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 아내가 주차하다 입주민 차를 박았다.

범퍼에 기스가 났기에, 아내는 차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중에 차주는 3만원 들여 범퍼를 칠했으니 그 돈을 보내라고 했다.

아내에게 말했다.

"그것 때문에 시간 깨진 것, 그리고 정신적으로 힘든 것까지 다 감안해서 5만원 정도 보내면 어떨까?"

아내는 내 말에 기꺼이 따랐고, 뜻밖의 선물을 받은 차주는 다시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닌데, 또 비슷한 일이 생겼다.

아내가 날 데리러 왔다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데,

그게 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저쪽에서 오던 차가 클랙슨을 누른다.

뭐 저딴 애가 다 있나 싶어서 나도 째려보게 됐는데,

그 소리에 놀란 아내가 서둘러 주차하다 에쿠우스 범퍼를 받았다.

이게 다 빵빵 누른 그 차 때문인데,

범퍼의 기스는 다행히 경미했고,

아내가 열심히 닦았더니 보이지 않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연락처도 남겨져 있지 않았다!

그래도 난 '전번을 남기라'고 해서, 책 표지를 뜯어 전번을 쓴 뒤 앞 유리창에 끼워놨다.

연락은 다음날까지도 오지 않았기에 아내는 관리사무소를 거쳐 직접 연락을 했다.

나중에 차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디가 긁힌지도 잘 모르겠고, 차도 오래된 차이니 그냥 넘어갑시다."


그게 너무 고마워서, 나와 아내는 뭔가 특별한 선물을 하자고 했다.

호두과자는 천안 사는 사람끼리 선물할 게 아니어서

목포에 있는 기가 막히게 맛있는 게장을 선물하기로 했다.

전화해보니까 1킬로에 8만원-더럽게 비싸졌다!-이라기에

주문한 뒤 아내가 그분한테 갖다드렸다.

아내와 난 '이래서 우리가 돈이 없는 거야'라고 했지만,

난 아내가 약간의 이익을 탐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더 좋다.

결과도 훈훈했다.

뜻밖의 선물에 그분은 무척 고마워했고, 아내와 15분 가량 있으면서

정을 나눴다고 한다.


이야기의 끝은 이게 아니다.

아내는 게장을 시킬 때 1킬로만 시킨 게 아니었다.

이왕 시키는김에 2킬로를 시켜서 우리도 먹자는 깜찍한 생각을 가졌는데,

요즘 돈도 없는데 그리 비싼 음식을 우리가 먹냐며 난 좀 떨떠름한 생각을 했었다.

오늘 아침, 아내와 난 그 게장을 먹었다.

게장은 진짜, 진짜진짜진짜 맛있어서, 비싼 가격이 흉이 되지 않았다.

원래 아침을 먹지 않지만, 이 게장은 진정한 밥도둑이어서

밥 두공기가 순식간에 없어졌다.

게장집 주인이 보낸 문자는 이렇게 돼있다.

"요새 꽃게잡이 근황이 안좋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11월말부터 알이 꽉차기 시작합니다.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십시오."

알이 안찬 게가 이리도 맛있다면, 알이 찬 뒤엔 얼마나 맛있을까.

돈 좀 아껴서 12월 초쯤 게장을 한번 더 시켜야겠다.


혹시 궁금하신 분이 있을까봐 그 게장집 전번을 남긴다

게장집 이름: 목포에 있는 해원옥 (혜원옥 아님)

전번 061-285-1246


이 집을 알게 된 건 목포의 지인이 선물을 해준 덕분이다.

그때 너무 맛있어서

어머니를 비롯해 다른 분들에게 선물을 한 적이 있는데

반응은 다 별다섯개였다.

게장은 해원옥! 쓰다보니 광고글이 되버렸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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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7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7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9-11-17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떡해요. 글도 마태우스님 부부도 너무 귀여워요. 하이라이트는 게장 시키고 싶어진다는 겁니다. 주말 아침부터 웃음 주셔서 감사해요. ^^

마태우스 2019-11-17 14:02   좋아요 0 | URL
오옷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이 나이에도 귀엽단 얘기 들으니 즐겁네요 호호호호.

박균호 2019-11-17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그 게장집 어딥니까? 같이 좀 먹읍시다’라고 댓글 달려고 했었는데요..ㅎ.ㅎㅎㅎ

마태우스 2019-11-17 14:03   좋아요 0 | URL
그죠그죠 그럴까봐 제가 연락처 썼습니다. 많은 게장집에서 저더러 알라딘에 소개좀 해달라고 했지만 다 거절했는데 이번 집은 진짜입니다. ^^

slobe00 2019-11-17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훈훈한 부부셔요..^^
게장 주문해야겠네요~

마태우스 2019-11-17 14:04   좋아요 0 | URL
원래 먹거리 소개는 극도로 조심하는 게 맞아요. 저는 맛있는데 다른 분들은 안그럴 수 있잖아요. 근데 이집은 쭉 지켜본 결과 검증됐다고 생각해서 소개합니다. 제 이름 대면서 주문하면 서비스가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기대반 추측반 )

카알벨루치 2019-11-17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찜해야겠네요 마태우스님 이름 팔겠습니다 ㅎㅎ근데 진짜 훈훈한 이야기입니다~

마태우스 2019-11-18 01:10   좋아요 1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름 파시면 더 맛있는 게장이 갑니다!

무식쟁이 2019-11-17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주문해먹으려고 즐겨찾기 해놨어요. 근데 정확한 식당이름은 해원옥 입니다. ^^ㅋ

마태우스 2019-11-18 01:11   좋아요 0 | URL
윽...가르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직접 가서 먹어본 적도 있는데 오옷...그걸 잘못 알고 있다니 ㅠㅠ 죄송합니다

stella.K 2019-11-18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마태우스님 차에 받힐만 한데요?
차주는 생각지도 않게 꽃게를 다 먹게되니 저쪽에선 마태님 차를 행운을 부르는 차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너무 착하신 것 같습니다. 뿌잉뿌잉~
게장 먹고 싶네요.^^

moonnight 2019-11-19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원옥 아님)이라 하셨는데 맨 마지막 줄엔 게장은 혜원옥!이라고 쓰셨어요^^;

아내분도 마태우스님도 참 선하세요. 읽는 것만으로 마음이 따스해집니다. 뭔가 무서운 반전이 있나 긴장했는데요ㅎㅎ^^; 세상이 아직 살 만 한 곳이네요.뭉클ㅠㅠ 저도 마음 고쳐먹고 착하게 살아보겠습니다. 반성^^

마태우스 2019-11-20 23:00   좋아요 0 | URL
아이고 방금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구 제가 선하다는 건 한 부분에서만 그렇구요 다른 부분에선 인간 말종이기도 하답니다 여러 면을 골고루 봐주세요. 달밤님이 종합하면 훨씬 더 좋은 분입니다

야클 2019-11-20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게장 국물이라도 같이 거하게 한 잔 합시다. 얼굴 까먹겠소. ^^

stella.K 2019-11-20 16:15   좋아요 1 | URL
ㅎㅎㅎ 게장 국물이라도.ㅋㅋㅋ
잘 지내시죠, 야클님. 저도 야클님 까먹을 것 같아요.ㅋㅋ

마태우스 2019-11-20 23:01   좋아요 0 | URL
사실 얼굴 벌써 까먹었소..ㅠㅠ 게장 국물이 안주거리가 될까...???^^ 암튼 고맙소.

마태우스 2019-11-20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K님, 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