,,

parioli 2007-09-30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간만입니다. 아마 예전에 테니스 치자고 한 분인 걸로 기억하는데... ^^;;;

그냥 자신감 있게, 쓰레기 책이라고 합시다.
아닌가요? 쩝.
책에 대해서만 괜히 공손한 척 할 필요 없죠.
특정한 티비 드라마에 대해 과감하게 쓰레기라고 말하듯,
책에 대해서도 과감히 말합시다.
어차피 대부분의 책도 그렇고 그러한 사람들의 소비용일 뿐이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커피 마시는 것, 영화 보는 것, 책 읽는 것이 마찬가지 행위죠 머.
다만 후자는 조금 더 집중을 요한다는 차이일 뿐.

Mephistopheles 2007-09-30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치즈는 우리나라 정서에 안맞아요..
치즈를 메주로 바꿔서 책을 풀어냈다면..

마태우스 2007-10-01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제말이 바로 그겁니다 메주를 옮기는 건 그럴듯해요!
간디님/아, 안녕하셨어요. 그래도 다른 분들이 재밌게 봤다는데 쓰레기,라고하긴 좀 그러네요. 책을 읽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고, 몇권 읽었는지를 추구하는 분도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런 분들에겐 20분만에 독파가 가능한 이 책이 좋은 책이 아니겠어요?^^
울보님/어맛 안녕하셨어요 저는 잘 있답니다 근데 아이들까지... 으음...
혜경님/그럴 수도 있겠지요...하지만 이런 책이 정도를 넘어서 지나치게 팔린 건 슬픈 일이어요. 글구 책을 읽는데는 지성이 별반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읽는 책들을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책에 대한 호기심이면 충분한 것 같은데요? 글구..제 머리가 단단해서 돌 던지면 그냥 맞으렵니다^^
다락방님/리뷰 보다보니 이 책 읽고 회사 옮기겠다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사실 변화를 결정하는 건 조직의 최상층 아니겠어요 아래사람들은 변화의 욕구가 있어도 실천하기가 어렵죠. 다른 직종에 가는 걸 변화라고 생각한다면 으음...
시비돌이님/아 님과 술한잔 해야하는데.. 장하준 선생 인터뷰 잘 봤습니다 꾸벅
브리니님/역시 우리마을 사람들은 이 책에 비판적이군요 반가워요
테츠님/님이 그리 말씀하시니 저도 26분 정도에 읽었던 것 같아요^^
민서님/어 우리 원래 통했었는데...^^
책나무님/사실 별것도 아닌 책이 포장을 그럴듯하게 해서 마케팅 잘해서 베스트셀러 된 거겠죠 이거 읽은 이들은 그냥 베스트셀러니 뭔가 있다고 생각하고 좋은 리뷰를 쓴 걸테구요... 이게 그렇게 충격적이거나 새로운 내용은 아닌데 너무들 오버하시는 듯해서 안타까웠다는..
가넷님/안녕하세요 혹시 케빈 가넷 좋아하시나요? 가넷 중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그사람이어서...^^

sweetmagic 2007-10-01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4지 4장 분량으로 독후감 써야 했었는데요.
소설 쓰는 기분으로 썼었던 기억이....

마태우스 2007-10-01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직님/그 책 본문 다 합쳐도 에이포 4장이 될까말까인데... 정말 소설을 다시 쓰셔야겠군요^^

비연 2007-10-01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분의 책은 왜 인기가 많은 건지 가끔 갸우뚱..합니다. ㅠㅠ

비로그인 2007-10-01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하나도 주기 싫은데, 체크 안하면 리뷰 등록 안되는 시스템 탓에 체크하신 것 다 압니다. 제가 가끔 그러거든요. 참고로 전 이 책 못읽어봤고, 앞으로도 읽을 생각 없어요. 후훗
진정한 자기계발서적이라면, `전쟁의 기술' 내지는 `유혹의 기술' 정도는 되어야지요!

마태우스 2007-10-01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드님/아아 예리하신 주드님. 제가 처세책을 다 싫어하는 건 아닌데요 적어도 사회에 대한 풍자나 웃을 수 있는 대목 같은 게 하나는 있어야 하는데 전혀 아니더라구요. 반개짜리 별도 가능하면 좋겠어요
비연님/그렇죠? 우리 안티 스펜서 클럽 하나 만들까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