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레 식구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반찬들이 차려져있는 밥상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밥상에 차려져 있는 반찬들에도 눈이 가기 마련이다. 아무리 핵가족이 되었다 해도, 우리는 밥상머리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에 여전히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겠지만 그만큼 우리의 삶 또한 그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식품영양학을 오래 연구하고 강의를 했던 저자인지라, 아무래도 직업병(?) 적인 것 같긴 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더 신선했던 것 같다. 우리의 장편소설이나 대하소설 속에 담겨있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책 한 권으로 엮여져 있기 때문이다. 최명희의 혼불, 박경리의 토지, 박완서의 미망, 심훈의 상록수, 판소리 속 음식 문화가 각 장에서 소개된다. 책에서 소개된 작품들을 여럿 읽었지만, 생각보다 기억나는 장면들이 없어서 당황스럽기는 했다. 음식을 다룬 다른 작품들(조정래의 태백산맥)도 생각나긴 했는데(태백산맥에는 워낙 주된 무대가 벌교라서 그런지 꼬막 이야기가 주를 이루긴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음식들이 등장한다고? 하는 생각에 더 흥미로웠다.
특히 몇 년에 걸쳐 야금야금 읽고 있는 박경리의 토지의 경우 두 장에 걸쳐 소개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읽어나가면서 이 책에서 만난 대목을 마주하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날 것 같다. 1장에 등장한 혼불 속 음식 이야기에는 유난히 죽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단다. 그리고 우리는 쉽게 생각하는 죽이 생각보다 여러모로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새삼 새롭게 느껴진다. 근데 나 역시 어떤 면에서는 공감한다. 죽처럼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 없다는 것. 죽은 불 앞에 서서 계속 신경을 써서 저어주지 않으면 타거나 눌어붙기 때문이다. 요즘은 죽 전문점도 많고, 별미로 먹기도 하지만 여전히 죽은 몸이 좋지 않거나, 소화력이 약한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이 끓이게 되는 음식이기에 더 그렇다. (오죽하면 죽 전용 냄비가 나왔을까 싶다.) 혼불 속에 등장한 죽 역시 그렇다. 특히 가장이 먹을 죽은 절대 하인들에게 시키지 않고 부인, 며느리, 딸이 끓여서 낸다고 한다. 그만큼 정성을 기울인다는 사실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죽은 부재료를 다양하게 사용하면 할수록 다양한 형태로 만들 수 있다. 우유를 넣어 끓이면 타락죽, 전복이나 해산물을 넣어 끌이면 전복죽, 각가지 채소와 고기류, 버섯과 견과류 등 재료가 무엇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죽은 맛과 모양을 달리한다. 나 역시 두 아이의 이유식을 만들며 다양한 채소와 고기 등의 식재료를 사용해서 질리지 않으면서 다양한 맛을 보게 했었던 기억이 있는데, 아마 그런 면이 혼불 속에는 다양하게 등장했던 것 같다. 그 밖에도 술안주와 나물류, 김치와 떡 등 다양한 음식들의 사진을 같이 곁들여져 있다. 때론 작품 속에 나오는 음식들을 한 상에 차려두기도 한다. 단지 음식에 대한 소개가 아닌, 음식 안에 깃들여진 사회상과 시대상이 음식과 더불어 등장한다. 자연스레 문학과 영양학, 역사학과 문화학까지 다양한 인문학의 이야기를 한 상에서 맛볼 수 있다.
책을 읽고 보니, 읽다 멈춘 혼불도, 아직 읽어보지 못한 미망과 어리석은 석반도 기회가 되면 읽어보면서 복습(?)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여전히 먹고 있다 하지만, 음식 또한 시대를 거치며 새롭게 변화되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바뀌어 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편으로는 잊히고, 잃어버린 음식 문화에 대한 아쉬움도 남는다. 소설이 남듯 그 시대 속 음식도 작품 속에 남겨져 있다. 이제는 보릿고개나 소나무 껍질을 먹고 살던 시대의 이야기들은 마치 전래동화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작품 안에 담겨있는 음식문화와 시대상은 여전히 작품을 통해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