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12월 15일(금)
누구와: 모 미녀와
어떤 술을 마실지 정하는 건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언제나 안주. 특히 상대의 선호안주를 모르는 상태에선 내가 미리 뭘 먹자고 말하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예컨대 곱창 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그녀가 “사실 저 곱창 첨 먹어요 흑”이라고 말하면 얼마나 미안하겠는가? 그래서 난, 그쪽에서 먼저 뭘 먹자고 말해주면 고마워 죽겠다. 그런데.
“과메기 드시러 갈래요?”
구글에 나온 이미지입니다
난, 과메기를 한번도 먹은 적이 없었다.
“그러지요 뭐.”
그녀가 말한다.
“비릴지도 몰라요.”
왠지 망설여진다. 하지만 그래봤자 술안주인데 내가 못먹는 게 말이 되는가.
“하핫, 걱정 마십시오. 제가 국내에선 어떤 거든지 다 잘먹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주인 아주머니한테 “이분이 못드실지 모르니까 몇점만 맛뵈기로 줘보세요”라고 해줬고, 난 아주머니가 상치에다 싸준 과메기를 입에 넣었다. 잘.모.르.겠.다. 그리고 그거와 더불어 말술을 들이킬 자신이 없었다.
“어때요?”
“괘, 괜찮은데요.”
하지만 그녀는 내가 어떤 놈인지 알고 있었기에 본격적으로 과메기를 시키는 대신 그냥 회를 시켜 줬다. 그 덕분에 난 그날 물만난 생선처럼 술을 마셨다. 그녀와 마시다 도망친 적이 한두번이 아니건만, 그날 난 정신이 혼미해 보이는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 주는 친절을 베풀기까지 했다.
물론 나도 인간이었다. 그 다음날 고교 때 친구와 어디론가 놀러가야 할 일이 있었는데, 운전을 해서 거기까지 가는 동안 얼마나 피곤했는지 모른다. 친구들은 날 위해 술을 좀 많이 사왔는데, 난 타이레놀 4알을 먹고도 맥주 한병 이상은 먹을 수가 없었다. 못먹겠다고 나자빠진 날 친구들은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고, 내 옆에 있던 친구 딸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지난번엔 진짜 많이 먹었잖아!”
그랬다. 몇 달 전 그 모임에서 놀러갔을 때, 난 맥주 여덟병을 비우고도 모자라 소주 한병반을 더 마셨었는데, 그게 그애한테 강렬한 인상을 남겼나보다. 하지만 그애가 실망할지라도 난 살아야 했고, 그날 내가 마신 술은 그게 다였다. 그 결과 난 지금 살아 있고, 무시무시한 12월이 얼마 남지 않은 걸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목요일의 고비만 넘긴다면 올해는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 것 같다.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