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의 ‘웃찾사’가 천하를 주름잡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아무리 바빠도 목요일 11시 경엔 무조건 집에 들어와 TV를 켰다.
웃찾사가 재미없어서 더 못봐주겠을 무렵
정신을 차려보니 사람들은 다 개콘을 보고 있었다.
나 역시 개콘을 방영하는 일요일 밤 9시엔 웬만하면 집에 있으려 노력했다.
<뮤지컬>을 비롯한 좋은 코너들도 많았지만
재미가 없다는 의견이 올라오면 바로 코너를 내리는 신속성이 돋보였다.
<마징가>나 <노래방도사> 등이 얼마 못가서 간판을 내린 프로이며
재미가 없다치면 녹화를 끝낸 것도 과감히 편집했다.
저런 식으로 하면 계속 일등 먹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고사상태에 놓였던 MBC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바로 <개그야> 덕분.
지인의 소개로 네이버 동영상에서 ‘사모님’을 보기 시작했고
그 지인이 AS로 소개해준 ‘명품남녀’에 맛을 들였으며
‘주연아’ 같은 보석도 발견했다.
‘고독한 킬러’도 즐겨보는 프로다.
개그야와 개콘의 대결이 치열하겠구나 싶었는데
“언제 웃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던 웃찾사가 다시 반격에 나선다.
‘띠리띠리’라는 코너는 어느 프로에서도 못본 신선한 개그였다.
하지만 그거 하나 때문에 다시 목요일 11시에 TV 앞에 앉을 수는 없지 않나 싶었는데
(지금은 일요일 밤 7시로 옮겼다)
‘해봤어’라는 코너를 보고야 말았다.
여성 3인조가 온몸으로 웃기는,
“이건 너무 웃기잖아!”란 탄식이 절로 나오는 그 개그를.
남을 웃기는 건 원래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개그맨들은 한번 떴다 싶으면 같은 유머를 되풀이하면서 한주를 버텼다.
그래서 내가 20대 때는 TV 개그프로보다 친구들이 해주는 얘기가 훨씬 더 웃겼다.
머리 좋은 애들은 다 개그개로 가는 것 같은 지금은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개그가 속속 등장한다.
한 패턴을 바닥이 보일 때까지 우려먹는 건 이미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자기 유머를 개발하는 대신
다 개그 프로에 나오는 유행어를 해댄다.
내 친구는 차만 타면 “김기사 운전해”를 외치고
나 또한 유행어를 써서 웃겨볼 생각만 할 뿐이다.
개그계가 날로 발전하는 건
학벌이나 명성보다는 능력을 우선했기 때문이리라.
아까 신선한 개그라고 칭찬했던 ‘띠리띠리’는
대학로에서 뜰 날을 기다리며 오랜 기간 기량을 갈고 닦던 선수고
웃찾사의 미래 ‘해봤어’ 팀 역시 대학로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아 왔’다고 한다.
지승호의 인터뷰집에 나온 말인데
우리 영화계가 잘나가는 것도 서울대 출신이 가장 적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단다.
그렇다면, 정치판을 비롯한 다른 분야에서
우리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인 이유도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넋을 놓고 ‘해봤어’를 보다가 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