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시간을 빌어 이번 학기에 본 영화는 모두 18편, 한 조당 9편의 영화를 봤다. 학생들이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받아들여 주길 바라지만, 쥐 해부를 못해서 실망한 학생도 분명 있을 거다. 내 나름의 최선을 다했으니 별반 후회는 없지만.


내가 느낀 걸 몇가지만 적어 본다.

-학생들의 리포트를 읽다가 “하도 유치해 토할 뻔했다”는 구절이 마음에 들어, 그 다음 시간에 “감상문은 이렇게 솔직하게 써야 한다.”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는 “토할 뻔했다”는 구절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멀미가 났다’든지 ‘트림할 뻔했다’같은 독창적인 표현력이 아쉬웠다.


-그렇게 베끼지 말라고 했는데도 베낀 애들이 몇 명 있다. 같은 소스를 베꼈는지 두명의 리포트 후반부가 판박이인 것도 있고, 줄거리만 베낀 애들도 좀 된다. 난 감상문에 줄거리를 자세히 쓰는 걸 싫어하지만, 사실 줄거리를 요약해서 쓰는 것도 능력이며, 그건 자주 써봄으로써 길러진다. 너무 편함만을 추구하는 세태가 아쉽기만 하다.

 

-한 학생은 리포트의 대부분을 베껴서 냈는데, 최악은 <콘스탄트 가드너>였다. 웬만한 걸 베껴야지 무슨 생각으로 <시네21>에 김지미가 쓴 평을 통째로 베껴왔을까?

“우리는 타자와 사랑을 통해 교감한다고 생각한다. 그 앞에서는 국경도 인종도 사라진다는 이 단어는, 사실 무수한 오해로 겹겹이 쌓여 있다.”

이 두 줄만 봐도 전문가적인 냄새가 풀풀 나는데, 정말 웃긴 건 결말 부분을 다른 데서 베꼈는지 문체가 갑자기 존대말로 바뀐다는 것. 결말에 나오는 “웃지못할 이야기더군요.”라는 말은 본인에게 돌려줘야지 않을까.


-켄 로치의 <빵과 장미>를 틀면서 내심 걱정했다. 이 영화의 의미를 학생들이 과연 이해할까. 청소원들이 노조를 결성하는 장면이 나왔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 얘기했다.

“참, 제가 미처 얘기 안했는데요 이거 만든 감독이 좌파예요.”

놀랍게도 학생들 중 일부는 매우 흥미롭게 영화를 봤고, 영화가 끝나자 기립박수까지 쳤다. 여기까진 좋았다. 어느 학생이 쓴 리포트를 읽다가 난 거의 쓰러질 뻔했다.




이 학생, 정말 귀엽지 않은가?


-리포트를 채점할 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쓴 것도 만점을 줬지만, 나 역시 인간인지라 다음 구절을 쓴 학생에게도 만점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영화 선택 안목 역시 탁월하셔서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교수님이 마냥 좋았다.”

 

내가 영화를 좋아해서 그렇겠지만, 난 영화를 데이트 수단만이 아닌, 취미의 하나로 여기고 그래서 혼자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는 사람이 멋져 보인다. 우리 학생들 중에도 몇 명쯤은 이번 학기를 계기로 영화의 재미를 느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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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8 0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6-11-28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핫, 저 학생 너무 웃겨요^^ 진짜 귀엽네요. 마태우스님 멋쟁이(>_<)

BRINY 2006-11-28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대생도 애들 맞네요. 전 며칠전 '구주는 구라파, 유럽이야'라고 설명했다가 '구라파'란 말에' '황구라'를 연상하고 뒤집어진 애들 때문에 웃어야할 지 울어야할 지 모를 상황이었답니다 -.-

chika 2006-11-28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학생, 귀엽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함다! ^^

짱꿀라 2006-11-28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점주신 마태님도 대단하시네요. 너무 좋으신 마태우스님. 제자가 사랑한다고 하겠네요. 점수 잘줘서.

비로그인 2006-11-28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습시간에 영화를.. 음..
학교 어딥니까? 다시 다니고 싶습니다.. 하하
멋진 교수님!!

프레이야 2006-11-28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탁월한 안목, 교수님이 마냥 좋았다, 에 만점 주시는 님도 학생 못지 않게 귀여운걸요 ㅎㅎ

전호인 2006-11-28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학생들과 교감하시는 교수님의 학습방법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기회가 될 수 있다면 수강하고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해부는 안되고 영화감상만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ㅎㅎ

sweetmagic 2006-11-28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학교로 전근오세요 !

Mephistopheles 2006-11-28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좌파와 자폐아와의 저 오묘한 줄다리기...ㅋㅋ

비로그인 2006-11-28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승이 귀여우니 제자도 따라하는 군요 :)

기인 2006-11-28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의미심장하네요~ ㅋ 김지미 선배 이름 보고 놀랐습니다 ^^;
요즘은 선배들이 다양한 쪽으로 뻗어나고 있어서 저도 가끔 씨네21보다가 놀랍니다. ^^

마태우스 2006-11-28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앗 김지미님이 선배신가봐요? 님은 정말 폭넓은 인맥을 갖고 계시군요!
고양이님/그걸 사귀제귀라고 합니다
메피님/그러게 말입니다^^
매직님/미국 학교 말인가요.... -.-
전호인님/아네요...아직 멀었지요. 가장 안타까운 건 내공이 모자라다는 건데요 그걸 돈과 정성으로 커버 중....^^
배혜경님/제가 원래 휴머니스트라서요 호홋.
한자님/절대로 가르쳐드릴 수 없습니다^^ 오셔서 진고개신사 부르실까봐요
치카님/젊은 남자학생이라서 그러는 거죠? 다 알아요^^
브리니님/정말요 요즘 애들은 구라파란 말 못듣고 자랐을 것 같아요. 글구 그나이 때 애들은 참 잘 웃잖아요
마노아님/리포트를 보는 전 얼마나 웃겼겠어요^^
속삭이신 분/글쎄요 제 의견은 좀 다른데요 스폰지사라는 회사 덕분에 그런 영화도 계속 개봉하고 수익도 내고 있답니다. 메종 드 히미코도 그렇고 귀향도 거기서 수입해서 흑자 봤답니다. 로치의 보리밭...도 지금 상영중이잖아요. 그런 거 전문으로 하는 극장도 여럿 생겼구요 옛날보단 다양성이 증대된 것 같아요. 물론 이건 서울에 국한된 얘기지만요.

플레져 2006-11-28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확한 발음, 안정된 영화 분위기를 유도해보세요 ^^
한때 아파트를 돌며 세탁~ 세탁~ 하시던 아저씨의 목소리를 김밥, 으로 곡해해서
김밥 사먹을까 말까 고민했었답니다...

sooninara 2006-11-28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까지..호호..
마태님..정말 존경스러운 교수님이세요^^

뷰리풀말미잘 2006-11-28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아영엄마 2006-11-28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좌파~ 자폐아~ 진솔한 감상평이군요.. ^^; 학생들로서도 참 색다른 수업방식이었을텐데 여전히 양심없이 남의 글을 자기 글처럼 베껴내는 분들이 계시다는 점은 참 안타깝습니다그려~.

모1 2006-11-28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폐아~~대박이군요. 후후....그나저나 안목이 탁월하신 교수님 운운한 학생..참 놀라운 글발이군요. 그 와중에 그런 것을 쓸 생각을 하다니...
마지막으로 아예 베낀 학생은 참 대단하군요. 대단한 리포트도 아니고 그냥 자유롭게 쓰라고 한 감상문인듯 보이는 것 조차 그렇게 내놓다니 그 학생 자신이 베낀 글이 무슨 내용인지 알고 있는지궁금해요.

마태우스 2006-11-30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1님/제말이 그말입니다. 자기도 잘 모르는 걸 베끼다니...베끼더라도 자신이 소화해서 자기 것으로 만든다면 좀 낫겠지만.....
아영엄마님/좀 편하게, 거저먹으려는 태도가 안타깝더라구요..
말미잘님/10자 이상, 부탁드립니다^^
수니님/아이 왜이러세요...부끄럽게...
플레져님/세탁과 김밥은 좀 많이 틀리지 않나요? 그때 배고프셨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