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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평점 :
‘너무’라는 부사에는 ‘너무 안 씻는구나! 너!’처럼 부정적인 말이 이어져야 맞다. 하지만 <달콤한 나의 도시>를 읽던 중 난 “너무 재밌다”는,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을 되풀이했다. ‘매우 재미있다’같은 말로는 그 재미를 표현할 길이 없기에. 그래서 난 평소 재미있는 책에 목말라 있는 우리 조교선생에게 그 책을 사주기도 했는데, 그 조교 역시 “제가 여태까지 읽은 책 중 제일 재밌어요.”라고 말해 날 뿌듯하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 말을 덧붙였다.
“근데... 선생님도 이 책이 재미있다니 신기해요.”
여자 셋이서 사랑을 놓고 아웅다웅하는 스토리에 남자인 내가 열광하는 게 이상하단다.
어린 시절의 난 막연하게 여성적인 것을 동경했었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고, 가지런하게 다리를 모으고 앉았으며, 말할 때 “어머!”란 단어를 의식적으로 많이 사용하려고 했다. 그 당시 남자 애들은 여자 애들을 괴롭히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기 마련인데, 난 거기에 동참해 본 적이 없다 (내가 그래서 친구가 없었나?). 그게 몸에 익어서인지 5학년 때 담임은 날보고 “마태우스 아가씨”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그게 성 정체성이 흔들린 결과라기보다 여성들과 친구를 하고파서 그들의 행태를 흉내낸 게 아니었을까 싶다. 막상 여자들 옆에 서면 수줍어서 말도 못붙였지만, 내 마음 속에는 그들에 대한 동경이 자리잡고 있었을 거다.
그런 내가 자라서 ‘남자’가 되었다.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는 남성문화에서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하겠지만, 내 주위의 남자 친구들을 만나면서 이따금씩 불편함을 느꼈다. 다른 남자들과 달리 난 수다 떨기를 좋아했고, ‘시댁’에 대해 굉장한 저항감을 갖게 되었고, 웃찾사의 ‘해봤어’나 개콘의 ‘문화살롱’처럼 여성이 주도하는 프로를 훨씬 좋아했다. 강준만의 책을 통해 여성주의를 접했을 때 내가 열광했던 건 당연한 귀결일 테고, 내 주위에 여자친구들이 하나씩 늘어나는 것도 내가 여성적 감수성을 기르려고 노력했던 결과이리라.
그래서 난, ‘섹스 앤드 시티’ 분위기가 나는 <달콤한 나의 도시>를 너무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난 아주 쉽게 주인공 오은수에게 동화되었고, 그에게 함부로 하는 남자들에게 분노했고, 딱이 남자가 좋아서라기보다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어 결혼을 결심하는 여성들에게 마음 아파했다. 한가지 더. 이 책에 나오는 표현 중에는 무릎을 치게 할만큼 기발한 것들이 워낙 많다. 예컨대 남편이 없는 틈에 친구들끼리 모여서 담배를 피우며 수다를 떠는데 시부모가 예고도 없이 찾아와 방문을 열었다. 저자는 그걸 마약굴에 찾아간 추기경에 비유했는데, 그 표현들이 어찌나 멋진지 글쓰기 강의록에 저자의 표현들을 잔뜩 첨부해 놨다. 올해 나한테서 강의를 듣는 애들은 이런 말을 들어야 할거다.
“정이현같은 표현력을 기르도록 노력하세요! 아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