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11/29)과 토요일(12/2)의 술자리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수요일이 나보다 1년 선배 셋(누나 둘, 형 하나)과의 술자리라면 토요일은 내 고교 동창들이 가족을 동반해 만난 자리였으니까. 하지만 공통점도 있었다. 수요일과 토요일 모두 중국집에서 모였다는 것, 그리고 나를 제외하곤 아무도 술을 마시는 사람이 없다는 것.
난 “술을 한병 시켜야지 않냐”는 제안에 두 번 다 반대의 뜻을 표했다. 수요일엔 속이 안좋았고, 토요일엔 연일 무리한 게 마음에 걸렸기에. 하지만 사람들은, “그래도 한잔은 마셔야지”라며 술을 시킨다. 남은 술을 처리해 줄 날 믿어서리라. 수요일엔 죽엽청주를, 토요일엔 3만5천원이나 하는 공부가주(공자가 마셨다는 술이다)를 시켰는데, 두 개 다 500ml 짜리였고, 사람들이 한두잔 마시고 나자빠져 남은 술을 나 혼자 책임져야 했던 것도 같았다.
난 술을 한 두잔 마시고 마는 스타일은 아니다. 마시려면 머리끝까지 마시던지, 아니면 한방울도 안마셔야 했다. 적당히,란 말은 내 사전에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 중엔 한두잔 마시며 얼큰한 기분을 즐기는 이가 많이 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그들이 남긴 술은 다 내가 처리해야 할 몫, 술을 남기는 걸 싫어하는 난 있는 힘껏 마셔서 병을 비우거나, 못마신 건 집에 싸가지고 간다. 집에서 술을 마시는 일은 거의 없기에 우리집 창고에는 내가 싸온 술이 잔뜩 진열되어 있다. 토요일날은 최선을 다한 끝에 병을 비웠지만, 수요일에 남긴 술은 할 수 없이 집에 가져와야 했다.
저는 하이에나입니다
그렇긴 해도 내가 술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다. 언젠가 하나로마트에 갔다가 1.8리터짜리 소주 댓병이 잔뜩 있는 걸 보니 흥분이 된다. “저거 언제 한번 사서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다 옆 코너로 가니 세상에, 3.6리터짜리 소주가 옹골차게 놓여 있다. 그때 내가 한 말, “날 잡아서 아침부터 저거 한병 다 마시면 원이 없겠다.”
남들은 일이 있어야 술을 마시지만, 난 술을 마시기 위해 일을 만든다. 있는 친구는 죄다 술친구고, 회나 삼겹살 같은 건 음식이 아닌, 술을 마시기 위한 수단이다. 12월 스케쥴을 가득 메운 술 약속들에 한편으론 한숨을 내쉬면서도 한편으론 가슴 설레 하는 게 바로 나다. 속이 좋으면 좋은대로, 안좋으면 소화제를 먹어가며 무식하게 마셔대는 모습은 황야를 달리는 한 마리의 하이에나 같다. 하이에나야, 한달만 고생하자. 1월부턴 좀 쉬게 해줄 테니까.
* 여담
참고로 수요일날은 물만두님 댁에서 마셨어요 문패를 보시어요
악어를 키우고 있더군요. 혹시...만돌군?
화장실 물이 얼마나 깨끗하면... 8번을 읽어 주세요
이건...관계없는 사진입니다만
이, 이름이 나와 버리네요. 저희 학교는 본과에 진입하는 선배들한테 도장을 파주는 전통이 있지요. 이 도장을 본과 학생들은 두툼한 시험지 장마다 찍어 댑니다. 이걸 제가, 잠을 쫓으려고 그렸답니다.
그림에선 가명을 썼습니다만... 사진의 이름이 너무 선명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